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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민위본(國以民爲本)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위정자나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백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國 : 나라 국(囗/8)
以 : 써 이(人/3)
民 : 백성 민(民/0)
爲 : 할 위(爫/8)
本 : 근본 본(木/1)
출전 : 사기(史記) 권97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
나라의 근본은 무엇인가? 예로부터 많은 왕과 신하들은 나라의 근본을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어떤 이들은 군주라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백성이라 하였다. 그것은 각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가 가진 정치사상에 따라 정치 행위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나라의 근본이 군주라고 한 사람들은 군주의 권한 행사를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기도 하였는가 하면, 폭군의 행세를 하면서 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왕들의 최후는 항상 나라를 패망에 이르게 하고 왕좌에서 쫓겨났다.
중국 삼국시대 손호(孫皓)는 오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다. 손호는 유명한 손권의 손자로 오나라의 3대 황제에 올랐지만, 할아버지인 손권과는 달리 백성을 수탈하고 폭정을 일삼아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명성을 완전히 망가뜨린 패륜의 군주였다. 그의 폭정은 계속되어 결국 진(晉)나라에 나라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때 난세에 나라를 지키는 데 탁월했던 육개(陸凱)라는 충신이 있었는데 육개는 왕의 전횡을 막기 위해 강직하게 간언을 했다. 오왕 손호도 다른 이들은 함부로 죽이고 제거했으나 육개만은 함부로 하지 못했다.
명재상 육개는 피폐해진 나라를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무릇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므로 진실로 그들의 식량을 중시하고 목숨을 아껴줘야 합니다.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여깁니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신이 듣기로 도가 있는 군주는 백성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무도한 군주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백성을 즐겁게 하는 자는 자신의 즐거움도 영원하지만, 자신만 즐겁게 하는 자는 곧 멸망하고 맙니다."
이 간언에는 통치자가 어떤 정치사상을 가지고 정치에 임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핵심이 드러나 있다. 만약 통치자가 자신이 나라의 근본이라 생각하면 자신을 위해 백성을 함부로 대할 가능성이 크다. 세금을 늘리고 폭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후한 말기 환제와 영제 재위 때처럼 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이들을 십상시라 부른다)을 가까이하여 자신의 안위와 향락에 빠져들어 결국 민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망하게 하기 쉽다. 그 결과는 처참해진다. 그러나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는 왕은 나라의 근본을 위해 생활을 절제하면서 충신을 가까이하고, 백성의 삶을 위해 산업을 육성하는 등 온갖 선정을 베풀 것이다.
역사 속의 이들은 맹자가 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왕이 백성을 존중하므로 백성이 왕을 존경하고 따르는 태평 성세)하는 왕으로 성군이라 칭한다. 중국 전설의 시대 성왕(聖王)들이 그랬고, 우리나라 세종대왕이 그랬다. 대체로 백성의 삶이 넉넉해지고 나라가 발전하여 부국강병 속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시절의 왕들은 늘 백성의 넉넉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육개가 손호에게 올린 상소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첫째, 국이민위본(國以民爲本), 즉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면 백성의 어떤 삶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며, 백성들이 생명의 위태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모든 정치의 근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성이 배불리 먹게 하려면 산업을 일으켜 백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넉넉하게 생산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백성이 생명의 위태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법질서가 확립되고 치안이 잘 유지되어야 하며, 국방이 튼튼하여 외적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역사상 훌륭한 지도자들은 모두 이런 일에 매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튼튼한 국방과 강성한 군대는 왕(통치자)의 야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의 안위와 넉넉한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의 넉넉한 삶과 법질서 확립에 노력한 현명한 군주들은 국방에도 매진하였으며 백성들 또한 국방에 자진하여 몸을 바쳤다. 만약 국방에 실패하여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백성의 생명과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하며 적국의 노예 상태에 빠진다.
