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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포기선(凉飇弃扇)
찬 바람이 불면 부채는 버려진다는 뜻으로, 가을철의 부채는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凉 : 서늘할 양(冫/8)
飇 : 폭풍 표(風/12)
弃 : 버릴 기(廾/4)
扇 : 부채 선(戶/6)
지금은 한여름 더위가 닥치면 문명의 산물인 에어컨을 켜고 손 선풍기까지 들고 다니지만, 옛날에는 부채가 대세였다. 하여 여름이면 사람들은 손부채(합환선 合歡扇)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곳곳에서 손부채를 선물로 주기도 한다. 부채는 옛날부터 매우 주요한 더위 퇴치의 수단이었으며 아름다운 공예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 애지중지(愛之重之)하던 부채도 가을 찬 바람이 불면 손에서 멀어지고 쓸모를 잃어버리게 된다(凉飇弃扇 양포기선) 그것을 흔히 가을 부채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가을부채(秋扇子 추선자)는 곧 양포기선(凉飇弃扇)이다. 다시 말해서 가을 부채는 버려지는 부채가 된다.
전한의 12대 황제 성제(成帝)는 효성황제(孝成皇帝) 유오(劉驁)였다. 성제 때 반첩여(班婕妤)라는 후궁이 있었는데 그녀는 한때 성제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랑도 유한한 것이었다. 뒷날 반첩여는 성제의 사랑을 잃고 외로운 삶을 살다가 죽었다.
반첩여는 현숙한 후궁이었다. 그녀는 성제가 황제에 오른 직후 궁녀로 입궁하여 소사(少使)에 머물다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로 책봉되었다. 첩여는 후궁 중 소의(昭儀) 다음의 2번째 품계로 상당히 높은 품계(비빈들의 품계는 황후를 제외하고 11단계가 있었는데 가장 낮은 11등급은 소사이고 최고등급은 소의(昭儀)로 첩여는 2번째 품계)인지라 상경과 열후와 같은 작록을 받았다. 반첨여가 단번에 9단계를 뛰어넘은 것을 보면 성제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성제는 재위 기간 부평후 장방의 농단에 가려져 황제로서의 실권이 크게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재위 기간 거의 주색에만 빠져 있었다. 그러나 반첩여는 그런 황제를 늘 현숙하게 보좌하였다. 성제는 궁원을 다닐 때도 항상 호화로운 능라장막(綾羅帳幕: 비단장막)을 치고 안에는 비단 요를 깐 연(수레, 輦)을 타고 다녔는데 수레 앞에는 두 사람이 뛰면서 수레를 인도했다.
황후나 비빈이 수레를 탈 때는 한 사람이 끄는 수레에 태워 뒤를 따르게 했다. 성제의 연(輦)은 황제 외에 겨우 한 사람만 더 태울 수 있었다. 성제는 반첩여와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으며, 나들이 때마다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수레가 작았다. 하여 특명을 내려 더 큰 수레를 제작하라 했다.
이에 반첩여는 성제에게 이렇게 고하며 만류했다. "제가 옛부터 전해오는 그림이나 서적을 보았는데, 성군(聖君)은 모두 명신(名臣)을 측근에 두었고 하상주(夏商周)의 마지막 임금들인 걸왕(桀王), 주왕(紂王), 주유왕(周幽王) 등은 비빈들을 곁에 두고 총애했습니다. 비빈들을 곁에 둔 왕들은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죽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폐하의 수레를 함께 타고 출입을 한다면 그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데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해 주십시오."
성제는 반첩여의 이런 만류에 감동하여 생각을 접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왕태후는 매우 기뻐하며 좌우의 측근들에게 반첩여를 번희(樊姬)에 비유하며 "옛날에는 번희(樊姬)가 있고 지금은 반첩여가 있도다"라고 극찬했다. 번희는 춘추 때 초장왕의 부인으로 현명한 내조로 초장왕이 패자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반쳡여는 성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죽었다. 반첩여는 성제의 총애를 받는 제1의 후궁이었다. 하지만 조비연과 그 여동생이 후비가 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조비연 형제는 궁에서 심부름하던 한낱 궁비(宮婢)의 신분이었지만 요염한 몸매와 넘치는 애교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궁이 되었다. 두 형제는 놀랍게도 황제의 눈에 들어 동생은 소의(昭儀), 언니는 첩여(婕妤)라는 1, 2위의 작위를 받고 사랑을 독차지했다.
