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연세대 교수·정치학
의회 동의 여부 역시 해답은 분명하다. 이 협정은 한국의 주권을 침탈한 적이 없는 여느 국가와의 군사협정이 아니다. 한국의 국가주권을 부인·침탈·병탄했던 국가와의 ‘군사’협정 체결 문제가, 헌법 제60조가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권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실질적 차원에서 금번 협정 체결로 한국이 얻을 실익은 무엇일까? 한·일이 미국·중국·유럽에 관한 군사정보를 교류하여 공통이익을 증진시키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북한 문제’에 대한 정보 공유와 교류 정도일 것이다. 실익이 거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스스로 갖고 있거나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정보를 넘어, 일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 들어 악화된 남북관계가 한·일 군사 밀착을 초래하였다면 더욱 문제다. ‘양자관계’ 차원에선 건국 이래 모든 한국 정부가 분리하여 접근했던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연동시킨 최초의 정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통일·평화·안보·주권 문제에 일본을 ‘직접’ 연루시킨다는 것은 어떤 한국 정부도 시도하지 않은 금기였다.
한·미·일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였고 박정희는 한·일 ‘경제’ 협력에 한정하였다. 또 노태우의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의 제안 이래 김대중과 노무현은 동북아 협력기구나 6자회담을 통해 한국의 안보·평화·통일 문제에 대한 일본의 참여를 허용하였으나 ‘다자 기구와 다자 틀’의 범위에서였다. 건국 전후의 ‘반공’과 ‘친일’, ‘빨갱이 타도’와 ‘친일세력 부활’ 사이의 연쇄고리를 연상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증오와 대일 밀착 연동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하지하책인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 증대와 대북 압박을 위해서라도 한·일 군사협력은 득책이 될 수 없다. 중국-소련-북한의 사회주의 진영이 현재의 중국-북한 양자 협력체제보다 훨씬 강력했던 냉전시대에도 없었던 한·미·일 군사협력·동맹체제를 추구한다는 것은 미·중 G2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국가 책략이 아닐 수 없다. 한·일 협력과 한·중 협력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외교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독도, 위안부,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식민 통치 배상과 같은 인권·역사·영토 문제에서 일본의 태도는 안보협력의 중대한 고려요인이 된다. 이 문제들에서 극우세력 및 군국주의 향수파들이 바로 일본의 군대 보유, 해외 팽창을 추구하는 세력이라는 점은 금번 협정 체결 시도가 일본의 평화세력과 극우세력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 한·일 연대와 동북아 평화에 정녕 도움이 되는지를 숙고하게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바른 한·일 연대를 향한 교정 능력을 보여주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미국의 구상 역시 냉정히 촌탁해야 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을 기축국가로 삼는 동북아 안보질서를 추구해왔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한·미·일 군사협력·군사동맹 체제를 거부한 이유는 일본의 대두만큼 약화될 한·미 동맹 체제 때문이었다. 냉전시대 한국에 한·미 ‘동맹’은 단순한 ‘북한 저지’를 넘어 ‘중국 봉쇄’ ‘소련 봉쇄’와 ‘일본 견제’를 위한 다층적 안보협력 구도였다. 비밀문서들이 보여주듯 한·미 동맹을 촉진·강화시킨 한 요인 역시 미·일 접근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압력으로 인한 일본 ‘군사’ 역할의 증대는 한국인들로서는 과거 악몽의 재연에 가깝다. 한국민들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조약, 일반명령1호,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독도 문제, 동해 표기 문제 등에서 미국이 일본 이익을 위해 한국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온 역사를 잘 기억하고 있다. 한국민들에게 미국이 주도하는 오늘의 ‘일본 대두’ ‘한·일 접근’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적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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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다른 정부에서는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외교 참사에 가까운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쇠고기 협상, ARF 의장성명 파동, 남북 정상회담 준비 비밀 접촉 공방, 계속 드러나는 자원외교 실패 사례, 그리고 한·일 정보보호협정 서명 보류에 이르기까지 한국 규모 국가로서는 ‘외교’라고 하기조차 부끄러운 국제관계를 반복하고 있다. 국가 경영에서 외교 실패는 공동체에 치명적인 유산을 남긴다. 대통령을 포함한 담당자들은 잦은 참사 앞에 깊이 숙고하고 거듭 성찰하길 당부드린다. 참사를 막는 최고의 현책은 바로 국민에게 묻는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첫댓글 바른지적에 감사하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