지금의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이 그것을 말해주며 원나라(몽고) 치하의 고려 백성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조선 백성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 백성들과 6.25 전쟁으로 인한 한국 국민의 비참한 삶이 그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국방 또한 민생(民生)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그 국방의 중심에 백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육개의 상소에서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이라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존하는 모든 것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다.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전제이며 그 어떤 권력자도 예외일 수 없다. 먹는 것(食)은 생존과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는 가장 먼저 그것을 살펴야 한다.
오늘날 우린 그것을 민생이라 말한다. 따라서 모든 정치는 민생을 넉넉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넉넉한 민생은 생산을 증대시키므로 국민 각자의 소득을 늘리게 하여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산업을 늘리고 내실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중국의 성군(聖君)이라 일컫는 삼황 시대의 복희씨가 사냥하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사냥도구를 개발하여 보급하였던 일, 신농씨가 널리 농법을 일깨웠던 일, 순임금이 치수(治水)에 능하였던 일,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이 권농교서(勸農敎書)를 널리 보급한 일 등 모두가 백성이 먹고사는 일과 생명의 위태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먹고 사는 일은 생명의 위태함을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며 민생을 정치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도 같다. 그것을 경시하는 권력은 그 어떤 권력도 오래 존속할 수 없고, 존속하여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셋째, 군주는 백성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무도한 군주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옛날 패륜의 군주 걸왕(桀王)은 자신의 향락을 위해 신하와 백성을 함부로 대하였기에 탕왕(湯王)은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다시 세우고 기강을 바로잡았다. 공자가 대학(大學)에서 말했듯이, 탕왕은 늘 자신을 절제하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가다듬다)의 자세로 선정(善政)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나라는 안정되고 백성의 삶은 넉넉해졌다.
위의 말에는 군주는 자신의 즐거움에 정치의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즐거움에 중점을 두는 정치를 하여야 하며, 백성을 즐겁게 하는 것은 백성의 존경과 충성으로 이어짐으로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백성을 멀리하는 군주는 백성의 원망을 사서 권력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향락과 폭력을 일삼았으며 특히 성도착증 환자라 할 만큼 수많은 여성을 농락하였다. 그는 어린 날 자신을 보살펴 준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연산군의 큰 어머니)까지 겁탈하여 임신까지 시키는 등 패륜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박씨는 자살하였으며 그것은 중종반정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조선은 조광조의 개혁정치로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는가 했더니 영조와 정조 시대를 제외하고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지 않고 군주와 권력을 근본으로 삼은 결과 나라는 피폐해지고 열강의 침탈 속에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말한 모든 이야기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높은 지지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이라도 그 정치가 국민을 근본으로 삼지 않고 권력과 권력의 향유에 집중하게 되면 국민은 그를 멀리하게 된다. 따라서 다음 선거에서 그와 그가 속한 정당을 선택하지 않는다. 국민이 선거에서 선택하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은 스스로 민생을 덜 살폈음을 성찰하여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은 그것을 망각하고 정치적 술수와 권력의 줄서기에 매진하려 한다. 민주국가에서 현명한 국민은 국민의 삶을 근본으로 삼지 않고 권력연장과 추구에 매진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응징하는 자세를 취할 때 스스로 민생을 지킬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기도 하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근본으로 삼는 정치는 민생에 최우선을 두고 산업을 다양하게 육성하고 일자리를 늘리며 소득을 증대시켜야 하며, 법질서를 확립시켜 치안을 바르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여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겨다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은 2000년 전 육개가 말한 정치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기다리고 있다. 새 정부는 우선적인 과제로 힘든 민생을 챙기겠다고 한 것은 매우 훌륭한 정치적 정신의 산물이며, 바람직한 정치적 과제라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민생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늘려 국민의 소득을 증대하고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일은 모든 정치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또 법의 권위를 높이고 치안을 유지하여 국민이 생명의 위협 없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튼튼한 국방과 외교적 노력으로 어느 나라도 감히 넘겨다 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 가치는 국이민위본(國以民爲本)에 있다. 그 어느 것도 이것을 넘어설 수 없으며 이것을 제쳐 둔 모든 정치적 행위는 기본을 망각한 행위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이 권력이 근본이 아니라 국민을 근본으로 여기기를 바라며 온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근본으로 여기지 않는 정치인과 정치 세력을 몰아내는 노력을 하여야 자신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라의 근본은 백성(국민)이다.
