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L 1966, 인간 다이아몬드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이탁용 친구의 부인이신 김옥선 여사께서 책 한 권을 펴내셨다.
2011년 5월에 도서출판 ‘비지아이’에서 펴낸 ‘사는 재미 편한 재미’라는 제목의 수필집이 그것이다.
마치 자기 혼자만 보는 일기를 쓰듯, 그때그때 생각한 그대로 본 그대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들이었다.
모두 99편의 일상 경험담들로 엮어져 있었다.
‘레크레이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레크레이션 사회 보기를 좋아해서 남편 동창회 송년모임에서 사회를 본 경험담을 담고 있었고, ‘스포츠 댄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팔순의 할머니 한 분이 TV에 나와서 현란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고 스포츠 댄스를 배우게 된 그 사연을 담고 있었고, ‘가가례’(家家禮)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한 집안의 맏이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이 집안 제사를 줄여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고, ‘괜찮은 친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법조인이 된 아들을 아주 평범한 규수에게 장가들이는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오월의 신부’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오월에 시집가는 딸아이에게 편지 한 통 써서 그 손에 쥐어주는 엄마의 마음을 담고 있었고, ‘튀는 노랫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사랑의 이름표’라든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라든가 ‘내가 만일’이라든가 ‘아름다운 구속’이라든가 해서 부르기 쉽거나 시적인 가사가 마음에 들어 좋아하던 노래에서 왁스의 ‘머니’ 박상민의 ‘무기여 잘 있거라’ 김혜연의 ‘화난 여자’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짱가’ 등 톡톡 튀는 노랫말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그 취향의 변화를 담고 있었고, ‘12월 11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대학 동창회장을 맡아 송년 모임을 주관하게 된 어느 해 그날에 동기동창 친구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서 겸손의 리더십을 배웠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있었고, ‘황금기’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부모님 살아계시고 남편 있고, 결혼한 자녀에 미혼인 자녀까지 해서 한 가족이 오순도순 함께 살고 있는 50대의 자기 자신을 두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 같다면서 스스로 칭송하는 마음을 담고 있었고, ‘힐러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르윈스키 스캔들의 주인공인 남편 클린턴의 죄과를 묻고 넘어가는 힐러리의 처신에서 배웠다는 그 용서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한 편 한 편 그 모든 글에, 내가 있었고, 아내가 있었고, 내 형제 자매가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와 베풂이 있었다.
그 많은 글 중에, 유난히 더 빛나 보이는 글이 있었다.
‘다이아몬드’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얼마 전에 홍콩을 여행하였다. 생활비를 아껴서 간 짧은 여행이었는데 관광회사에서는 명승지 안내보다 쇼핑 알선에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귀국 전날에도 현지 가이드는 보석이 즐비한 면세점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한국말을 잘하는 판매원은 현란한 보석에 눈을 반짝이는 주부들을 집요하게 공략하였다. 홍콩은 면세국가라 값이 싸고 품질이 좋아 쇼핑만 잘하면 여행 경비가 빠진다며 충동구매를 부추기었다.
살까 말까 망설이던 부인들이 카드 할부도 된다는 말에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 시간 후 면세점을 나올 때는 부인들 약지에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빈손이 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내가 끼다가 며느리 맞을 때 주려고 샀어요. 자질구레한 거 여러 개 해주느니 다이아 반지 하나가 더 낫다고들 해서요.”하며 자랑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들을 했다.
요즈음 생활 형편이 나아져서인지 다이아몬드 반지가 흔해졌다. 예전에는 부짓집에서나 다이아몬드로 예물을 장만하더니 지금은 웬만한 서민들도 흉내를 내는 추세이다.
친척 중에 시집 잘 갔다고 소문난 아가씨가 있다. 신랑 집에서 보낸 함 속에는 12가지 보석이 세트별로 들어 있었고, 고급 시계만도 4개나 되었다. 신부 어머니는 자랑이 하고 싶어 집에 오는 사람마다 함을 보여주었고, 그 바람에 내 눈도 호강을 하였다. 특히 알이 꽤 크던 다이아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와 팔찌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별거 중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속아서 한 결혼이라는 소문이 있다.
한 시민 단체에서 벌이는 ‘혼수비용 거품빼기’ 운동을 나도 지지한다. 이 운동이 널리 퍼진다면 보석에 들이는 혼수비용도 줄 테고, 물신풍조 풍조도 많이 개선될 것이다.
나는 보석에 별 관심이 없다. 이름도 잘 모르려니와 손에 끼고 귀에 거는 걸 귀찮아하는 편이다. 결혼 때 소박한 패물 몇 가지를 받았는데 고이 간직했다가 훗날 며느리에게 줄 생각이다. 어느 아가씨가 며느리 될지 모르지만 부디 속이 꽉 찬 규수이길 빌어 본다.
우리 속담에 ‘바리바리 싸간 년 치고 잘 사는 년 못 보았다.’는 말이 있다. 혼수의 과다가 행복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이다.
다이아는커녕 구리반지 하나 못 받고도 잘 사는 부부가 좀 많은가!
김 여사의 인간미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글이었다.
맏이 장가들일 때, 한사코 예단을 받지 않았던 내 모습도, 그 글 속에 함께 녹아 담겨 있었다.
그 김 여사가 드디어 무대로 나섰다.
이번 여정의 두 번째 밤에, 우리들 고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이 함께 어울린 MVL호텔 컨벤션 룸의 그 단상이 바로 그 무대였다.
김 여사가 앞장서서 이끄는 대로, 우리는 따라 노래도 불렀고 어깨동무도 했다.
부인이 그렇게 나섰다고 누구하나 토 다는 친구 하나 없었다.
김 여사의 그 리더십, 굳이 손가락에 끼고 목에 걸어야 빛나는 그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곧 인간 다이아몬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