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삶,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하나의 바른 길은 없다.
저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개인 모두가 다른 삶의 방식을 정하고 그 방식에 맞게 살아간다.
그리스의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디오게네스가 살았던 당시의 일이다. 그가 두부 찌꺼기를 먹고 있자, 잘 살던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왕의 말을 듣기만 했더라면 이따위 형편없는 걸 먹고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 말을 들은 디오게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것도 맛있게 먹을 줄만 알면, 그렇게 꼬리를 흔들어가며 간과 쓸개를 다 내놓지 않아도 될 것인데.”
이렇게 말한 디오게네스는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생활을 실천하면서 자신만의 세상을 살다가 갔다.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자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할 것, 가끔씩 강조하는 삶이 이런 삶이 아닐까?
“철학은 행복한 시절에는 아름다운 장식에 불과하지만, 불행한 시기에는 피난처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이 말에 가장 합당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디오게네스였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진실로 잘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삶의 권태에 짓눌리거나 고독과 외로움에 찌든 삶을 영위하다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삶을 불행한 것이라고 여기며 쓸쓸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과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에픽테토스가 나지막하게 충고하고 있다.
“그럴듯한 직함과 학위, 명예와 부, 멋진 외모와 유려한 말투, 명품과 매력적인 행동에 우리는 얼마나 쉽게 현혹되는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과 공적인 인물들, 정치 지도자들과 부자들,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행복할거라고 지레 짐작하지 말라. 남들과 견주어 자신의 성취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폄하하며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라.
지금 그대 안에 있는, 최상의 자아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려는 갈망을 이제는 멈춰라. 그것만큼은 네 뜻대로 할 수 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만족하는 자족自足하는 마음가짐이다. 천금을 다 가져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루었어도 자기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면 항상 가슴 한 귀퉁이가 텅 비어있는 듯한 허망함을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두보의 시에서 이르기를, ”고귀한 것이 없으면 미천한 것도 슬프지 않고, 부유한 자가 없으면 가난한 자도 자족할 것이다.(無貴賤不悲 無富貧亦足) 라고 했다. 천하가 모두 미천하고 가난하다면 모든 사람이 부지런하고 검소해질 것이다.“
이익 <성호사설> 인사문 <백성을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하려면>에 실린 글인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서로 비교하는 데서 온갖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담양에 아름다운 정자 면앙정을 짓고 살았던 면앙정 송순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반간半間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明月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초가삼간草家三間이란 방한 간, 마루 한 간, 부엌 한 간을 말하는데 집이 아무리 넓어도 어떻게 강산을 다 들이겠는가? 송순이 말한 바는 초가삼간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는 자족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경탄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일 것인데,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한 번 사는 삶을 무겁게 만드는 원인 중 한 가지가 아닐까?
2024년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