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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옷을 입거나 겉을 치장할 때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반영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옷을 검정 계통이나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입습니다. 그리고 아주 행복한 사람은 옷을 밝게 그리고 가장 좋은 옷을 그날 입습니다.
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할 만한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가장 잘 날 수 있는 옷으로 심혈을 기울여 입습니다.
그런데 옷을 입을 때 잘 입을 때만 옷을 맞추어 입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입어도 그 안에 흐름과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흐름과 사상이 옷을 통해 표출되었을까요?
1) 유럽 남부지역을 유랑하는 집시의 복장을 모티브로 한 집시 룩(gypsy look)이 있었습니다,
2) 1980년대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더럽고 혐오감을 주는 지저분한
스타일의 그런지 룩(grunge look)이 있었습니다.
3) 그러나 반대로 반짝반짝 빛나다'의 뜻으로 글리터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4) 또, 부분적으로 신체를 노출시킨(베어) 베어 룩(bare look),
5) 한마디로 헐렁헐렁 커다란 스타일의 Baggie Look (배기 룩),
6) 중세의 기사, 수도사, 농민 등의 복장에서 힌트를 얻은 중세풍의 스타일의 미디벌 룩(medieval look)이 이었습니다.
이런 옷 스타일은 옷 입는 사람들 생각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였습니다.
미가서도 구조적 룩(전체 구조)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미가 5:1-2 ‘이타’ 구조 속 메시지 (The Message of the Structure ‘Ita’), #김영한, #성경하브루타코칭
I. 미가서 구조 속 메시지 흐름
1. 전체 구조!
1 - 2장 심판
2:12-13 희망의 메시지
3 - 4장 심판
5:1-2 절 메시야 소망의 메시지
5 - 7장
7: 18-20 승리의 메시지
미가서는 자신의 일관 된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체크무늬 옷을 입은 것처럼 신선하게 체계적으로 전체적 패션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오늘 구절을 보려면.. 단 순히 이 구절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옷을 입을 때 넥타이를 맬 때 넥타이는 분명 양복과 어느 정도 어울리게 맵니다. 그리고 구두를 신을 때도 구두와 양복이 맞는지 확인하고 신습니다...
2. “이제” 심판과 회복의 메세지
마찬가지로 이 구절을 볼 때 우리는 다른 구절과 어떤 통일성과 연결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구절들과 어떤 관계에서 있는지 알면 이 구절의 메시지를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먼저 4장 9절부터 13절의 구조와 오늘 읽은 미가서 5:1-2절의 구조를 보겠습니다! 여기에 독특한 구조가 나오는데요. 바로 “이제”(히브리어로 아타)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4장 9절에 “이제”라는말이나옵니다.
4장 11절에도 “이제”라는말이나옵니다.
5장 1절에도 “이제”라는말이나옵니다
1. (이제)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사실 한글 성경으로는 5장 1절에 “이제” 라는 말이 번역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요. 원어 히브리어에는 “아타”(이제)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 “이제”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9절과 11절과 5장 1절에는 어둡고 심각한 환란의 날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는 왕이 없고 이스라엘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1절에는 이방이 모여서 시온을 공격하고 바벨론 포로가 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5장 1절에는 어떤 이방 나라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것을 말합니다.
다 어두운 그림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9절 다음 10절에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 다음 13절에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5장 2절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다스릴 자가 전쟁의 상황에서 구원해 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체 미가서의 구조가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4장과 5장에 구절들의 구조도 “이제”라는 단어로 선두로 어두운 현실과 조금 뒤에 올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질문) 미가서 말씀은 심판과 희망의 메시지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 심판의 때와 축복의 때가 교차하는데요. 여러분에게 요즘 주님은 어떤 때를 경험하게 하시고 있는 것 같은가요?
3.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1) 딸 군대여
- 이는 군사적인 용어로 예루살렘이 실제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도시임을 나타냅니다.
2) 그들이….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침략을 받아 수치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가가 특별히
‘재판자’(쇼페트)를 사용한 이유는
‘막대기’(쉐베트)와 연결시켜 언어유희를 사용하고자 한 듯합니다. 또한 왕이 뺨을 맞는 것은 수치를 나타냅니다.
사사기를 쇼페트라고 합니다.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쇼페트라고 히브리어로 말합니다.