국이민위본(國以民爲本)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중국 오나라 재상 육개의 간언이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걸 하늘로 여긴다."
요즘 '먹방'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먹는다의 '먹'과 방송의 '방'을 합친 신조어로, 다양한 방송매체에서 연예인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먹성 좋게 잘 먹는 장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이런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그 첫째가 다이어트 때문에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1인가구가 늘면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로 방송을 시청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유가 어떻든간에 방송매체에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조리하고, 맛있게 먹는 것을 소개하는 일을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전국의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때도 있다. 정작 그 음식의 근본이 되는 '농업'과 그 일에 종사하는 '농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기 때문이다.
國以民爲本(국이민위본)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손호(孫皓)에게 명재상 육개(陸凱)가 올린 상소문에 있는 구절이다. 손호는 손권의 손자로 오의 3대 황제에 올랐지만 폭정을 일삼다가 진(晉)나라에 나라를 넘겨줬던 인물이다. 난세에 나라를 지키는 데 탁월했던 손권과는 달리 손호는 백성을 수탈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어 망치고 말았다. 육개는 이러한 황제의 전횡을 막기 위해 강직하게 간언을 했던 충신으로, 손호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육개가 올린 상소문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신이 듣기로 도가 있는 군주는 백성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무도한 군주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백성을 즐겁게 하는 자는 자신의 즐거움도 영원하지만, 자신만 즐겁게 하는 자는 곧 멸망하고 맙니다. 무릇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므로 진실로 그들의 식량을 중시하고 목숨을 아껴줘야 합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구절의 의미는 굶어죽는 사람이 다반사였던 시절, 식량을 얻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로부터 훌륭한 군주들은 백성들이 경제적 안정을 누리도록 선정을 펼쳤던 이들이었다. 세종대왕은 '권농교서(勸農敎書)'에서 '백성들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농사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며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중국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춘추 5대 패왕'으로 만들었던 명재상 관중도 자신의 통치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백성들은 곳간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관중은 제나라를 군사대국뿐 아니라 '예의염치'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대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도 '만약 관중이 천하를 바로잡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 오랑캐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라고 관중을 높이 평가했다. 관중이 품은 통치철학의 핵심은 바로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 있었다. 아무리 부강해져도 나라의 근본이 되는 백성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면 나라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관중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고사들을 첨단과학 시대인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해도 식량을 자족하지 못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 환경파괴 때문에 앞으로 무력에 기반한 전쟁보다 식량 전쟁이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 우리 역시 눈앞의 경제이익만으로 정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식량부족의 시대를 대비하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요즘 각 분야의 리더들이 '경제민주화'를 많이 주장하고 있다. 이 말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나라는 국민이 근본'이라는 철학과 그것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농업'과 '농민'이라는 사실도 깊이 새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학유치민사(學由治民事)
공부하는 이유는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인데 그 다스림은 섬김으로 하라는 말이다.
