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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황당한 사회 법정 싸움이 있었습니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어느 설렁탕집이 있었습니다.
그 설렁탕집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별 탈 없이 장사를 해왔습니다. 늘 그러했듯 손님이 그 설렁탕집에 방문하여 설렁탕을 주문했고, 주인은 설렁탕값으로 8,000원을 받고 설렁탕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깍두기 한 접시, 소금을 손님께 갖다주고 손님은 맛있게 식사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법원에서 설렁탕값, 반찬값을 따로따로 받지 않고 한꺼번에 받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설렁탕값과 반찬값을 따로따로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법원판결의 취지는 손님이 설렁탕을 주문하면, 설렁탕 한 그릇 값을 따로 주문받아 계산한 후 설렁탕을 손님에게 갖다주고, 다시 김치 한 접시를 따로 주문받아 계산한 후 갖다주고, 다시 깍두기 한 접시를 따로 주문받아 계산한 후 갖다주고, 다시 소금을 주문받아 따로 계산하고 손님에게 갖다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렁탕에 들어가는 고기가 국내산인지 외국산인지 설명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설렁탕에 소금간을 안 했으니 소금으로 간해야 한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위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이해하기 쉽게 한 억울한 일을 당한 법무사가 설렁탕으로 설명을 해드린 것인데요. 위 설렁탕집과 같은 어이없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1월 9일
전라북도 청년법무사회
최근 법원에서 법무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는데요. 그 이유는 법무사가 고객으로부터 개인 회생 파산 사건을 의뢰받아서 신청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할 때 수수료를 한꺼번에 받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의 취지는 각각의 신청서를 제출할 때마다 그때그때 수수료를 나누어서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한 판결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황당한 판결은 실화입니다.
또한 일관성도 없었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가 났고, 2심에서 그와 같은 황당한 판결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위 설렁탕집의 예처럼 고객이 개인 회생 파산 사건을 맡겼으면 수수료를 한꺼번에 받아야 고객도 편하고 일 처리를 하는 법무사도 복잡하지 않고 신속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업무처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개인 회생 파산 사건을 처리할 때는 여러 개의 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해야 하는데, 그 신청서 한 개 접수할 때마다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 설렁탕집처럼 고객도 번거롭고 법무사도 번거롭습니다. 법원도 신청서를 한꺼번에 받지 못해서 복잡할 뿐만 아니라 자칫 접수 기한이 지나서 고객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판결의 취지는 법무사가 고객에게 개인 회생 파산에 대하여 설명도 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무사는 아예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그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똑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변호사는 수수료를 한꺼번에 받아도 되고, 법무사는 수수료를 한꺼번에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수료를 한꺼번에 받으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이지요. 이게 어느 나라 법인가요? 이게 국민을 위한 법인가요? 아니죠, 변호사들만을 위한 법이지요.
그런 황당한 판결을 받은 법무사는 형사처벌은 형사처벌대로 받아야 하고, 그동안 고객을 위하여 고생해서 일 처리를 해주고 받은 수수료를 모조리 추징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 법무사의 인생을 통째로 짓밟아 버린 판결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유죄판결을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더 나아가 이 판결은 법무사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도 한 번씩은 부동산등기를 법무사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 부동산등기신청을 함에 있어서도 등기신청서, 취득세 신고서, 감면신청서, 실거래 신고서, 채권신청서, 인지 신청, 등등 여러 개의 신청서가 작성됩니다. 그 등기신청도 따로따로 수수료를 받지 않으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랫동안 별 탈 없이 해왔던 법무사의 업무영역을 빼앗아 버리려는, 변호사들의 이익을 위한 판결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법원 판사님들도 이번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 것으로 판단됩니다.