성제 3년 때였다. 후궁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졌다. 이 사건을 두고 소문이 흉흉했다. 성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반첩여가 허황후와 짜고 후궁에서 황제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을 저주하고 황제를 욕하였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반첩여와 허황후는 하옥되었다. 이 소문은 허황후와 반첨여를 매우 질투하던 조비연 형제가 조작한 사건이었다.
재판에서 허황후와 반첨여는 죄가 없음이 밝혀졌다. 황제는 반첩여의 착한 마음에 감동되어 황금 백 닢을 주고 후궁으로 들게 했다. 그러나 허황후는 건시(建時) 하평(河平) 연대에 특별히 총애를 받았던 일이 화근이 되어 폐위되고 미인(美人)이란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첩여는 후궁으로 돌아왔지만, 황제는 찾지 않고 주위엔 여인들의 무서운 질투와 시기만 난무하였다. 특히 조비연 형제의 질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반첩여는 옛날 고조(高祖)의 애첩 척희(戚姬)가 여태후(呂太后)의 질투로 눈알이 뽑히고, 혀뿐 아니라 손목과 발목까지 모조리 잘린 것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반첩여는 하루빨리 질투의 도가니인 후궁을 떠나 살길을 찾고 싶었다. 궁리 끝에 장신궁(長信宮)에 있는 황태후 왕씨를 떠 올렸다. 황테후는 지난날 자신의 겸손하고 현숙한 자세를 칭찬하며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적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황태후는 반첩여를 반갑게 맞이하여 장신궁에 머물며 말벗이 되도록 했다. 그러나 황태후의 말벗이 되는 일을 제외하면 늘 홀로 방에 앉아 거문고를 타거나 옛 서적을 뒤적거리는 일로 외로움을 달랬다.
반첩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달랬다. '그 옛날 황제와 함께 하였던 들놀이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흰 비단으로 감은 몸에 금은보석이 촛불에 눈부시게 번쩍일 때 황제의 사랑스러운 눈길이 온몸을 어루만져 주지 않았던가? 그때 나는 요임금의 딸 아황(蛾皇), 여영(女英) 그리고 순임금의 아내처럼 부덕을 칭송받으며, 주나라의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과 무왕의 어머니 태사(太姒)같은 부덕 높은 여인이고자 빌었지 않았나. 아, 슬프도다. 낳은 왕자마저 둘 다 젖먹이 때 저세상으로 가버렸으니, 황제의 사랑을 잃은 것이 그 탓일까? 황제의 사랑은 위첩여(衛捷伃)에게로 다시 조비연 형제에게로 가고, 임을 잃은 옥계(玉階)에는 이끼가 끼고 뜰에는 풀만 무성하구나. 금침에 엎드려 님의 버신 끝에 달린 구슬을 생각하며, 어전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지샌 밤이 얼마였던가? 돌아보니 인생만큼 무상한 것이 없으며, 은혜(恩惠)만큼 덧없는 것이 또 있을까?'
반첩여는 그렇게 자신을 한탄하며 홀로 십여 년을 살았다. 그녀는 자기를 한 번도 찾지 않는 황제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시를 지었다. 그것이 유명한 원가행(怨歌行)이다.
新裂齊紈素(신렬제환소)
해로 자르는 제(齊)나라의 흰 비단(환소紈素)
晈潔如霜雪(선결여상설)
흰 눈같이 선명하고 깨끗하구나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마름(재단)하여 합환선(合歡扇-손부채)를 만드니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둥글고 밝은 달 같구나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임의 품속과 소매를 드나들 때마다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살랑살랑 미풍을 일으키네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이 와서
凉飇奪炎熱(량포탈염열)
찬 바람이 불어 열기를 빼앗아 가면
棄捐匧笥中(가연협사중)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은혜로운 정은 중도에 끊어져 버렸네
완화(緩和) 2년 성제가 죽었다. 반첩여도 사십을 갓 넘긴 나이로 장신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애절한 사연과 시는 오늘날까지 전한다. 아름다운 옛 문헌을 모았다는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그녀의 원가행은 전한다.
