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위독
설 연휴 지나자 정진석 추기경은 며칠 동안 몸에 통증이 심해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하자 주변에서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추기경은 입원을 고사하였다. 2월 21일 주일 오후 통증이 점점 심해져 어쩔 수 없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직후부터 혈압이나 산소포화도 맥박 등 수치가 위험한 상황이 되자 밤중에 의료진은 교구청에 연락을 해왔다.
2월 22일 새벽 1시 반, 염 추기경의 전화를 받았다. “정 추기경님이 위독하신 것 같아… 빨리 병원에 가야할 것 같은데…” 황급히 교구청 마당에서 다른 신부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병실에 들어갔다. 힘겹게 눈을 뜨시기에 나는 손을 잡았다. 정 추기경께서 말씀하셨다. “미안해!” “아, 그런 말씀 마세요. 밖에 의사선생님이 그래요. 추기경님 증세가 너무 고통스러우실 텐데 그래도 내색을 안 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고요.” 당신을 찾는 분들에게 힘겹지만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다. 마치 마지막처럼….
추기경님은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데 빨리 그 고통을 벗어나도록 기도하자, 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더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그러자 염 추기경께서 “추기경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세요.” 하면서 이마에 기름을 발라 병자성사를 드리고 교황님의 전대사도 드렸다. 정추기경은 기도 끝에 “아멘!”이라 하셨다. 그 순간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 모습을 보자 늘 정 추기경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었다. “인생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마치고 역할이 끝나면 무대 뒤로 사라지는 거야.” “젊은 시절 세 번의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한 체험이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어. 하느님은 왜 나를 살려두셨을까? 어쩌면 내 인생은 덤으로 사는 거지.”
그 말씀을 나는 여러 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추기경님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평화신문에 기고한 정 추기경님의 일대기를 <추기경 정진석>으로 묶어 출간했었다. 그리고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 회고록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회고록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무덤에 있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그 무덤 앞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이 들려.”
입원 전에 이미 정 추기경은 스스로 고령임을 감안해 주변에 많은 걱정을 끼친다며 많은 위험을 안고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정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노환으로 맞게 되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면서 2018년 9월 27일 연명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서명했었다. 만약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이 효과가 없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주실 것을 연명계획서에 직접 글을 써서 청원했다.
정 추기경이 각막기증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라 생각한다. 아들이 사제가 되고 훗날 주교가 되었을 때도 정 추기경 어머니는 오롯이 젊은 날부터 말년까지 생계를 위해 부평에서 삯바느질을 쉬지 않으셨다. 그리고 “틈틈이 본당의 연령회원으로 봉사하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염을 하고 기도하는 것이 어머니에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어머니는 외아들을 사제로 키운 후에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제관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고 홀로 지냈다. 아들이 사제품을 받은 이후부터는 한 번도 아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혹여 홀어머니를 둔 외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는 데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노심초사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며 당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본명이 루시아인데 루시아 성녀는 로마시대 두 눈을 잃고 순교하여 눈이 아픈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의사의 사망선고 직후 정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어머니의 수술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보았다. 평생을 남에게 나누며 사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정추기경은 어머니의 유산을 모두 정리해 충북 증평군 증평읍 초중리에 땅을 사고 이를 청주교구에 기증했다.
이곳에 청주교구는 초중성당을 건립했고 본당의 수호 성녀는 ‘성녀 루시아’를 모셨다. 그러나 정작 정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 발령이 나서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 2월 25일에는 자신의 통장에 있는 잔액도 모두 필요한 곳에 봉헌하였다. 정추기경은 본래 당신 통장에 어느 정도 돈이 쌓이면 비공개로 교구관리국에 기증하거나 도움이 꼭 필요한 곳에 돈을 보내 도와주었다. 아마도 이번에는 당신의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인지 몇 곳을 직접 지정하여 도와주도록 하였다.
나머지 얼마간의 돈은 고생한 의료진과 간호사들, 봉사자들에게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신의 장례비를 남기겠다고 해서모든 사제가 평생 일한 교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그건 안 된다고 했었다. 어제 그리고 오늘도 정추기경이 선종했다는 잘못된 뉴스가 떠돌았다. 현재 정진석 추기경은 연명치료도 거부한 채 힘들게 투병중이다. 정추기경은 이 세상에서 인생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려한다. 마지막 순간이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한다. 정 추기경을 위한 기도 부탁드린다.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