선비를 만나면 관을 벗기고 그 관에다 오줌을 누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공부했다는 먹물들에 대한 이를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북북 가는 게 한 고조 유방이다. 직업이 죄수 호송인 탓에 죄짓고 잡혀오는 선비에 대한 학대도 여간 아니었다. 그런 파락호에게 벼락같은 축복이 있었으니 패왕별희(覇王別姬)로 압축되는 진나라 시황제의 죽음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위기를 위험 정도로 받아들여 뜻이 절반만 사용되고 있는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생겼다. 그것을 실천해서 성공시킨 인물이 유방이고, 유방이 항우와 진류현(陳留縣)에서 천하 자웅을 겨루던 어느 날 진류현 골짜기에 사는 선비 역이기(酈食其)가 찾아와 내놓은 계책중 하나가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는 책(策)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이를 재해석 하기를, '백성을 하늘로 삼는 이는 임금이며, 밥을 하늘로 삼는 이는 백성이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라고 풀면서 역이기(酈食其)의 민인(民人)을 인(人)을 빼고 민(民)만 썼다. (민인을 인민으로 바꾼 이가 모택동이다)
이 말에 대해서 세종 임금은 농사를 권장하는 글을 통해서 이렇게 풀어낸다. 임금이 전교하기를(下敎曰),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國以民爲本)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것인데(民以食爲天), 농사(農者)는 옷과 먹는 것의 근원이므로(衣食之源) 임금이 정치에서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而王政之所先也)."
그러면서 이에 대한 부안설(附按設)을 다는데 농사는 백성을 살리는 천명에 관계되는 까닭에(惟其關生民之大命) 천하의 지극한 노고로 힘쓰는 것이다(是以服天下之至勞).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으로 지도하여 거느리지 않는다면(不有上之人誠心迪率) 어떻게 백성들이 부지런히 힘써서 농사에 종사하여(安能使民勤力趨本) 그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以遂其生生之樂耶).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권105 26년 1444)
여기서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할 부분은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으로 지도하여 거느리지 않는다면'을 뜻하는 '불유상지인성심적솔(不有上之人誠心迪率)'이다. 세종대왕이 말하는 '위에 있는 사람'이란 직급이 낮은 공무원부터 일인지하 만인지상 지위인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임금의 눈과 귀가 되고 팔과 다리가 되어 나라 안 국민 모두를 맘 편히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일이다. 바로 이점이 세종대왕께서 주역과 서경의 부안설까지 달면서 생생지락(生生之樂)이라는 문장을 쓴 이유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 했고, 상서 반경에서는 왕재생생(往哉生生)이라 했다. 모두 백성을 맘 편히 잘 살게 하라는 뜻이다. 설령 잘못된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이거나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절딴 내는 일이 아니라면 벌주고 위협하고 옴짝달싹도 못하게 옥죄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가를 알아보고 수정하고 보완해서 국민으로 하여금 더 잘 살게 해주는 것이 그들이 임금을 대신해서 국민들에게 해야 할 일이다.
공무원이란 권력자가 아니다. 맹자 양혜왕장구상 제7장에 "제나라 선왕(齊宣王)이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은 어떤 군주 입니까?"라고 물으니 맹자(孟子)는 답한다. "이런 까닭에 군주는 백성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是故明君制民之産), 반드시 위로는 그것으로 부모를 섬김에 풍족하고(必使仰足以事父母), 아래로는 그것으로 처자식을 기르는데 충분하게 하여(俯足以畜妻子) 풍년에는 몸을 마치도록 배부르고(樂歲終身飽) 흉년에라도 죽음에서 벗어나니(凶年免於死亡), 그러한 뒤에야 권해서 선으로 가게 한다(然後驅而之善). 그래야 백성이 따르기 쉬운 것이다(故民之從之也輕)."
여기서 '국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는 제민지산(制民之産)의 고사가 나왔다. 학유치즉사(學由治民事)라 했다. 공부하는 이유는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인데 그 다스림은 섬김으로 하라는 말이다.
이민위천(以民爲天)
백성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으로, 위정자나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백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권97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에서 역생, 역이기(酈食其)와 관련한 고사에서 나오는 말이다.
역이기는 중국 진(秦)나라 말기의 유세가이다. 그가 살던 당시는 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으나 전제적 집권 체제로 인해 민심을 잃고, 진시황 사후에 2세 황제 호해(胡亥), 환관 조고(趙高), 승상 이사(李斯) 등이 전권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릴 때였다.
이같은 혼란한 정국에 전국에서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났고 지방 군웅이 병사를 모아 세력을 일으켰다. 역이기는 많은 장수들 중에서도 자신의 의견과 능력을 받아줄 사람을 기다리다가 패공(沛公) 유방의 원대한 뜻과 도량에 대해 듣고 그를 알현하러 갔다.
