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주의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덩달아 신바람이 난 건 원주시민들이었다. 지난 9월 23일 원주시청사에서는 김효주의 금의환향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우승을 한 김효주를 축하하기 위해 원주시가 마련한 행사에 지역 방송과 신문사가 열띤 취재에 나섰다. 원창묵 시장은 김효주 선수가 사인한 모자를 직접 쓰고 “효주양 덕분에 원주시민이 행복했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원주시민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주간조선은 김효주 선수와 아버지 김창호씨를 따로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원주우체국 접견실이었다.
김효주는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40~250m에 이르는 장타자에 속한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이 정도 비거리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막상 김효주를 가까이서 만났을 때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그런 파워가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저는 스윙어 스타일이에요. 때리는 타격보다는 원운동을 그리며 정확하게 볼을 맞히기 때문에 거리가 꽤 나죠. 오랫동안 연습한 결과랍니다. 하하하.”
김효주의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눈에 들어왔다. 김효주와 악수하기 위해 앳된 손을 맞잡는 순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면이 거친 가죽장갑을 낀 손을 잡는 것 같았다. 비쩍 마른 체격의 19살 여대생(현재 고려대생)의 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딱딱했다.
“매일 골프채 잡고 휘두르는 손이라서 그래요. 손에 관해서는 그냥 포기했어요. 이 정도만 유지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그나마 저는 선수생활을 오래한 언니들에 비해 굳은살이 적은 편입니다.”
김효주는 프랑스 에비앙 레뱅에서 열린 에비앙챔피언십 대회 첫날 61타를 쳐 한 라운드 메이저 최소타를 기록했다. 그때 혹시 우승을 직감하진 않았을까. “그때는 (우승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2~3라운드를 잘 끝내야겠다는 다짐만 했어요.”
김효주는 대회 마지막 날 LPGA 통산 41승의 전설적인 선수인 캐리웹과 챔피언조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3라운드까지 1위를 지키던 김효주는 이날 캐리웹에게 1위를 내주며 한때 2위로 밀려났다. 역전 드라마는 마지막홀에서 나왔다. 18번홀에서 김효주는 버디를, 캐리웹은 보기를 하며, 1타 차의 극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마지막홀에서 버디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해 퍼팅을 한 건 맞아요.”
김효주가 캐리웹과 경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LPGA롯데챔피언십에서 대원외고 1학년인 김효주가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캐리웹과 같은 조에서 경기를 치렀다.
“아빠는 기억하신다고 해요. 저는 캐리웹 선수와 경기했는지 기억나질 않았어요. 그땐 아마추어였고 내가 이런 대단한 선수와 경기를 한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들떠 있었나 봐요. 유명 선수와 경기를 하면 그들의 실력에 감탄하기 바빴고 내 플레이에는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번 대회에 나설 때는 굳은 결심을 했어요. ‘이제 나도 프로다.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자’고 말입니다.”
김효주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고민하며 예쁘게 말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평범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스타일이었다.
김효주는 에비앙챔피언십 우승 후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아직 못 샀어요. 해외에서 가방을 사려니까 너무 비싼 거예요. 그거 사왔으면 아마 (세관) 통과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냥 엄마랑 백화점 가서 마음에 드는 거 사드릴 생각입니다. 세일할 때 가서요. 하하하.”
김효주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골프채를 잡았다. 그가 이른 나이에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천재성이 발휘된 결과로 보였다. 적어도 그는 연습벌레는 아니었다.
“새벽같이 연습장에 가진 않아요. 잠도 그냥 푹 잡니다. 경기가 없는 날은 늦잠 자고 연습하러 가요. 연습할 때 양보다는 질적인 측면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최대한 집중력을 갖고 연습하거든요.”
김효주를 만든 주인공은 아버지 김창호씨다. 그는 딸의 모든 경기를 참관한다. 로드 매니저로 운전도 한다. 경기가 끝나면 식사까지 직접 챙긴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직접 챙겨간 고추장과 밑반찬으로 딸의 식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김창호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김효주 선수가 연습을 하거나 경기에 참가할 때 골프장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통해 딸이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효주가 연습할 때 밥은 주로 골프장 캐디들 식당에서 먹습니다. 클럽하우스는 해장국처럼 어른들 입맛에 맞춰져 있어서 갈 수도 없어요. 저는 어디든 골프장에 가면 먼저 그곳 식당에 가서 안면을 트곤 합니다. 그럼 나중에 내가 자리를 잠시 비워도 식당 아주머니들이 효주를 엄청 챙겨줘요. 달걀 프라이를 먹고 싶다고 하면 큰 대접에 10개씩 해다 줄 정도입니다.”
김창호씨는 김효주 선수가 아마추어 때부터 골프장 직원들을 챙기는 데 열성을 보였다. 우승을 하고 나면 늘 필드를 관리하는 일선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효주가 우승하면 대회 스폰서나 골프장 임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마스터나 마샬을 찾아가요. 그들이 실질적으로 골프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궂은일을 하는 분들이죠. 경기가 끝나면 효주를 데리고 경기요원과 아주머니들이 있는 곳에 가서 ‘여러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는 감사의 인사와 성의표시를 꼭 합니다. 어떤 때는 떡도시락을 200개 정도 미리 준비해서 전달해드리기도 하고요. 딸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해외 경기 참가 횟수가 늘면서 아버지도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까, 시간은 칼처럼 지킵니다. 해외 나갈 때는 소주도 챙겨요. 음식이 워낙 기름진 탓에 식사 때는 챙겨 간 고추장을 살짝 풀어서 먹기도 하고 소주를 물병에 담아가 주문한 맥주에 조금 타서 마시면 시차로 고생하지 않고 잠을 잘 잡니다. 숙소에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날에는 침대 위에 팁을 두 배로 챙겨두고 나갑니다.”
