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냐아.. 이제 완결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뭐 언제나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 이제 3연참 2번만 하면 종료..
5편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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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편 하나의 과거에 대한 두 개의 해석
레어가 조용하다. 제일이 요즘 아무일도 안하고는 그냥 멍하니 있기 때문이다. 으음, 예전의 연패의 충격이 그리도 컸나? 결국 이겼다고는 할 수 있지만 스스로도 찔리는 승리이긴 했겠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저렇게 멍하니 있다니 정말 신기하군. 절대로 침울해진다는게 불가능한 녀석인줄 알았는데.
"마스터. 뭔가 안 좋은 일 있으십니가?"
멍하니 식탁에 앉아있는 제일에게 페일녀석이 다가가더니 말을 건다. 내 생각에는 페일, 네가 그 녀석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힌게 그 원인인것 같은데. 너도 참 한두판쯤 못이기는척 져줄것이지 그렇게 최선을 다하란다고 정말 다하냐. 두 녀석은 내가 듣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지 그냥 대화하기 시작했다.
"응? 아냐. 안 좋은일은 무슨. 그냥 옛 생각좀 한다고. 아아 그러고보니 벌써 5년이구나. 선생님 밑에 들어온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었네."
흐음, 그러고보니 벌써 그렇게 되었군. 그것참 참으로 험난한 세월이었지. 휘유, 얼마나 힘겨웠던지. 정말이지 처음에 자고 일어나보니 녀석이 내 레어문을 두들기고 있었지. 그러면서 뭐 제자로 삼아주세요? 그 어이없음에 좋은 말로 타일러서 내보내려고 했건만 멋대로 레어안에 들어와서는 인테리어가 어떻니 가구배치가 어떻니 하는데는 황당하기만 했다. 그리고 처음에 삼일동안 바로 귓가에 대고 계속 중얼거리면서 제자로 삼아대고 조르는것은 무시했다. 그 다음에는 힘을 동원해서 쫓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마법에도 녀석은 끄덕도 하지 않았고, 결국 십일째 녀석이 내 귀에 속삭였을때 난 항복하고 말았다. 그때는 차마 강한 마법을 쓸 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전력을 다했어도 상대가 안되었을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는 않았지만.
뭐 어딘지 모르게 녀석에게 끌리기도 했던것도 사실이고. 어쩌면 녀석이 포기하고 돌아갔다면 내가 도로 불러세웠을것 같다. 중간에는 녀석이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자는 마음이었으니까. 여하튼 십일째 되는날 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고 그길로 녀석은 내 레어에 눌러붙었다. 덕분에 비싼 물품은 하나도 레어안에 남은게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후회되지는 않는군. 인간들 이야기가 생각난다. 무수한 보석을 자랑하는 부자한테 자신에게는 그보다 더한 보석 둘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자식을 내보인 이야기. 자식을 낳을수 없는 드래곤인 내 입장에서 어느 사이엔가 녀석이 마치 나의 후계자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고할까. 그 철딱서니없음은 드래곤으로서 실격이지만, 뭐 차차 가르쳐나가면 되겠지.
"하아. 페일아. 그러고보면 세월이 참 빠르다는게 맞는 말인가봐."
제일은 그러면서 페일을 쓰다듬었고 페일은 눈알을 슬쩍 굴렸다. 대체 저 놈이 뭘 잘못 먹었길레 저런 소리를 하는거지? 혹시 지금 저거 제일의 탈을 쓰고 뭔가 다른게 변신한거 아냐?
"아아, 처음 들어왔을때 레어가 얼마나 황량했는지, 좀 사는곳 답게 만든다고 무척 고생했었지. 지금은 여기저기 그림도 걸려있고, 조각도 놓여있고 여기 주방도 있고 저기 침실도 있고 조기 게임룸도 있고 그렇지만 말야. 내가 처음에 왔을때는 선생님이 자는 이따마한 방 하나. 그냥 책 쌓아둔 방 하나. 그리고 이런저런 물건 모아논 창고 하나, 그렇게 셋 밖에 없었단다. 정말 황량했지."
.....저 녀석이 듣고 있자니.
"아아, 그 뿐만이 아냐. 도대체 낡은 물건들과 용도불명의 물건들은 왜 그렇게 많이 가지고 계시는지. 아무래도 드래곤이시다 보니 게을러서 그런걸 정리하지 않고 그냥 쌓아만 두신거겠지? 그래서 내가 다 정리했다구."