3) 우리의 현실의 삶도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두운 그림자가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늘 힘겹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덮고 있습니다. 때로는 한숨만 나오고. 때로는 어두운 현실과 미래로. 숨쉬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잠시 뒤에 우리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과거와 현실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이 소망이 이 희망이 옵니까? 바로 우리를 다스릴 자 곧 메시아 곧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망과 희망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오직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이 주님인 것입니다. 잠시 지금 웃고 있고 즐기고 있을지라도. 조금 뒤에 또 어두운 그림자와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4장과 5장에서 “이제”라는 구조가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4장 9절과 11절에 계속 전쟁과 포로의 시기가 오고 또 전쟁이 끝이 나고 포로에서 풀려날 시기가 오지만 진정한 안식은 어디에서 온다고 말합니까? 우리를 다스릴 자 곧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삶의 여정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험 뒤에 또 시험이 있고 고난 뒤에 또 다른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있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징표들은 우리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여기서 안식할 수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살다가 가는 사람입니다. 저도 젊지만 정말 시간이 금방 갑니다. 한 이 삼 십년 살면 이제 늙어서 은퇴하고. 노쇠해져 가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도서의 고백?
그래서 전도서는 우리가 이 땅 가운데 이런 인생의 진리를 알고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절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심지어 이 세상이 우리에게 계속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그림자와 힘겨운 세상이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할 것을 계속 우리 삶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사실 우리의 창조자를 기억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 소망을 두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II. 메시야가 나실 장소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1. 그 지역은 어디?
1)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에브라다’는‘떡집’을 뜻하는‘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열매를 많이 맺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가가‘베들레헴’의 옛 이름‘에브라다’를 첨가한 것은 본 절의 베들레헴이 스불론의 베들레헴과 다른 지명이며(수 19:15) 다윗의 집을 가리키는 것임을 시사하기 위함인 듯하다. 미가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을 통해서 본절의 내용이 다윗의 집에서 나온 메시아 왕과 연관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나올 것이라
- ‘작을지라도’(차이르)는 크기가 작은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를 나타냅니다(시 68:27). 메시아가 천한 곳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눅 1:52).
3) 한편‘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의 화자(話者)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곧 메시아가 천한 베들레헴에서 자신에게로 나온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과 메시아의 밀접한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문) 메시아가 나실 장소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초라한 곳이었습니다. 누구도 초라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를 원하지 않는데요. 어린 시절 살던 곳 혹 자라난 환경에 만족하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2. 태생, 가정, 환경이 중요?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십니까?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예루살렘 그 크고 멋진 성전이 아니라 바로 초라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이런 곳에 태어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그런 초라하고 냄새나고 소망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그런 잘 알려지지 않고 초라한 곳에 더 나아가 냄새나고…. 더러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예수님이 더럽고 추한 우리 마음에도 들어오실 수 있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같은 아무 가치도 없는 마음 가운데 예수님은 또한 거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수가 많고 연약하고 고집 세고, 부족한 우리 가운데 때로 주님을 원망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피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메시아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떨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감격과 감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주님께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될 수 없다!
회사를 접어야 하는 어려움
한 분을 만났는데요. 회사가 어려워 접게 되었는데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사 상사를 욕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움을 직면하며 살지만, 그럼 어려움이라도 당할 곳도, 그 자체가 축복이었음을 압니다.
아내의 고백
제가 아내와 제 지난 짧은 삶과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며 나눌 때, 제 아내가 저에게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힘들 때, 주님을 알고 기도도 하고 주님을 의지할 수 있었지만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었습니다.
또 지금 현실이 힘들더라고 우리에게 주님이 계신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미래에도 계실 분인데 바로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데, 우리가 두려워하고 떨며 낙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 문제는 현실의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고 주님을 부르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잠시 왔다가 잠시 가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려고, 더 잘살아 보려고 온갖 일을 다 하고 다른 사람을 상처 주고 어지럽게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메시아이신 주님과 산다면 우리 삶에는 감동이 있고 우리 삶에는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는 질서가 있고 우리 삶에는 참 소망이 있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주님을 이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3. 장소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
주님이 함께하여 주시는 곳이 감사한 장소입니다.
학교가 중요, 교회가 중요, 회사가 중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을 때 꿈을 해몽해 주고,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이유
저는 나이가 들어가지만, 세상 사람만큼 돈을 벌지도, 행복할 만한 거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사역하고, 연합 사역하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감사합니다.
또 주님을 따르고 섬기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관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삶에 걱정과 염려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감격과 행복은 그 염려와 걱정보다 더 크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있고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베들레헴 작고 초라한 곳에 오신 주님이 여러분 삶에 또한 오셔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저 주님! 주님을 따르게 살겠습니다. 주님을 고대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질문)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탄생하셨습니다. 믿지 못 할 일이 벌어졌고, 꿈 같은 일에 놀라게 되었는데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주님은 어떤 놀라운 일을, 감격할 만한 역사를 베풀어 주셨나요?