역이기가 당시 합종연횡의 형국을 두고 요충지인 진류(陳留)를 확보해야 한다고 하자, 패공은 그의 말대로 역이기를 사신으로 보내고 군대를 이끌고 뒤따라가 진류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공으로 패공은 역이기를 광야군(廣野君)에 봉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 전국은 패공 유방과 초패왕(楚霸王) 항우의 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 3년 가을에 항우가 공격해 들어와 형양(滎陽)을 함락시켰다.
퇴각하여 공(鞏)과 낙양(洛陽) 일대에서 초나라에 대항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유방에게 역이기가 말하였다. "신은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의 업적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이 하늘인 까닭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왕의 업적을 이룰 수 없으며, 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고 들었습니다. 저 오창(敖倉)에 천하의 곡식을 실어다 놓은 지 오래되었고 쌓여있는 식량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형양을 함락시킨 후에 오창을 견고하게 지키지 않고 있고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면서 죄를 지어 변방으로 쫓겨나 병사가 된 자들에게 성고(成皐)를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한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초나라의 군대를 쉽게 취할 수 있는 때인데 한나라는 도리어 퇴각하고 있으니 이는 스스로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영웅이 함께 설 수는 없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서로 다투며 결단이 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가다가는 백성들은 불안하고 천하가 흔들리며 농부들은 쟁기를 버리고 베 짜는 여인들은 베틀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천하의 민심이 안정될 수가 없습니다(臣聞知天之天者, 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 王事不可成. 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夫敖倉, 天下転輸久矣, 臣聞其下廼有蔵粟甚多, 楚人抜滎陽, 不堅守敖倉, 廼引而東, 令適卒分守成皐, 此乃天所以資漢也. 方今楚易取而漢反郤, 自奪其便, 臣竊以爲過矣. 且兩雄不倶立, 楚漢久相持不決, 百姓騒動, 海內揺蕩, 農夫釈耒, 工女下機, 天下之心未有所定也.)"
역이기는 어서 형양 땅을 다시 수복하고 오창의 초나라의 식량을 차지하고 요새인 성고 길목을 막아 초나라보다 한나라가 요지를 많이 점거하여 우월한 기세에 있다는 것을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미 평정한 연(燕)과 조(趙)에 더하여, 전쟁으로 항복을 받아내기 쉽지 않은 제(齊)나라는 자신이 가서 설득하겠다며 한나라와 같은 편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유방은 역이기의 말을 따라 오창을 지키고 역이기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역이기는 뛰어난 언변으로 제나라 왕 전광(田廣)을 설득시켰고 제나라의 70여 성이 한나라에 맞서지 않도록 하였다.
위 고사에서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민위천, 민이식위천'은 여러 정치인과 문신, 유세가에게 수없이 회자된 말이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군주는 백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특히 고대 사회에는 먹는 것이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군주는 백성이 먹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보장해주고 풍족하게 해주어야 했다.
이민위천(以民爲天)
사기 역생육고열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 없습니다(知天之天者, 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 王事不可成).
기원전 204년, 한나라 고조 유방의 유세객이었던 역이기가 주군인 유방을 설득한다. 초나라 항우의 기세가 대단했을 때였다. 역이기는 항우의 총공격을 받고 고전하던 유방이 진나라 시절부터 엄청난 식량창고가 있던 오창(敖倉)을 포기하려 하자 긴급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옛말에 '천하에 왕노릇 하는 사람은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백성은 양식을 하늘처럼 떠받든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고 했습니다."
역이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엄청난 식량이 비축된 오창을 도모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이기는 '관자(管子)'에 나오는 그 유명한 '왕자이민위천 민이식위천(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역대의 지도자들은 이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고사를 신주처럼 받들었다.