반첩여의 기구한 삶과 사랑은 권력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광과 허무함을 동시에 말해준다. 다른 여인의 사랑에 빠진 황제의 귀에는 그 원망의 노래도 들리지 않았나 보다.
성제와 반첩여, 그리고 원가행에 얽힌 가을 부채(凉飇弃扇 양포기선) 이야기는 우리에게 권력과 사랑의 속성에 관한 여러 가지 의미를 전해 준다.
첫째, 황제나 왕이나 최고 통치자가 주색에 빠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이다. 성제는 본인의 성정이 우유부단한 데다가 황태후와 외척들, 특히 부평후 장방의 세력에 눌려 황제이지만 정치적 실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제는 유독 주색에 빠져 있었다. 특히 조비연과의 사랑 행각은 뒷날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행각만큼이나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중국 역사에서 기록되고 두고두고 회자 될 만큼 조비연과 양귀비는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궁정의 가노 조임(趙臨)의 딸로 태어난 조비연 자매는 가무에 천부적 재능을 갖추었으며 매혹적인 몸매와 목소리로 황제를 유혹했다고 전한다. 성제는 거기에 푹 빠져들었다. 간신들이 황제를 주색에 빠지게 해 놓고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것을 충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간신의 농간을 충성이라고 착각하는 왕(황제)의 최후는 몰락이다.
한나라는 제7대 무제 때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기원전 87년 무제가 죽고 8살 된 소제가 왕위에 오르면서 외척과 간신들의 농간이 심해 황실의 권위는 떨어졌다. 한무제는 자신이 통치할 때 측근들을 정리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그들을 옹호한 것이 화근이었다.
9대 폐제는 중도에 폐위되었으며, 혼란한 정국은 주색에 빠졌던 제12대 성제가 죽고 난 후 15년 뒤 성제 어머니의 조카이자 성제의 신하였던 왕망이 신 나라를 건국하면서 한나라(전한)는 건국 210년 만에 멸망하였다.
한나라 멸망의 원인은 외척들의 득세, 간신들의 농간으로 주색에 빠진 유약한 왕들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나라의 멸망 원인을 보면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 어떤 인물이 있느냐와 최고 권력자가 얼마나 중심을 잡고 단호하게 정치를 해 가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충언하는 자를 멀리하고 주색을 좋아하는 권력자는 자기 권력의 파멸은 물론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국정을 농간하는 간신들은 언제나 왕(최고 통치자)에게 감언이설로 아부하면서 주색과 향락에 빠지도록 한다. 현명한 통치자는 주변에 외척과 간신을 멀리하며 널리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간언하는 충신을 두며, 자신을 경계하여 겸허한 생활을 한다. 그래서 아첨과 충언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는 현명한 통치자가 될 수 없다. 현명한 지도자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이다. 그것은 오늘날 대통령, 도지사, 시장 군수 모두에도 해당한다.
둘째, 권력과 사랑은 가졌을 때는 영화롭지만 잃어버리면 그 크기만큼 허무해진다. 절대 권력자의 시대에 사랑은 절대 권력에 의해 결정되고 버려진다. 그것은 여인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추종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많은 사람이 절대 권력의 그늘에서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경쟁한다. 성제로부터 반합여의 사랑을 빼앗은 조비연의 질투와 간사한 책동도 그렇지만, 왕과 신하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암투 또한 그와 같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당쟁과 사화도 권력의 그늘에서 권력을 지키고 얻기 위해 벌어진 암투였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지극한 사랑을 주었으나 한번 버려지면 가을 부채처럼 다시 찾지 않는다. 다른 경쟁자들이 다시 찾을 기회 자체를 주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으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막는다. 그러기에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도 그 오랜 세월을 유배지에 보냈다. 다시 부르겠노라고 약속하였던 왕도 장롱 깊숙이 처박힌 가을 부채처럼 오랜 세월 그들을 잊었다.