그게 정리냐. 모조리 다 부숴먹은거지. 그리고 골동품을 낡았다고 하는 놈이 어딨어? 그리고 용도불명은 무슨 용도불명. 너가 몰랐지, 내가 몰랐냐. 거기다가 내가 게을러? 쓸데없는 일로 서두르지 않는거지, 할 일 다하는 드래곤이 난데.
"그러고보니 처음 선생님에게 제자 되려고 찾아왔을때가 생각난다. 혼자서 궁상맞게 사시는게 너무 불쌍해보이시더라구. 그래서 다른 드래곤도 있지만 딱 선생님으로 정했지. 그런데 괜히 사양하시더라구. 그래도 괜찮다고 했는데, 어찌나 사양하시는지 열흘이나 점잔을 빼시더라니까."
과거사 왜곡하지마! 난 진심으로 사양했었다구. 점잔은 무슨? 지금도 네가 하던 말이 생각나다. '저 같은 제자도 없을거라니까요. 그냥 좀 삼아줘요. 네? 네? 네? 네? 그러지 말고 좀 삼아줘요. 삼아줘요. 삼아줘요.' 하긴 너 같은 제자를 둔 드래곤이 어딨겠냐. 어쩌다 휴머노이드들을 제자로 삼아 몇가지를 가리키는 드래곤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중에 너같은 제자는 없긴 하다.
"거기다가, 선생님은 게을러서 일을 하실 생각을 안 하시는 바람에 빨래도 밥도 청소도 전부 내가 해야했다니까. 뭐 그런건 옛날 이야기봐도 스승들이 제자 다 시키잖아? 수행이라는 핑계로 말야. 그게 무슨 수행이 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꽤 재밌었거든. 특히 밥하는건 이것저것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는게 너무 좋았어."
내 옷은 전부 마법이 걸려있어서 때도 안 탄다구! 너 옷 너가 빠는게 뭐가 억울해서? 고생이나 했냐? 마법 한번으로 끝냈지. 그리고 밥은 너가 해서 너가 다 먹었잖아.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제자를 착취하는 악덕 스승인줄 알겠다.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페일아, 속으면 안 돼. 끄응, 나중에 내가 아무리 사실을 설명해봐야 저 녀석은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라는 한 마디만 대답하겠지. 에휴, 그래 니들끼리 잘 놀아라.
"으응, 그래도 재밌었어. 일하는 틈틈이 오락도 사오고 만화도 사오고 영화도 사오고 이런 저런 책도 좀 사오고 그래서 이것저것 하면서 잘 놀았으니까 말야. 일이 많아도 놀 시간이 없지는 않았거든."
놀이가 많아도 가끔 틈을 내서 일을 한게 아니고? 보통 하루에 10시간 정도 자다가 일어나서 11시간 정도 놀고 2시간 정도 밥먹고 30분쯤 빈둥거리고 남은 30분에 일하는걸 가지고 일하는 틈틈이라고 말 안 한단다.
"그리고 선생님 생일잔치도 생각난다. 1500년간 아무도 안 챙겨주었다는거야. 그래서 내가 챙겨드리기로 했지. 먼저 나무 한그루 잘라서 선생님 선물도 만들고 그 전에 선생님 좋아하는 음식도 조사해서 이것저것 귀한 재료들 구해가지고 만들고. 뭐, 선생님 입맛이 생각보다 까다로우셔서 만족시켜드리는건 조금 실패한것 같지만. 선생님도 참, 그냥 모른척하고 드셔줄것이지."
맛의 문제였냐, 그게. 맛이 없는 정도면 나도 그냥 먹어줬다고. 실제로 악마튀김은 다 먹어줬잖아. 거기다가 너가 준 선물은 잘려나간 나무에 대한 보상한다고 도로 사방에 나눠줘야 했다고. 뭐, 그래도 챙겨주는 정성이 기특하긴 했지만 말이야. 근데 저 녀석이 내가 안 듣는다고 못하는 말이 없네.
"아아, 그러고보니 내 생일도 다가오네."
"마스터의 생일이 언제이십니까?"
"5월 13일."
으응? 그거 너가 내 레어에 처음 온날 아니냐? 그럼 그날이 너 생일이었어? 허 그거참. 으음, 헉? 내일이잖아? 애고. 이거 나도 뭔가 좀 챙겨줘야하려나? 끄응, 안 챙겨주면 녀석이 섭섭해하겠지? 하지만 한번 챙겨주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매년 챙겨줘야 할텐데, 어떡한다.
"뭔가 기념행사같은것을 벌일까요?"