'순자'가 '왕제'에서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즉 민심을 잡지 않는 군주는 곧 민심에 의해 뒤집힌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무서운 민심이기에 역대 군주들은 누가 누가랄 것도 없이 '이민위천(以民爲天)'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나 가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이 굶고 있을 때, 군주들은 어김없이 이 고사를 인용하면서 구휼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만고의 성군인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을 하늘처럼 우러러 보는 사람들(民惟邦本 食爲民天)이다. 만약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세종이 말한 '민유방본(民惟邦本) 식위민천(食爲民天)'은 바로 '이민위천(以民爲天)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의 다른 표현이다.
선조 임금도 1603년, 자신의 부덕 때문에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고, 개기월식과 같은 흉사가 잇따른다면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하늘의 노여움은 더욱 더해만 가고 있다. 별이 떨어지고 돌이 옮겨가는 놀랍고도 두려운 재변이 거듭 나타나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이런 변이가 자주 나타나더니 끝내 큰 화란을 부르고 말았는데, 앞으로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왕자(王者)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데 민심이 이와 같으니, 어찌 나의 부덕(否德)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임금에게 간언할 때마다 '이민위천(以民爲天)~'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예컨대 1471년(성종 2년), 대사간인 김수녕은 성종이 불경을 만드는 등 불교를 보호하려는 정책을 피려 하자 역이기와 똑같은 고사를 되뇌이며 반대한다. "임금은 백성들을 으뜸으로 떠받들고, 하늘의 도리를 아는 자는 왕도를 이를 수 있다(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知天之天者 王道可成)." 김수녕은 "흉년 때문에 남도의 백성들이 굶어죽는데 승려들은 무위도식하고 있다"며 불경을 만들고 중들을 먹이는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쏟지말고 백성 구휼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524년(중종 19년) 홍문관 직제학 민수천 역시 예의 그 '이민위천(以民爲天)' 고사를 인용하면서 임금을 닥달한다. "백성이 춥고 곤궁해서 원망하고 저버리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백성은 임금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겁니다. 대체 누구를 데리고 임금노릇을 하려 하십니까." 민수천은 술독에 빠져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환곡의 환란을 일으키는 관찰사를 비롯한 지방 관헌들을 엄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1567년(명종 22년), 임금이 "시기에 맞춰 파종하라. 농사를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전교를 내렸다. 그러자 '명종실록'의 기자는 "왕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그 고사를 인용하면서 적절한 임금의 하교였음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다.
1615년(광해군 7년) 대사헌 이병 등이 임금의 경연참여와 백성 진휼을 촉구하며 올린 상소문에도 나온다. "혹심한 가뭄 때문에 넘어지고 굶어죽은 시체가 줄지어 있는가 하면, 지아비와 지어미가 서로 목을 매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데,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인 백성들이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 전하께서는 모든 세금을 적게 받고 역(役)을 늦추어 주며 곡식을 옮기고 창고를 여는 등의 일이 모두 실지로 실행되게끔 힘을 쓰시고 허례적인 형식을 따르지 마소서."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음(亡國之音), 국권피탈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경술국치(庚戌國恥),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사이가 썩 친밀하여 가깝게 지내는 나라 또는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은 나라를 이르는 말을 형제지국(兄弟之國) 등에 쓰인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석가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을 이르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을 일컫는 말을 이란투석(以卵投石),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 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옛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는다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이고위감(以古爲鑑),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는 뜻으로 적은 밑천을 들여 큰 이익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이하조리(以蝦釣鯉),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말을 