초등학생들한테 물어봐도 이번 판결은 분명 잘못된 판결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2019년 1월 9일에
법무사는 아주 황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판사, 변호사가 자신들만 생각하고, 법무사는 우습게 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느끼지 않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우습게 혹 하대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와 하나님 관계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적반하장일 때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대화합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나눕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것도 서로 나눕니다. 하루 일과 중에 있었던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왜 삐졌는지 왜 기뻐하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고의로 아니면 실수로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그럴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 이혼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왜 이혼율이 이렇게 높을까요? 부부 사이에 이해하는 마음이 없고 서로 원하는 것만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받아 주고 이해하기보다 서로 상처 주고 자신의 것만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법정 시비에서 이혼하는 부부들의 공통점은 신성하다는 법정에 와서는 서로 못 죽여서 안달입니다. 서로를 너무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때로는 연인 관계와 같이 깊은 교제에 있지만 때로는 남남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고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지 못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우리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고 살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무엇인가 서운해하시면서 이스라엘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무척이나 화가 나셔서 왜? 화가 났는지를 이야기하시려고 변론하고 계십니다. 6장 1절에서 5절에 반복되는 단어는‘여호와’,‘산’,‘백성’이라는 단어들입니다. 여기서‘산’이 반복되는데 이는 두 사람이 언약 관계를 맺을 때 혹은 법적인 사건을 다룰 때 증인으로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여기‘산’은 여호와 하나님과 백성(너희) 사이에 쟁변 가운데 산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논하고 이야기하고 계십니까? 1절에서 8절의 내용은 법정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어떤 문제를 두고 시비를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잘 못 했느냐에 집중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고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말씀하시며 보여 주십니다!!
#미가 6:1~8, #김영한, #성경하브루타코칭
I. 미가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1. 그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1)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을 듣고 있는데... 들으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말을 할 때,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 산을 향하여 변론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산을 향하여 변론한다는 것은 산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논쟁할 때 배심원으로 역할을 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3)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는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다 하나님과 논쟁하는 소리를 듣고, 판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2. 그 백성들은 하나님과 변론하였습니다.
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1) 산들과 견고한 지대들은 증인이었습니다.
산들뿐만 아니라 견고한 지대들도 배심원으로, 즉 증인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2) 변론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 주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셨습니다.
3) 변론 내용은 너무 잘해 주었지만, 그 백성들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변론하고, 다시 이스라엘과 변론하신다고 거듭 적힌 것은 하나님께서 심각하게 변론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3. 하나님이 오히려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3.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1) “내 백성아” 이렇게 부르시는데요.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신 것입니다.
2)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말씀하십니다.
아직 변론할 기회를 줄 테니... 무엇이 문제인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듣고 싶어 하십니다.
3) “너는 내게 증언하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사건을 다루시기 전에 충분히 호소할 시간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도요.
II.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
1. 애굽 땅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먼저 4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보이십니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하였었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량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셨습니다.
2. 모세와 아론을 보내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세를 싫어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애굽에서 사는데 방해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구출해 내려고 하자 지푸라기를 받지 못하게 되어 더욱 노역을 하게 되자 모세를 미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구출이고, 뭐고, 싫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 참 일하기 힘드셨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가기 싫다고 하였습니다.
사명을 거부하는 모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4:1~17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물에 빠진 사람 - 밧줄 거부, 배 거부, 헬리콥터 거부
물에 빠진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화를 냈습니다. 왜 도와주시지 않았느냐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조원을 통해 밧줄을 주었고, 배를 보냈고, 마지막 헬리콥터까지 보냈는데 왜 타지 않았느냐고 하셨습니다.
3. 공의롭게 행하시는 하나님
5.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1)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
민수기 24장과 25장에 모압왕 발락은 거짓 선지자 발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돈으로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발람은 재물의 탐욕에 빠져 이스라엘이 모압 가나안 예배를 보게 하고, 음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2만 4천 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2) 브올의 아들 발람이 대답한 것
– 예배드리는 장면을 보여 주라고 하였고,
– 음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3)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
그리고 5절에서“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싯딤은 어떤 장소이고 길갈은 어떤 장소입니까?
민수기 33장 49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가 모압 평지의 진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 싯딤에 미쳤었더라.
