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상위 등 고려 땐 턱없이 부족 - 신청 후 입주까지 평균 15개월 - 부곡지구엔 대기자만 461명
- 朴대통령 공약 행복주택도 - 공급량 3분의 2 수도권 집중
뇌병변 장애 2급인 장애인 활동가 고숙희(여·23) 씨는 하루빨리 주거지인 부산 남구 대연동의 원룸에서 탈출하고 싶다. 방 문턱(단차)이 높고 편의시설이 적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 장애인에 맞게 설계된 30년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게 그의 목표다. 고 씨는 지난해 10월 공공임대아파트 세 곳에 입주신청서를 냈다. 최근 세 곳 중 한 곳은 탈락 통지서를 보내왔다. 입주 가능한 가구 수는 얼마 안 되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머지 두 곳의 대기 번호는 각각 47번과 49번이다. 고 씨는 "부산도시공사가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연락해왔다"며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영구임대주택 입주 신청은 포기했다. 대기 기간이 국민임대보다 더 긴 탓이다.
■대기자 넘치는데 공급량은 부족
공공임대주택의 인기는 전셋값 상승에 비례한다. 새누리당 김희국(대구 중남구)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평균 입주 대기 기간은 부산이 15개월로 7대 도시 중 2위였다. 인천이 57개월로 가장 길었고 대구(13개월) 울산(9개월)이 뒤를 이었다.
공공임대주택 중 영구임대주택은 인기가 더 높다. 부산도시공사 홈페이지 '입주대기자 현황'을 보면 심각성은 잘 드러난다. 부산 금정구 부곡지구(553가구)의 대기자는 461명에 이른다. 750가구인 사하구 다대3지구의 대기자도 299명이다. 북구 구포3지구(73가구·공공임대) 대기자 7명 가운데 1순위자는 2010년 3월 초 입주 신청을 하고도 5년이 가까워지는 현재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입주 대기기간이 긴 것은 수요가 넘치기 때문이다. 부산의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지난해 기준 8만2379가구로 공공임대주택(5만7749가구)보다 훨씬 많다. 영산대 서정렬(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빈곤층의 경계선상에 놓인 차상위계층과 재개발·재건축으로 쫓겨난 세입자까지 포함하면 공급량이 절대 부족하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기초수급권 자격을 박탈당하는 순간 퇴거 명령을 받는다. 2002년 7월 부산 사상구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던 김모(37)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3년 전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어머니가 숨진 뒤 혼자 살던 김 씨가 '영구임대아파트 거주 자격이 안 되니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자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17년 전 다대 4지구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김모(여·58) 씨는 "철제 현관문이 낡아 내려앉은 가구도 꽤 많다. 괜히 수리 민원을 제기했다가 찍힐까봐 두려워 참고 산다"면서 "월세를 전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그나마 살 곳이 있어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 행복주택도 수도권 편중
철도·공공유휴지 등을 활용해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택을 행복주택이라 한다. 대중교통이 편리하거나 일터에 가까운 곳에 주변 시세의 60~80%로 공급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다. 지난해까지 확정된 행복주택 사업지구는 전국 47곳. 부산에서는 3개 사업지 1666가구가 착공에 앞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동래역사 주변(395가구)과 서구 아미동 재개발지구(731가구)는 설계 공모가 진행 중이다. 강서구 지사과학단지 540가구는 사업승인을 위한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행복주택의 3분의 2 이상은 수도권에 공급된다. 가구 수 기준으로 3만621가구의 64.5%인 1만9776가구가 서울·경기·인천에 배정됐다. 이를 두고 지역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00% 공공 예산으로 짓는 행복주택을 전체 인구의 49.3%가 사는 수도권에 집중 배정했기 때문이다. 지역별 공급 규모를 보면 경기 1만3422가구, 서울 4038가구, 인천 2316가구이다. 지방에서는 전라권 2762가구, 대구 2120가구, 경남 480가구 등이다.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결과적으로 수도권 인구 집중을 더 강화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집값·전셋값 상승률이 가파른 지방에 오히려 더 많은 행복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까지 전국에 14만 가구의 행복주택을 사업 승인할 예정이다. 표준 주택 면적은 45㎡(13.6평)이다.
# 부산 임대아파트 38%가 20년 넘어, 외벽 곳곳 금가 틈새로 찬바람 씽씽
- 건물 오래되고 편의시설 부족 - 통로 좁아 장애인 이동도 불편
1995년 준공돼 20년이 지난 사하 다대 4지구 공공임대주택. 베란다 외벽에 금이 가 외풍이 심하다.(왼쪽), 실내 이동통로도 좁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부산은 준공 20년이 넘어 낡은 공공임대아파트가 37.6%에 달한다. 건물 외부는 물론 주택 내부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11일 오후 사하구 다대5지구 영구임대아파트. 박모(52) 씨의 집은 '냉골'이었다. 베란다 쪽 외벽에 생긴 금 사이로 끊임없이 한겨울 찬바람이 새어들었다. 임시방편으로 투명 접착테이프로 신문지를 붙였지만 별 소용이 없다. "바람이 많이 불때면 창이 덜컹 거리고 '우우'하며 귀신 우는 소리가 들려 괴로워요. 변기 물까지 출렁일 정도여서 집에 있을 수가 없어요."
영도구 동삼1동 영구임대 1단지 주모(57) 씨 집 거실 벽면도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거실과 주방을 분리하는 벽에는 반지름이 성인 손 한 뼘이 넘는 구멍이 생겼고, 투명 접착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덧대져 있었다. 주 씨는 "얇은 나무판 재질로 대충 만들다 보니 이런 하자가 발생한 것 같다. 고쳐달라고 했는데 아직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노인·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40㎡인 주 씨 집 내부는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공간이 부족했다. 회전반경이 확보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거실에 옷장과 침대 등의 가구가 놓여 있어 충분한 이동통로가 없는 것이다.
뇌졸중으로 중증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사하구 다대5지구의 이모(61) 씨는 "좁은 화장실이 제일 불편하다. 욕조가 없어서 우리 부부처럼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샤워도 할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씨의 아내는 척추관 협착증으로 장애 6급이다.
국토교통부의 '2011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휠체어 이동이 쉽도록 문턱이 제거된 곳은 0.1%에 불과했다. 휠체어 통행로는 7.0%만 확보됐고, 비상벨은 1.4%, 미끄럼방지 바닥재는 0.1%밖에 시공되지 않았다.
외부 편의시설 현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점자블록(31.7%), 엘리베이터(36.6%), 경사로 (78.8%) 등도 부족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지난 8일 취재진인 찾은 사하구 다대 4지구 한 임대주택의 지상 주차장 22면 중 2면만이 장애인전용구역이었다. 이마저도 영업용 택시와 일반 승용차가 주차돼 있어 장애인 차량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