"아니 뭐 기념행사까지야. 그냥 작은 선물이나 하나쯤 받으면 좋겠다."
"네. 뭘로 받고 싶으십니까?"
"글쎄? 몰라. 그냥 아무거나 좋으니까. 좀 오래 간직할 수 있는걸로. 쉽게 부서지는거 말고."
흐음, 오래 간직할 수 있는거라.
"선생님은 내 생일 아시려나? 으음, 어쩌면 모르실지도. 그러니까 지난 5년간 그냥 지나갔지. 하긴 생일을 기념한다는거도 얼마전에야 안 일이니까. 선생님은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그런거 안 챙기시더라구. 그런건 좀 다른 종족을 보고 배워도 좋을텐데. 좀 고지식하신데가 있어서 그런지.."
뭐, 고지식? 녀석이 그런 어려운 단어까지 배웠으니 흐뭇해야 하려나? 하여간 하는 말 하고는. 좋아, 내 너의 생일을 아주 거창하게 해주지. 근데 어떻게 해야 거창하게 한다? 녀석처럼 황당한 것들을 잡아와서는 요리랍시고 할 수도 없고, 하긴 녀석이 안 해본 요리가 몇 가지나 있을련지.
"아,맞다. 넌 너 모습 새긴 조각이나 하나 만들어줄래? 인형도 좋겠다. 기념으로 간직하면서 보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모습이라면 그냥 저를 보셔도 될텐데요."
"에에, 하지만 쬐그마하게 만들면 더 귀여우니까."
"더 작게 변신할까요?"
"아니, 실물은 그냥 이 크기가 제일 좋아."
"아아, 시간이 너무 잘 흘러간다. 그러고보면 지난 5년 참 이거 만들어보고 저거 만들어보고 이거하고 놀고 저거하고 놀다가 다 보냈네."
"후회되십니까?"
"응? 아니. 즐거웠어. 정말로. 허송세월한다는게 얼마나 즐거운건데."
하기야 너 늙는 속도 보니 모르긴 몰라도 나만큼은 살거 같은데 좀 허송세월하는 것도 재밌겠지.
"아아, 오늘은 오랫만에 일기나 써야되겠다. 엘리아나님께 비는 내 소원을 적어야지. 자러 가자. 페일. 나도 일기 쓰고 자야지."
그러면서 두 녀석은 식당에서 방으로 가더니 뭐라고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잠시 뒤에 잠잠해졌다.
으음, 저 녀석 신들께 함부로 빌지 말라니까. 으으, 아직도 그 때의 악몽이 생각난다. 흐음, 아뭏튼 녀석이 뭔가 받고 싶은 선물의 힌트가 일기에 적혀있을지도 모르니까, 한번 슬쩍 볼까?
난 살그머니 녀석의 방을 열고 들어가서 녀석의 일기장을 열었다. 그러고보면 저 녀석 내가 자기 방을 오락가락 해도 깨지 않는다. 나야 내 레어에 누가 접근하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저녀석은 방어장치나 해두고 저렇게 깊게 자는건가? 하긴, 안 해두어도 괜찮을것도 같지만.
어디 보자. 이게 뭐야?
[아아, 엘리아나님. 선생님이 해 주시는 요리를 먹어볼수 있을까요? 과연 얼마나 잘 하실지 궁금해요. 한달쯤 선생님이 해주시는 요리를 먹고 살수 있으면 좋겠는데. 헤헤, 너무 무리한 소원인가요? 그런거 빌면 나쁜 제자겠죠? 아니면 그냥 어디로 한달쯤 놀러갔으면 좋겠어요. 세계 일주여행을 다니는거죠. 다른 중간계도 가보고. 천상계도 한번쯤 가보고. 이왕이면 정령계도 잠시 가보고. 에헤헤, 그냥 하는 말이에요. 선생님도 나보고 신에게 빌지마라고 했고, 바쁘신 분한테 이런거 바라면 안 되겠죠.]
어이구 그래 식모살이 한게 그렇게 한이 맺혔냐? 따지고 보면 식모살이가 아니라 자취생활이지, 너밥만 너가 하고 너옷만 너가 빨았잖아. 뭐 여하튼 좋다. 네 말대로 요즘 좀 바쁘고 돌아가는 상황이 어수선해서 널 데리고 여행다니는건 세계가 안정화되어야 가능하겠다만 내일 하루는 내가 너 식모노릇 해주지.
난 일기장을 덮고는 밖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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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뒤 제일은 슬며시 깨어나 일기장을 보았다. 그리고는 씨익 웃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첫댓글 ..원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