이런 현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나타난다. 특히 권력이나 돈, 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이 갖기를 원하는 심리를 백분 이용하여 갑질을 해댄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는 여인도 마음대로 취하였다가 싫증이 나거나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버린다. 최근에 와서는 성 문제나 갑질 문제 등으로 함부로 하지 못하고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사회의 그늘에선 암암리에 수없이 자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권력의 경우는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대통령, 시․도지사, 시장․군수 등 권력의 주변에는 힘에 비례하여 사람이 몰린다. 그리고 그 몰리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선거에 당선되고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주변에 남고 어떤 사람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자기들끼리의 논공행상으로 멀리하기도 한다. 사실 그 논공행상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성골과 진골 등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질투와 암투이다.
또한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이 쓸모 있고 충성스럽다고 여길 때는 혜택을 주고 곁에 두다가 자신이 위협을 느끼거나 불편해질 때 혹은 더 나은 추종자가 나타나면 버린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한 번 그 중심에서 멀어지면 잊어버리는 것이 권력과 인간사의 이치인 듯하다.
얼마 전 지방 선거가 끝나고 한 지인이 전화가 왔다. 누구누구를 열심히 도왔는데 당선되고 나니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허탈하다고 했다. 나는 애초에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였다면 더 허탈할 것이라고 하면서 권력과 그 주변의 속성이 모두 그런 것이라고 위로한 적이 있다.
지금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모든 선거가 끝나고 내부적으로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야당은 지방 선거 패배의 책임을 두고 공방이 심하며, 여당은 내편이니 니편이니 하면서 당권 장악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역시 권력과 권력의 그늘에 가려진 암투이며 비극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버려지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의 중심을 지키고 중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런데 절대 권력의 왕권 시대는 어떠하랴.
셋째, 그 어떤 절대 권력도, 절대적인 사랑도 그것을 잃어버리면 버려진다는 점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도 실정(失政)과 실수로 권좌를 떠나거나 쫓겨나면 버려지고 만다. 성제 또한 생존 시절 그토록 주색과 향락에 빠졌으나 결국 버려졌고 연산군도 권력을 가졌을 때는 온갖 짓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나 권력을 잃으니 비참하게 죽어야 했다.
도지사를 했던 안모씨도 대통령 후보까지 운운했지만 결국 성폭행 문제로 정치 세계에서 버려지게 되었다. 이는 최고 권력자에서부터 권력 추종자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이다. 사랑도 그렇다. 권력에서 자신이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도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를 하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버린다.
반첨여가 사랑을 잃게 된 것은 두 가지 사연이다. 하나는 벼락 사건으로 인한 질투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조비연이라는 다른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 도사린다. 권력과 사랑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권력과 사랑을 얻기 위한 자기 관리와 지키기 위한 주변 경계이다. 최고 권력자가 자기 관리를 잘못하면 역성혁명과 탄핵이라는 것으로 국민과 권력 지망생으로부터 쫓겨난다. 사랑도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려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얻기 위해 끝없이 자기 관리를 하고 주변을 경계한다.
권력자의 자기 관리는 겸허한 생활고 노력으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며 추종자의 자기 관리는 거기에 하나 더 보태어 권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아첨과 투기도 서슴치 않는다. 여인도 지속적인 사랑을 얻기 위해 몸매를 가꾸고 화장을 하고 질투를 한다. 권력과 사랑은 더 강한 것 더 충성스러운 것, 더 사랑스러운 것, 더 참신한 것으로 옮겨 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첨과 질투와 이간질도 권력과 사랑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과 사랑의 추종도 일종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결말은 대체로 허망하다.
양포기선(凉飇弃扇), 누구나 가을 부채의 신세가 될 때가 있다. 권력도 사랑도 물건도 심지어는 사람도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직장에서도 쓸모가 없어지면 떠나야 한다. 그리고 잊혀지게 된다. 그러나 버려지는 것보다 잊혀지는 것이 더 낫다. 버려지는 것은 폐기되는 것이지만 잊혀지는 것은 자기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오히려 조용히 떠날 수 있을 때 잊혀지지 않고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남정네의 선망이 되었던 황진이는 때가 되어 조용히 떠났기에 오늘날까지 아름답게 기억된다. 권력과 사랑 나아가 모든 인생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겸허하게 살 일이다.
