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雅號)와 익명(匿名)
옛날의 시인 묵객들은 아호(雅號)를 지어 서로 존경하며 다정하게 불렀다. 예컨대 송강(松江) 정철, 노계(盧溪) 박인로, 단원(檀園) 김홍도 등을 볼 수 있고, 현대에서는 월탄(月灘) 박종화, 춘원(春園) 이광수, 금아(琴兒) 피천득 그리고 청전(靑田) 이상범 등이 문학작품이나 혹은 그림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아호들이다.
이런 아호는 예나 지금이나 점잖은 문인이나 화백들 사이에서 이름 대신 애칭으로 통용되었고, 모두가 한자로 지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때 많이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런 아호들이 보여 주는 뜻은 대부분의 경우 탈속한 자연생활의 풍취이거나 삶의 낭만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같은 예술인이면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아호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면서 특이한 점이다.
그건 그렇고 현대의 문인 가운데는 한자가 아닌 한글로 된 아호도 볼 수 있다. 시인 정지용은 이름 그대로 한글로 옮긴 ‘지용’이고, 단편 <화수분>으로 알려진 소설가 전영택은 ‘늘봄’이다. 그리고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인데, 이는 이름과 성까지 모두 바꿔버린 괴상한 아호의 경우다. 그리고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염상섭은 술을 마셨다 하면 옆으로 기는 게걸음이었다고 해서 동료 문인들이 지어준 아호가 횡보(橫步)라고 전한다. 이와 같이 ‘아호’라는 것은 멋과 품위를 가진 애칭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요즘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는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로 가정 상비품으로 컴퓨터가 갖추어져 있다. 그에 따라 각종 카페를 비롯하여 개인 홈피가 성행하고 있으니 우리는 한두 번의 간단한 손가락 조작으로 이웃을 비롯한 온 지구상의 소식을 한 눈에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멋과 낭만이 있는 ‘아호’가 아니라 장난기 섞인 닉네임 즉 ‘익명(匿名)’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 이런저런 ‘문학카페’나 혹은 기타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다한 댓글을 올려놨는데, 이런 글을 올린 사람들의 십중팔구가 자기 이름을 감춘 익명이다. 그 아호 아닌 익명의 종류는 이루 다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그 가운데 몇 개만 골라 보면 이러하다.
맨발, 붕어눈곱, 곶감아가씨, 꽃뱀, 뒷방, 초롱꽃 그리고 영어로 된 amagal, green10, sulbing 등이 있었고, 엔카카페에는 미야자키, 하나코, 다나카 등 일본인의 성이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만든 닉네임도 보인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장난스러운 가운데 귀엽고 애교 있는 닉네임들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각자 나름의 재미로 만든 익명들이겠지만, 문제는 자기 이름을 감춘 골방에서 마음 놓고 씹어대는, 상대방에 대한 악담이 문제인 것이다. 내가 눈을 감았다고 해서 깜깜한 밤이 아니지 않은가. 온 세상 사람들은 환한 대낮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장난으로 던진 내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개구리는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어떤 카페이건 이런 살롱을 찾아 산책하는 사람이라면 교양 있고, 센스 있는 문화인임에 틀림없을 터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마음 아플 뿐이다.
보잘 것은 없지만, 수필이랍시고 쓰고 있는 나에게도 가까운 문우들이나 애독자들이 이메일을 더러 보내온다. 그런데 깜박했겠지만, 가다가는 일상 사용하던 닉네임 그대로의 이메일을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보내 와서 궁금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누구인지를 몰라 고마운 이 편지에 대한 답신을 보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맨발’이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아느냐고 ‘114’에 문의해 보려고 했겠는가. ‘맨발’로 천 리 길을 도망쳐 버렸는지 찾을 길이 없다. 참 애교스럽고 재미있게 돌아가는 세상살이다.
- 정호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