김창호씨는 아버지로서, 때로는 매니저로서, 또한 친구로서 딸에게 헌신하고 살아왔다. 김효주의 어머니와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효주의 언니가 대학에 진학할 때 골프경영학과를 추천했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인 효주를 중심으로 가정을 이끌어온 김씨는 큰딸도 효주의 미래와 함께 가는 길을 권유했다.
“효주가 대성하면 언니가 옆에서 함께 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동생의 유명세로 스트레스를 받은 큰애가 전공을 바꾸길 원하더군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른 대학의 디자인학과에 다시 진학했습니다. 큰딸이 이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김씨는 골프를 하지 않는다. 실력도 안 되고 시간도 없다는 게 이유다.
김효주의 어머니는 남편과 딸이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가계를 책임졌다. 강원도 횡성군에서 숙박업을 했는데, 숙박시설 한편에 거주하며 효주를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했다. 그래도 국내외를 오가며 종횡무진 경기를 치르는 딸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계빚이 차츰 쌓여갔다.
요즘 김효주의 가족은 서울 근교에 전셋집을 얻어 살고 있다. 고향의 숙박업도 정리할 계획이다. 김효주는 올해 우승상금으로만 이미 14억원을 벌어들였고 여러 스폰서 계약 등을 포함하면 올 한 해 최소 20억원 이상의 수입이 예상된다.
어머니 최성휘씨는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요즘도 김효주의 경기를 직접 참관하는 일이 드물다. 주로 방송을 통해 딸의 경기를 본다. 김효주는 언니와 가끔 영화관에 가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취미생활이다.
김효주는 프로 데뷔 첫해인 지난해 KLPGA 신인왕을 수상했고 올해는 다승(3승)과 상금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팬클럽도 전국에 지부를 두고 움직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경기장에서는 가끔 “사랑해요 김효주! 우윳빛깔 김효주!”라고 외치는 극성팬들까지 생겼다.
김효주는 내년에 LPGA에 진출한다. 비회원 자격이지만 L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1년간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다.
아버지 김씨는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내년에 미국 무대로 진출해야 할 것 같다. 상금순위 80위 안에 들면 LPGA 출전권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 정도 실력은 된다. 올해도 메이저대회를 우승하긴 했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몇 차례 출전만으로도 LPGA 상금랭킹 40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김효주와 아버지 김창호씨는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통역도 없이 프랑스 대회에 참가했다. 우승하고 나서 언론의 인터뷰 세례를 받는 동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했다. 김효주 선수 전담 코치의 딸이 이날 통역을 도왔는데 외신에서 그녀를 김효주의 친동생이라고 잘못 소개한 것. 효주에게는 동생이 없다.
“인터뷰하는 도중에 두 사람은 무슨 관계냐고 묻길래 동생이라고 했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리니까요. 외국 사람들은 이를 자매라고 해석한 거예요. 제가 해외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대답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더 웃긴 건 이걸 보고 국내 언론이 그대로 받아서 효주의 통역사로 나선 동생이라는 타이틀을 제목으로 뽑았더라고요. 나중에 정정하는 소동을 빚었습니다.”
김효주는 서울 대원외고를 다녔고 골프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외국인 캐디와 영어로 골프 관련 대화를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 이날 인터뷰에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김효주 선수의 꿈은 미국 유명 프로골퍼로 명성을 날리다가 은퇴한 아니카 소렌스탐처럼 되는 것이라고 했다. “소렌스탐은 현역시절 누구보다 화려한 경기를 했고 은퇴한 이후에는 스포츠 비즈니스우먼으로 성공을 거뒀어요. 저도 그런 길을 가고 싶어요. 현역으로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땐 스포츠 비즈니스를 할 겁니다.”
김효주 선수도 부모님 속을 썩인 적이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자 아버지는 “없다”고 했고, 동시에 김효주는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김효주는 “성적이 안 나올 때 속상하고 짜증도 난다. 아빠가 그런 걸 다 받아주시니까 계속 (골프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김창호씨는 철부지 딸을 위해 매년 한 차례씩 보약을 짓는다.
김씨는 “올해 롯데와 메인스폰서 계약이 만료되는데, (롯데와의) 의리를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거물이 된 김효주 선수를 잡기 위해 과연 롯데가 ‘통 큰’ 제안을 해올지도 궁금하다. 롯데는 김효주를 통해 그동안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김효주가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롯데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빼빼로 판매가 급증했다. 김효주가 경기 출전 때 영문으로 빼빼로(Pepero)가 적힌 의상을 입어 화제가 된 덕이다.
김효주 부녀와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김효주가 평소 좋아하는 삼겹살. “소고기보다 삼겹살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