싯딤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을 끝맺던 장소입니다
성경은 싯딤 앞에 아벨이란 단어를 첨가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애곡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땅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사람들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단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싯딤은 슬픔의 땅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모세를 통해 마지막으로 듣습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민수기 33:51-53)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싯딤에서 묻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도 더 이상 그들을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대권을 이어받긴 하였어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였고 모세만큼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설사 요단을 건넌다고 해도 가나안의 일곱 부족들과의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게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여호수아 1장 2-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 궤를 앞세우고 요단을 무사히 건너 길갈에 당도합니다.
길갈이란 의미는 이집트의 수치가 다 굴러갔다는 뜻입니다.
길갈에서 할례 예식을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III.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
1. 세상적 물량주의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가?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1) 높으신 하나님께
2) 나 자신이
3)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나아가기 – 그 가치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2. 이방 민족의 제사 방식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가?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1) 천천의 숫양 – 4만원 – 4천만 원 – 40억
2)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 역시 대단한 가격
3) 맏아들을 –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몸의 열매, 자녀를 드리기?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드려야 할 대가가 엄청남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3. 3가지 무엇을 원하시는가?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오직 정의를 행하며
a. 하나님의 정의를 알기
b. 정의를 실행하기
c. 세상에서 사는 곳에서 실행하기
2) 인자를 사랑하며
a. 하나님 사랑
b. 지체 사랑
c. 모든 만물 사랑
3)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a. 겸손하게
b. 하나님과
c. 아는 것에서 넘어 행하는 것
신동엽의 프로그램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 중에 결혼 적령기의 남자와 여자를 연결해 주는 신동엽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데이트를 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과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고 여자도 남자에게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보여 줍니다. 다들 제가 볼 때 학벌도 얼굴도 사회적 지위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커플은 성사되고 또 어떤 커플은 연결이 안 됩니다.
어느 날 신동엽 사회자가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하는 모습을 방송 모니터로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사회자로 있으면서 연결되는 커플의 공통점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 주려고 하는 커플이 잘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포장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알리는 사람보다 상대방이 무엇이 연약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감일 것입니다.
여기 이스라엘도 좋으신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나아 갈 것인지 6절과 7절에서 고민합니다.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 것인지, 천천의 수양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혹은 허물을 위하여 맏아들을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지 고민합니다.
좋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자세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세상의 가치관과 풍습 그리고 문화와 가리워 눈뜬장님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랑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마음을 타락한 인간으로 잘 읽고 이해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 본문도 우리를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구절들은 당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식에서 이스라엘이 당시의 문화와 가치관에 푹 빠져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를 들면, 당시 성행한 몰렉에게 자신의 자식을 바친 인신 제사를 이스라엘이 행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큰 희생이 있기만 하면 기뻐하시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제물을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의 풍조와 문화의 가치의 기준에서 좋아 보이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원하시지 않는 비전과 꿈을 여러분이 만들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다른 곳에 헛되이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은 중요하지 않은 채 여러분이 드려야 할 제물과 제사와 헌물을 준비하는데 바쁘지는 않습니까?
아니 내가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확실하여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또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무조건 드릴 테니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신앙은 내 의도만을 드러내는 것도 내 일방적 헌신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주님과 겸손히 동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공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 = 삼박자의 삶!
미가서 6장 6절부터 8절입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진정한 뜻입니다.
이 삼박자의 삶 속에 한 가지가 결여되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의를 행한다면서 친구를 상처 주고, 혹은 친구를 배려한다는 마음에 하나님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목 아래 친구를 돌보지 않고 공의를 굴곡 된 가치관을 가지고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하나님에게 여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공의를 행하며 제가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인자를 사랑합니까? 어떻게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 고백하면서 우리가 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목적 중심의 동적인 삶에서 우리는 관계 중심의 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현실을 직시하고 목적과 목표 중심적인 우리가 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다스려 주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 주 하실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삶 가운데 공의가 하수같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내 삶에서 지금까지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부족한 죄인을 용서한 사실을 더 나아가 사랑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자연히 공의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모든 일에 있어 협력해서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헛된 것에 시간과 여러분의 젊음을 낭비하지 맙시다!! 주님이 주신 땅을 향해 주님이 주신 마음을 지키며 순간순간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