III. 감격 속 메시아 고대하기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1. 양의 특징 10가지
양의 10가지 특징
1) 눈이 나쁘다.
양은 시력이 나빠서 눈앞에서 뭔가 보이고 그게 눈앞에서 움직이면 그걸 졸졸 따라다니죠. 양을 치는 개들이 옆에서 뛰어다니면 그게 또 목자인 줄 알고 쫓아간다고 합니다.
2) 잘 속는다.
이런 양 떼의 형편없는 분별력을 야생 개들이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야생 개들은 야생의 양 떼를 교묘히 유도하여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은 뒤 잡아먹곤 했답니다.
3) 잘 넘어진다.
양의 다리는 단단하고 강하지 않아 재빠르질 못합니다. 그래서 넘어질 때가 많고 뛰는 속도까지 느려 맹수가 가까이 쫓아오면 잡아먹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4)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
양은 일단 넘어지면 말 그대로‘벌러덩’뒤집어 집니다. 완전히 뒤집혀 져서 눕습니다. 그렇게 뒤집힌 양은 아무리 용을 써도 스스로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자가 와서 일으켜 세워줄 때까지 그 상태로 누워 있겠다고 합니다. 뒤집힌 양은 버둥거리다가 배에 가스가 차면서 혈액순환이 안 되어 죽기도 합니다.
5) 중심을 금방 못 잡는다.
뒤집혀 있던 양은 제대로 일으켜 세워줘도 금방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에 일으켜 세워준 후, 목자는 양이 똑바로 걷도록 몇 초 동안 가만히 붙잡아 줘야 합니다.
6) 이기적이고 멋대로이다.
새끼 양들이 배가 고파 어미로 보이는 양들에게 다가가서 우유를 얻으려 다가가면 양들은 매정히 뿌리치고 가버립니다. 양이 그저 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상당히 이기적이어서 목자가 없으면 양은 각자 자기 먹이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멋대로 가버린다고 합니다.
7) 방향 감각이 없다.
양들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너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 야생 숲이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조차도 구분 못하고 무조건 걸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양은 반드시 목자 또는 양치기가 옆에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8) 다시 왔던 길로 다시 돌아온다.
양들은 반드시 한번 떠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이 강한 동물입니다.
9) 방어력이 제로다.
양은 자신을 방어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는 동물입니다. 잘 속고, 눈도 안 보이고, 뛰는 속도까지 느리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10) 죽을 때가 되면 온순해진다.
염소나 돼지 등의 동물들은 죽음 직전 발버둥을 치는 반면, 양은 죽음 앞에서만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온순해진다고 합니다.
질문) 양은 10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 중 자신은 어떤 특징을 좀 많이 닮은 것 같은가요? 서로 나누어 주세요.
2. 선한 목자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십니다.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2)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3)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십니다.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질문) 베들레헴에서 나실 다스릴 자는 목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해산하기까지 붙잡아 주시고,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목축해 주시는데요. 나는 요즘 어떤 사람을 영적으로 돌보고, 더 기도해야 할까요?
꿈속에 감격할 메시아
제가 꿈을 꾸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신앙은 감격”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상황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뒤에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현재 감격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인생은 얼마나 감격하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유학 때, 학교에 가는데 차를 세우고 조금 걸었는데 전에 알지 못한 아름다움과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도서관 근처에 차를 세워서 잘 알지 못했는데요.
조금 먼 곳에 차를 세우고 걸었을 때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날의 햇빛의 포근함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같은 시간 속에 살아도,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땅에서 주님과 걸으면서 주님이 하신 일들과 하실 일들을 보면서 감격해 사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받을 수 없는 축복과 받을 수 없는 삶을 얻을 자로 감격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3. 나의 목자 되신 주님
연인이 부러운 이유?
왜? 사랑하는 연인이 부럽습니까? 왜 연인을 원합니까?
서로 작은 것에 감격해하고 감사하고 웃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평생 감격하게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감격과 은혜가 있어야 우리가 또 누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도 지속적인 감동과 은혜가 서로에게 흐릅니다!!
우리 삶에서 주님이 없이 계획하고 살아가는 것은 후회와 방황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공부를 해도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고 따라야 합니다. 왜? 주님께 묻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까?? 상고에 태초에 계신 주님이 이 세상을 주도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의 삶도 주관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묻고 대화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그 주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방황의 삶을 마치고 혼돈의 삶을 마치기를 원하십니까?
메시아 주님이 작고 초라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셔서 다스리도록 마음에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 제 삶을 주관해 주세요! 제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주세요!”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과 대화하면서 사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삶을 감격의 삶을 살게 됩니다!
질문) 오늘 말씀 중 주신 은혜와 도전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