이록위마(以鹿爲馬), 하나로써 백을 경계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명을 벌하여 백 명을 경계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일경백(以一警百),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남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이인위감(以人爲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피로써 피를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다스리려다 더욱 악을 범함을 이르는 말을 이혈세혈(以血洗血),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民(백성 민)은 ❶상형문자로 백성은 천한 신분을 타고 나며 눈 먼 사람이라 생각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데서 '무지(無知)', '무교육인 사람', '일반 사람'이란 뜻이다. 먼 옛날에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으로 하거나 신의 노예(奴隸)로 삼았다. 그것이 民(민)이었다고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民자는 '백성'이나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民자는 氏(성씨 씨)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성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民자의 금문을 보면 사람의 눈에 열십자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송곳으로 사람의 눈을 찌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노예의 왼쪽 눈을 멀게 하여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民자는 그러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民자의 본래 의미는 '노예'였다. 물론 지금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고 있지만, 글자의 유래를 보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民(민)은 '사람', '공민', '인민'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백성(百姓) ②사람 ③직업인 ④나(자신)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임금 후(矦), 임금 벽(辟), 선비 사(士), 신하 신(臣), 벼슬 관(官), 벼슬아치 리(吏)이다. 용례로는 일반 백성의 사회를 민간(民間), 인종적으로나 지역적 기원이 같고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을 민족(民族), 백성의 마음을 민심(民心), 민간의 풍속을 민속(民俗), 백성이 주권을 가지고 주인 노릇함을 민주(民主), 국민이 청하여 바라는 바를 민원(民願), 백성이나 인민의 생활을 민생(民生), 다수의 백성을 민중(民衆), 민간에 관한 일을 민사(民事), 백성의 뜻을 민의(民意), 예로부터 민간에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흥미 위주의 허구적 이야기를 민담(民譚), 보통 살림집에 숙박함을 민박(民泊), 일반 국민의 집을 민가(民家), 백성의 바람이나 믿음을 민망(民望), 가난한 백성을 빈민(貧民),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인민을 국민(國民), 귀족 등에 대하여 사회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보통 사람을 서민(庶民), 그 땅에 사는 백성을 주민(住民), 국정에 참여할 지위에 있는 국민을 시민(市民), 농사 짓는 백성을 농민(農民),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를 교민(僑民),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을 평민(平民), 땅이 넓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백성을 옮기어 살게 함을 이민(移民),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일컫는 말을 국리민복(國利民福), 같은 겨레끼리 서로 다투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민족상잔(民族相殘),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한 데서 유래한 성어를 이르는 말을 민귀군경(民貴君輕), 백성은 신의가 있을 때에 안정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 진다는 말을 민보어신(民保於信), 백성의 피와 땀이라는 뜻으로 백성에게서 과다하게 거두어들인 세금이나 재물을 이르는 말을 민고민지(民膏民脂), 부담을 가볍게 하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함을 이르는 말을 민력휴양(民力休養), 어떤 민족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민족자결(民族自決), 백성은 구차하고 나라의 재물은 다 말라 없어짐을 일컫는 말을 민궁재갈(民窮財渴), 정치의 부패나 변동 따위로 말미암아 받는 백성의 괴로움을 일컫는 말을 민간질고(民間疾苦), 세상사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을 일컫는 말을 경세제민(經世濟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나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하느님을 받들고 백성을 통치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경천근민(敬天勤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을 혹세무민(惑世誣民), 가뭄 때 농민들이 비를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갈민대우(渴民待雨),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의 