추선(秋扇)
가을철의 부채라는 뜻으로,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秋 : 가을 추
扇 : 부채 선
반첩여와 조비연(趙飛燕)은 중국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후궁으로, 성제는 처음에는 반첩여를 매우 총애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비연에게로 사랑이 옮겨 갔다. 조비연은 혹시라도 성제의 마음이 반첩여에게 되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반첩여가 임금을 중상모략했다고 무고(誣告)하여 그녀를 옥에 가두게 했다. 나중에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의 처지는 그 옛날 임금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때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장신궁(長信宮)에 머물면서 과거 임금의 사랑을 받던 일을 회상하고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쓸모없게 된 부채와 자신의 처지가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제목의 시를 짓게 되었다. 이 시는 중국 육조문화(六朝文化)를 대표하는 시문선집인 '문선(文選)'에 전해지는데, 거기에 '추선(秋扇)'이라는 말이 나온다.
새로 재단한 제(齊)나라의 흰 비단은/서리와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마름질하여 합환선(合歡扇)을 만드니/둥글기 명월 같구나/님의 품과 소매를 드나들며/움직일 때마다 서늘한 바람을 일으킨다/문득 두려운 가을이 와/서늘한 바람은 더위를 빼앗으니/가을 부채(秋扇)는 장롱 깊이 버려져/은정(恩情)은 끊기는구나
여기서 '추선'은 임금의 총애를 잃은 반첩여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과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를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추선'은 '추풍지선(秋風之扇)'이라고도 한다.
가을 부채는 시세가 없다(秋扇無勢)
때가 지난 것은 그 가치가 없음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또는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부채의 전성기는 여름이다. 한여름은 부채의 계절이고 무더위 속에서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의 위력이야말로 가히 그 기운이 엄청나다. 따라서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는 멋진 여름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면 부채는 이미 제철이 지나서 아무 쓸모없이 되어버리고 시세도 없어지고 만다. 가을 부채는 이듬해나 되면 다시 시세를 가질 수 있게 되기에 장롱 속에 잘 간직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가을 부채는 또한 버림받은 여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나라 성제(成帝)에게는 총애하는 후궁 반첩여(班婕妤)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사랑이 다시 후궁인 조비연(趙飛燕)에게로 옮겨갔다. 조비연은 성제의 사랑이 다시 반첩여에게 되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나쁘게 소문을 내서 옥에 가두게 했다. 나중에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그녀의 처지는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때와는 달라졌다. 반첩여는 임금의 사랑을 받던 일을 회상하면서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에 '가을부채(秋扇)'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신의 처지를 가을이 되어 쓸모없게 된 부채에 비유하였다.
▶️ 凉(서늘할 량)은 형성문자로 涼(량)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京(경, 량)으로 이루어졌다. 찬물의 뜻으로, 전(轉)하여 서늘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凉(량)은 ①서늘하다 ②얇다, 엷다 ③외롭다, 쓸쓸하다 ④(바람을)쐬다 ⑤맑다, 깨끗하다 ⑥미쁘다, 진실되다 ⑦돕다, 보좌하다 ⑧가을 ⑨맑은 술 ⑩슬픔, 시름, 근심 ⑪양암(諒闇: 임금이 부모의 상중(喪中)에 있을 때 거처하는 방) ⑫나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찰 냉(冷), 찰 처(凄), 찰 한(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울 서(暑)이다. 용례로는 가을철의 서늘한 비를 양우(凉雨), 마음이 후덕스럽지 못하고 엷음을 양박(凉薄), 서늘한 기운을 양기(凉氣), 황폐하여 거칠고 쓸쓸함을 황량(荒凉), 여름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함을 맛봄을 납량(納凉), 마음이 구슬퍼질 만큼 쓸쓸함을 처량(凄凉), 추위와 더위로 세태를 판단하고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슬기를 염량(炎凉), 맑고 서늘함을 청량(淸凉), 찬 기운과 서늘한 기운을 한량(寒凉), 따뜻함과 서늘함을 온량(溫凉), 보리나 밀이 익을 무렵의 약간 서늘한 날씨를 맥량(麥凉), 가을이 되어 서늘한 기운이 생김을 생량(生凉),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신량(新凉), 약간 차갑고 서늘함을 냉량(冷凉), 그늘져서 서늘함을 음량(陰凉), 사정을 헤아려 용서함이나 사정을 살피어 양해함을 서량(恕凉), 기후가 상쾌하고 서늘함을 상량(爽凉), 가을철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서늘한 기운을 취량(驟凉),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읽기가 좋다는 말을 신량등화(新凉燈火), 뜨거웠다가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으로 권세가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형편을 이르는 말을 염량세태(炎凉世態), 뇌물을 주고 벼슬길에 오르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일곡양주(一斛凉州), 눈에 뜨이는 것이 모두 거칠고 처량하다는 말을 만목황량(滿目荒凉), 숯불을 안고 서늘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행동과 목적이 상치됨을 이르는 말을 포탄희량(抱炭希凉), 더우면 서늘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집열원량(執熱願凉) 등에 쓰인다.
