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4년, 푸틴 대통령, 서방과의 대립 심층 러시아 ‘환상의 민주화’ / 2/27(금) / TV 아사히 계열(ANN)
[사진] 우크라이나 침공 4주년, 일본의 지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부터 4년. 푸틴 정권은 과거 서방 사회에 화합적이었으며, 문화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왜 강권 국가로 돌아가게 되었는가. ‘환상의 민주화’ 이유를 살펴본다.
◇ 바닥에서의 고성장
푸틴 정권이 들어서기 전을 보면,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고 옐친 씨가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다음 해인 1992년에 소비자 물가가 1년 만에 약 26배 상승했다. 1998년에는 재정 악화로 국가 부채를 갚을 수 없게 되었다. 디폴트 =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2000년 5월, 옐친 씨의 후계자로서 당시 47세였던 소련 정보기관 KGB 출신 푸틴 정권이 출범. 전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급등을 배경으로, 천연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실질 경제 성장률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연 평균 약 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 와중에 서구 문화도 차례로 유입되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고급 나이트클럽이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또한 2001년에는 에릭 클랩튼, 2006년에는 마돈나 등 서양의 유명 뮤지션들이 모스크바에서 공연을 열었다.
한편, 서구 문화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여성 듀오 ‘t.A.T.u.(타투)’가 서양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정치·외교 분야의 변화로는 정상회담에 참여한 것. 2006년에는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G8 주요국 정상 회의’가 열렸다.
◇ 터닝포인트 연설
서방과 협조적이었던 푸틴 대통령. 하지만 그 이후, 갈등을 심화시키는 전환점이 된 것은 2007년 연설이었다.
2007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 회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 비판에 더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각국 정상 앞에서 펼쳤다.
"비정부기구(NGO)가 외국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 이를 우리나라에서 외국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어느 나라든 선거 자금에 관한 규칙이 있다. 외국 정부가 NGO를 통해 선거운동까지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주장의 배경으로 보이는 것은 조지아에서 2003년에 일어난 ‘장미 혁명’과 우크라이나에서 2004년에 일어난 ‘오렌지 혁명’이다. 두 경우 모두 국내외 감시단이 선거의 ‘부정’을 지적하면서 시민들의 시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친유럽파 정권이 탄생했다.
이러한 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 뒤에 있는 서방의 지원과 그 자금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는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정치 활동을 하는 단체와 개인을 사실상 외국 스파이로 간주하는 ‘외국 대리인’ 제도를 도입. 그 이후로 언론과 표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 ‘100% 안전하지 않다’
일본에 사는 러시아인에게도 ‘조국의 현재’에 대해 물었다.
- 20대 여성
“나는 절대 전쟁에 반대합니다. 전쟁은 절대적인 악이며, 피해야 합니다"
- 40대 여성
“침공 전에는 밝은 미래를 믿었지만, 침공 후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에 일본을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친척·친구가 살고 있다는 1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 있든 100%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 의견을 직접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정권 비판을 하는 SNS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확산시켜도 구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 2월 27일 방송분에서)
TV 아사히
ウクライナ侵攻4年 プーチン大統領、欧米敵対の深層 ロシア“幻の民主化”
ウクライナ侵攻4年 プーチン大統領、欧米敵対の深層 ロシア“幻の民主化” / 2/27(金) / テレビ朝日系(ANN)
ウクライナ侵攻4年 日本の支援は?
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全面侵攻から4年。プーチン政権はかつて、西側社会に融和的で、文化の受け入れにも積極的だった。なぜ、強権国家に戻ってしまったのか。「幻の民主化」の理由を見ていく。
どん底からの高成長
プーチン政権誕生以前を見ると、1991年にソ連が崩壊し、エリツィン氏がロシアの大統領となったが、翌92年に消費者物価が1年でおよそ26倍に上昇。98年には、財政悪化で国の借金が返せなくなる。デフォルト=債務不履行を宣言した。
そんなどん底の状況の中、2000年5月、エリツィン氏の後継として当時47歳、ソ連の諜報(ちょうほう)機関「KGB」出身のプーチン政権が発足。折しも世界的なエネルギー価格高騰を背景に、天然資源豊富なロシアは驚異的な経済成長を遂げ、実質経済成長率は、2000年〜2007年までで年平均およそ7%の高成長となった。
そうした中、欧米の文化も次々と流入した。モスクワでは、高級ナイトクラブが多くの人でにぎわった。また、2001年にはエリック・クラプトン、2006年にはマドンナなど、欧米の有名ミュージシャンがモスクワで公演を行った。
一方、西側の文化を取り入れるだけでなく、ロシアの女性デュオ「t.A.T.u.(タトゥー)」が、欧米や日本でも大ヒットを飛ばすなどした。
さらに、政治・外交面の変化としては、サミットに参加。2006年には、プーチン大統領の地元であるサンクトペテルブルクで「G8主要国首脳会議」が開かれた。
ターニングポイントの演説
西側と協調的だったプーチン大統領。しかしその後、対立を深めていくターニングポイントとなったのが2007年の演説だった。
2007年、ドイツ・ミュンヘンで開かれた安全保障会議。プーチン大統領はアメリカ批判に加え、次のような主張を各国首脳らの前で繰り広げた。
「非政府組織(NGO)が外国政府から資金提供を受けている場合、それは我が国で外国の政策を推進する手段と見なす」
「どの国にも選挙資金に関するルールがある。外国政府がNGOを通じて選挙運動にまで資金提供を行っている場合がある。これが、正常な民主主義と言えるのか?」
こうした主張の背景にあったとみられるのが、ジョージアで2003年に起きた「バラ革命」とウクライナで2004年に起きた「オレンジ革命」だ。どちらも国内外の監視団が選挙の「不正」を指摘したことで、市民の抗議活動が拡大。親ヨーロッパ派の政権が誕生した。
そうしたことからプーチン大統領は、民主化運動の背後にある欧米の支援、その資金を断ちたい狙いがあったとみられる。2012年には外国から資金提供を受けて政治活動を行う団体や個人を、事実上の外国のスパイと見なす「外国代理人」制度を導入。以降、言論や表現に対する統制を強めている。
「100%安全ではない」
日本で暮らすロシア人にも「祖国の今」について聞いた。
20代女性
「私は絶対に戦争に反対です。戦争は絶対的な悪であり、避けるべきなんです」
40代女性
「侵攻前は明るい未来を信じていたが、侵攻後は未来への期待を失った」
そして去年9月に来日し、ウクライナに親戚・友人が住んでいるという、10代の男性はこのように話している。
「政権への反対意見を口にする人は、世界のどこにいても100%安全ではないと思う」
反対意見を自ら述べるだけでなく、政権批判をするSNSに「いいね!」をしたり拡散させたりしても、拘束の対象になることがあるという。
(2026年2月27日放送分より)
テレビ朝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