괴로움을 하소연할 수 없는 백성이라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 또는 부모나 처자식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무고지민(無告之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이국편민(利國便民), 세상을 구하고 민생을 구제함을 일컫는 말을 구세제민(救世濟民), 어리석고 미천한 백성이나 무지한 백성을 일컫는 말을 우하지민(愚下之民),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제세안민(濟世安民), 국민의 화합과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뜻을 나타냄을 이르는 말을 조민유화(兆民有和) 등에 쓰인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
▶️ 本(근본 본)은 ❶지사문자로 木(목; 나무) 아래쪽에 표를 붙여 나무의 뿌리 밑을 나타낸다. 나중에 나무에 한하지 않고 사물의 근본(根本)이란 뜻으로 쓰였다. ❷지사문자로 이미 만들어진 상형문자에 선이나 점을 찍어 추상적인 뜻을 표현하는 것을 지사문자(指事文字)라고 한다. '근본'이나 '뿌리'를 뜻하는 本(근본 본)자는 전형적인 지사문자에 속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木(나무 목)자의 하단에 점을 찍어 나무의 뿌리를 가리키는 本자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本자는 나무의 뿌리 부분을 가리킨 지사문자로 나무를 지탱하는 것이 뿌리이듯이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바탕이라는 의미에서 '근본'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本(본)은 (1)자신(自身), 이의 뜻으로 쓰는 말 (2)영화(映畫) 필름 등의 한 편(篇)을 세는 단위(單位) 등의 뜻으로 ①근본(根本) ②초목의 뿌리 ③초목의 줄기 ④원래(元來), 본래(本來), 본디 ⑤근원(根源), 원천(源泉) ⑥본원(本源), 시초(始初) ⑦마음, 본성(本性) ⑧주(主)가 되는 것 ⑨바탕 ⑩자기(自己) 자신(自身) ⑪조상(祖上), 부모(父母), 임금 ⑫조국(祖國), 고향(故鄕) ⑬본, 관향(貫鄕: 시조(始祖)가 난 곳) ⑭그루(초목을 세는 단위) ⑮판본(版本) ⑯본(서화를 세는 단위) ⑰책, 서책(書冊) ⑱원금(元金), 본전(本錢) ⑲본가(本家) ⑳농업(農業), 농사(農事) ㉑근거하다, 근거(根據)로 삼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비로소 시(始), 뿌리 근(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끝 말(末)이다. 용례로는 사물이나 현상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성질을 본질(本質), 자기 바로 그 사람을 본인(本人),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중심이 되는 조직이나 그 조직이 있는 곳을 본부(本部), 신문 기사에서 일컫는 그 신문 자체를 본보(本報), 자기가 관계하고 있는 신문을 본지(本紙), 잡지 따위에서 중심이 되는 난을 본란(本欄), 시조가 난 땅을 본관(本貫), 사물의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는 부분을 본말(本末),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근본에 맞는 격식이나 규격을 본격(本格), 본디의 마음을 본심(本心), 자기에게 알맞은 신분을 본분(本分), 애당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뜻을 본의(本意),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을 본성(本性), 강이나 내의 원줄기를 본류(本流), 본디 그대로의 것을 본연(本然), 생활의 근본이 되는 주된 사업이나 직업을 본업(本業), 사물의 생겨나는 근원을 근본(根本), 사업의 기본이 되는 돈으로 이윤을 얻기 위하여 쓸 재화를 자본(資本), 사물의 근본을 기본(基本), 무대 모양이나 배우의 대사 따위를 적은 글을 각본(脚本), 금석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종이에 박아 냄을 탁본(拓本), 나라의 근본을 국본(國本), 원본을 그대로 옮기어 베낌 또는 베낀 책이나 서류를 사본(寫本), 원본의 일부를 베끼거나 발췌한 문서를 초본(抄本), 문서의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베낌 또는 그런 서류를 등본(謄本), 조각한 판목으로 인쇄한 책을 각본(刻本), 근원을 뽑아버림을 발본(拔本),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을 본제입납(本第入納),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이란 뜻으로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 자연의 심성을 일컫는 말을 본연지성(本然之性),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본디의 관념을 이르는 말을 본유관념(本有觀念), 일이 처음과 나중이 뒤바뀜을 일컫는 말을 본말전도(本末顚倒),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사람마다 갖추어 있는 심성을 일컫는 말을 본래면목(本來面目), 근본과 갈린 것이 오래 번영한다는 뜻으로 한 가문이 오래도록 영화로움을 이르는 말을 본지백세(本支百世), 기본이 바로 서면 길 또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말을 본립도생(本立道生), 근본을 빼내고 원천을 막아 버린다는 뜻으로 사물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그 뿌리째 뽑아 버림을 이르는 말을 발본색원(拔本塞源),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뜻으로 사물의 질서를 일컫는 말을 물유본말(物有本末), 어떠한 것의 근본을 잊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망기본(不忘其本)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