▶️ 飇(폭풍 표)는 회의문자로 飆(표)와 동자이다. 猋(표: 빠름)와 風(풍)의 합자(合字)이다. 빠른 바람의 뜻이다. 또 猋(표)가 음(音)을 나타낸다. 그래서 飇(폭풍 표)는 ①폭풍(暴風) ②회오리바람 ③광풍(狂風) ④폭풍 불어 올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매우 찬 바람을 일컫는 말을 한표(寒飇), 찬 바람이 불면 부채는 버려진다는 뜻으로 가을철의 부채는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양포기선(凉飇弃扇) 등에 쓰인다.
▶️ 弃(버릴 기)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스물입발(廾: 맞잡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棄(기)의 생략형(省略形)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弃(버릴 기)는 ①버리다 ②그만두다 ③돌보지 않다 ④꺼리어 멀리하다 ⑤물리치다 ⑥잊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찬 바람이 불면 부채는 버려진다는 뜻으로 가을철의 부채는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양포기선(凉飇弃扇) 등에 쓰인다.
▶️ 扇(부채 선)은 회의문자로 문짝의 뜻인 지게호(戶; 지게문)部와 날개의 뜻인 羽(우)로 이루어져, 문짝이 문의 양쪽에 있어, 새의 날개처럼 열림을 나타낸다. 그래서 扇(선)은 임금의 거동(擧動) 때 쓰던 부채라는 뜻으로 ①부채 ②문짝 ③사립문 ④행주(그릇, 밥상 따위를 닦거나 씻는 데 쓰는 헝겊), 수건(手巾) ⑤거세(去勢)한 말 ⑥부채질하다 ⑦성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⑧세차다 ⑨거세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부채의 사북을(扇關), 소란을 선동함을 선란(扇亂), 재화를 선동함을 선화(扇禍), 부채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개의 대오리를 선골(扇骨), 부채를 만드는 직공을 선공(扇工), 부채의 거죽을 선면(扇面), 부채꼴을 선형(扇形), 부채를 편 것과 같은 모양을 선상(扇狀), 부챗자루 끝에 달아매어 늘어 뜨리는 장식품을 선초(扇貂), 부채고리에 매어 다는 장식품을 선추(扇錘), 쥘부채의 아랫머리 오른쪽 사북에 꿰어 놓은 고리를 선축(扇軸),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선자장(扇子匠), 질기고 단단한 흰 종이를 선자지(扇子紙), 흰 깁으로 만든 부채를 소선(素扇), 여러 가지 색깔의 종이나 헝겊을 오려 붙여서 만든 부채를 색선(色扇), 비단으로 만든 부채를 능선(綾扇), 네모가 지게 만든 부채를 방선(方扇), 소나무를 그린 부채를 송선(松扇), 기름에 결은 종이를 붙여서 만든 부채를 유선(油扇), 가을의 부채는 쓸모가 없다는 말로 쓸모 없어진 물건을 추선(秋扇), 귀의 기둥 위에 부채살 같이 된 처마를 선자춘설(扇子春舌), 원 둘레의 일부를 이용한 부채꼴의 톱니바퀴를 선형치차(扇形齒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