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지 말고, 너 자신을 알아라.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너무 지나치지 말아라.(mehan),”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
지혜를 사랑하라.(phronesin agapa)“
이 세 마디 말 중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먼저 말한
“지나치지 말아라.”
나는 그 말이 좋다.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그리고 웃음이나 울음이나
그 모든 것들을 지나치지 않게 편벽되지 않게
행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
그러나 둘 다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옛 사람들이 말에서 말로 이어져 온 말이다.
자공이 물었다.
“사師와 상商 중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친 데가 있고, 상은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
자공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공자는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니제자 열전’ 중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는 글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자하는 서하西河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위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그는 자식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소리 높여 울다가 눈이 멀었다.
조금 모자란 듯, 조금은 어리석은 듯, 사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가장 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동학에서는 사람의 덕의 표준을
말이 없고, 어리숙하고, 서툰 곳에 둔다.‘ 고 했는데,
그와 같이 사는 사람은 작금의 이 세상에서 도태되기 가장 알맞은 사람이다.
그래도 약간은 어리숙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다음의 말은 의미가 있다.
“벼슬자리에 있을 때는 편지 한 장이라도 절도가 있어야 한다.
요행僥倖을 바라고 모여드는 무리에게 틈을 주지 않으며,
물러나 시골에 살 때는 지나치게 높이 굴지 말 것이니.
스스로의 마음을 헤쳐 놓아 옛날의 정을 두텁게 해야 한다.
<채근담> 섭세편(82)에 실린 글이다.
지나쳐서도 안 되지만, 모자라서도 안 되는 것이 삶의 이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자라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영리하고 영악하게 사소한 것에 전체를 걸고 살면서
그것이 이 세상을 잘 사는 요령인양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어설픈 세상을 위해 라 로슈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는 사람들은
대체로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다.”
사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단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만이 문제다.
2024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