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 연뿌리 캐기
십일월 중순 일요일 새벽이다. 전날 열차로 물금으로 나가 내원사 계곡 단풍을 보고 생활 속 글을 남기며 ‘내원사 계곡 단풍’도 한 수 곁들였다. “영축산 통도사서 건너편 내원 도량 / 원효가 기른 제자 천 명이 성인 되어 / 산 이름 천성산으로 지명 전설 서렸다 // 봄날에 신록 번져 바윗돌 옥류 계곡 / 뒤늦게 물든 단풍 추색은 더욱 고와 / 볕살을 마주 보면서 홍엽만산 찾았다”
날이 밝아온 아침은 여느 날과 달리 이웃과 함께 길을 나섰다. 동행한 분은 맞은편 아파트단지 살면서 근교로 나가 밭농사를 짓는 노부부다. 할아버지는 올해 여든넷이고 할머니 여든인데 20년 넘게 북부리 강가에서 농사를 짓는다. 예전에 논을 하천 정비사업 이후 밭으로 바꿨단다. 평생 운전대를 잡지 않아 시내버스로 근교로 오가면서도 산딸기와 콩을 주력 작목으로 가꿨다.
노부부와 함께 길을 나섬은 농장에서 함께 할 일이 있어서다. 밭뙈기 인접 농수로에 연이 자라는데 뿌리를 캐기 위해서다. 여러 농사일을 해봤지만 연근은 한 번도 캐 본 적 없다. 할머니는 몇 해 전까지 연근을 캐 반송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는데 근래는 힘에 부쳐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산에서 칡뿌리도 캐봤다고 했더니 연근 캐기가 마음만큼 쉽지 않다며 걱정스레 봤다.
아파트단지 인근 정류소에서 소답동으로 나가 2번 마을버스를 탔다. 기사는 나도 아는데 노부부는 더 잘 아는 사이였다. 올해 나이가 할머니와 같은 여든으로 주남지 근처 가월에 사는 분이다. 근교로 오가는 승객들을 살갑게 잘 대해 고령임에도 건강을 잘 관리해 운수회사에서는 특별히 연장 고용하는 기사로 알려졌다. 가술에 이르자 승객은 거의 내려 우리 일행만 종점으로 갔다.
북부리 강가가 노부부 밭인데 버스에서 내리면서 내외는 차를 잠시 멈추게 했다. 컨테이너를 농막으로 쓰는 막사에서 호박을 두 덩이 꺼내 기사에게 전했다. 마을버스를 타 보면 승객과 기사 사이 오가는 훈훈한 미담 사례가 더러 있었다. 언젠가는 3번 마을버스 기사는 독신인데 며칠 병으로 결근 후 다시 운전대를 잡으니 진영 장을 보고 오는 할머니들이 위문금을 추렴함을 봤다.
노부부 농장은 파크골프장 진입로와 가까웠고 강둑으로 낸 자전거길이 빤히 보였다. 가로수로 줄지어 자라는 벚나무는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려 서 있는 듯했다. 농막에 들어 옷을 갈아입고 준비한 장화와 장갑을 꼈다. 할머니도 나와 같은 차림새를 하고 할아버지는 타작한 콩을 선별했다. 진흙에서 하는 일이 쉽지 않아 고령인 할아버지는 힘에 부칠 일이다.
할머니는 다년간 경험으로 연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지 생태와 그곳 환경을 잘 알았다. 농수로에 물이 많이 고여 작업 전 우선해 물을 퍼내어야 했다. 나는 대야로 웅덩이 고인 물을 퍼내는 물고기를 잡는 식으로 양수를 먼저 했다. 그새 할머니는 마늘밭이랑 빈 구멍에 다시 종구를 심었다. 까치가 먹지 않으면서 괜스레 부리로 콕콕 쪼아 빈자리가 생겨 채워 심는 작업이었다.
수로의 물을 거의 퍼내자 할머니가 내려와 함께 손을 맞춰 일했다. 힘이야 내가 더 쓸 수 있으나 연근 캐기는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든 줄기가 뻗어간 밑동에 연근이 자랐는데 상처가 나지 않도록 캠이 중요했다. 연근이 상처를 입으면 거기로 진흙이 스며들면 식자재로 부적합했다. 내가 캔 뿌리는 고작 두 개고 할머니는 수월하게 여러 뿌리 캐내서 신기하게 지켜봤다.
연근을 더 캐고 싶었으나 작업을 진행함은 무리였다. 남은 아쉬움 후일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철수했다. 집으로 오던 길에 ‘연근 캐기’를 남겼다. “도심에 살면서도 근교로 나다니며 / 북부리 대산 강가 밭농사 짓는 노인 / 부부는 콩 타작으로 한 해 농사 끝이다 // 하루는 산책 대신 두 분을 따라 나서 / 밭뙈기 가장자리 수로에 시든 연잎 / 힘 합쳐 진흙을 뒤져 연뿌리를 캐냈다” 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