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맨’들이 등장해 ‘지구 방위’라는 숭고한 사명을 받들었다. 원조 ‘슈퍼맨’이 있으며, ‘후레쉬맨’과 같이 5명으로 구성된 팀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형이자 오빠 심형래는 ‘스파크맨’이 돼 지구도 모자라 우주의 평화까지 수호했던 적이 있다.
그 많은 ‘맨’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추억과 영감을 준 ‘맨’은 단연 슈퍼맨이었다. 어린 시절, 보자기를 목에 묶고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뛰어다녔던 추억도 한번쯤 있을 것이다. 슈퍼맨이라면, 사람들은 보통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영화판 <슈퍼맨>을 기억한다. 영원히 지구를 지킬 것 같았고, 언제 어디서든 건강한 모습으로 약자를 도울 것만 같았던 슈퍼맨. 그를 연기한 크리스토퍼 리브가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휠체어에 앉게 됐을 때, 그리고 좌절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 우리는 정말 많은 충격과 함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듯 슈퍼맨이라면 뭐든 할 수 있고, 언제든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고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와 용기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불구의 몸이 됐을 때, 그 이전에 TV 시리즈에서 슈퍼맨 역을 맡은 조지 리브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슈퍼맨의 팬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2일에 개봉하는 영화 <할리우드랜드>, 할리우드 역사에 남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조지 리브스의 사망 사건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다. ‘슈퍼맨’, 그에게도 스캔들이?
하지만 그 사랑은 상황에 따라 불륜이나 스캔들이 될 때도 있다. <할리우드랜드>가 조지 리브스의 삶을 조명하면서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스캔들’이다. 당시 MGM의 사장이었던 에디 매닉스의 부인, 토니 매닉스와 사귀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한편으로 연예인을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예인이 데뷔하고 스타가 되기까지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과 심증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누리꾼들도 늘상 이야기하는 수다의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그 ‘거래’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스캔들이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유명인에 대한 불명확한 소문은 언제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할리우드도 스캔들의 천국이다. 마릴린 몬로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밀애를 나누다 타살됐다는 소문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이야기이며, 잉글리드 버그만은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과 불륜을 나누다가 영화 출연까지 중단했을 정도로 질타를 당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역시 유부남 배우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던 적이 있다. <할리우드랜드>는 조지 리브스를 그런 스캔들의 중심으로 옮겨놓는다. 무명 시절, 출세를 위해 나이가 훨씬 많은 토니 매닉스에게 접근해 그녀의 돈과 힘을 업고 스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슈퍼맨은 슈퍼맨이 되기 위해’, ‘청춘의 덫’을 놓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중년 여성을 유혹해 원하는 것을 얻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정의의 화신이어야 할 슈퍼맨이 불륜이라니. 그리고 그걸 의문의 사망 원인과 연계시키다니. <할리우드랜드>는 꽤나 도발적이다.
슈퍼맨은 ‘슈퍼맨’에 부담을 느꼈다? <할리우드랜드>에서 ‘조지 리브스’ 역을 맡은 배우는 벤 에플렉. 그는, 각진 외모에 다부진 인상을 보여줬던 ‘조지 리브스’를 연기하기 위해 몸을 불렸으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보여준다. ‘영웅’이 됐지만, 영웅이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불안,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영화를 추구해보고 싶었던 욕망 등, <할리우드랜드>가 보여주는 ‘조지 리브스’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슈퍼맨의 이미지와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애인 것이다. 우리도 가끔씩 보게 되는 일이다. 특정 배우가 특정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린 나머지, 그 이후에는 연기가 안풀리게 되는 그런 광경이다. 실제로 ‘조지 리브스’는 그동안 겪은 고초와, 슈퍼맨으로서는 너무 많은 자신의 나이(당시 만 46세)를 의식한듯, 사망 3일 전에 “이제는 감독에 도전해보겠다. 속옷을 밖에 입고 뛰어다니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를 넘어 진정한 영화인으로 거듭나고 싶어했던 그의 꿈은 곧 의문의 죽음과 함께 물거품이 된다. <할리우드랜드>는 애드리안 브로디가 맡은 ‘루이스 시모’ 탐정의 수사 속에서 진상을 밝혀가는, 일종의 느와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이 영화를 일컬어 ‘네오 느와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탐정이 파헤치는 욕망 충돌 이야기, 육체적인 욕구와 출세욕, 그리고 금전적인 욕구와 질투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본능들이 충돌하며, 우리의 탐정은 사건을 파헤치다가 절망하며 몰입하는 등, 이 영화는 확실히 느와르의 요소들을 표방하고 있다. 밝은 색채와, 그리고 일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느와르, ‘네오 느와르’라는 표현은 적절한 듯하다. 슈퍼맨의 죽음, 진실은 저 너머에... <할리우드랜드>는 ‘후 던 잇(Who done it)’의 요소에, 조지 리브스 개인의 삶과 그가 느꼈을 법한 마음의 부담을 동시에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슈퍼맨’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건이며, 너무 오래 전에 일어난 안개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이야기를 꺼내기엔 조심스러운 사건이다. <할리우드랜드>는 < JFK >처럼, 영화가 주장하고자 하는 진상을 확실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처럼 사건 자체에 대해 파고들면서 명확한 주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조지 리브스의 삶과 죽음에 얽힌 할리우드 내의 스캔들과 만연한 폭력, 그리고 스타라는 꿈과 본능적인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 군상들을 조명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적인 재미는 후반부에서 흩어지는 면도 있다. 평론가들이나 관객의 혹평이 일치된다면 바로 이 부분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살아가면서 욕망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존재 근거에 대한 고민이 있기 마련이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인간도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벽에 부딪치며 좌절할 때는 ‘나’를 잃는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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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천항로(蒼天航路) 원문보기 글쓴이: 박형준
첫댓글 암튼 어느 곳이든 이런 문제는 꼭......에효...
그러게나 말입니다. 에효...
사람사는 동네에 소캔들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ㅎㅎㅎ
슈퍼맨이 다운되면 슈퍼맨 영화는 가치를 잃는건 아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