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이탈리아 트레비리(현재 독일의 트리어)의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그러다 뜻밖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 선임되어, 그 뒤 아리우스파를 거슬러 올바른 신앙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노력하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성인은 39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리고 대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암브로시오 주교를 가톨릭 신앙의 스승으로 세우시어
사도의 용기를 보여 주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시어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고대 철학자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탈레스(BC 624-546)의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물웅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밤길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깊은 생각에 골몰하다가 그리된 것이었지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하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의 이치는 알려고 하면서 바로 눈앞의 웅덩이는 보지 못하는군요.”
정곡을 찌르는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모습도 반성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눈앞의 현실은 보지 않고 뜬구름 잡기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전혀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전혀 일하지 않으면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 뜻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사람이 과연 구원은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가능하기도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뜻을 바라보며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어떤 시련과 고통의 걸림돌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언제나 굳건하게 주님을 향해 나아가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면서 눈앞의 웅덩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지금을 충실히 살 수 있는 모습이 필요했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게 지금을 사는 그 충실한 모습이 하늘 나라라는 최고의 선물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진짜로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안에서는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사람은 박해가 닥치거나 어려움이 오더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어떤 실천도 하지 않은 사람은 박해가 닥치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얼른 주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집니다.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가 우리 삶의 행복을 좌우한다(로버트 윌딩거).
사진설명: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