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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5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잘못된 찌꺼기를 거둬내야 합니다.
위대한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모차르트는 그에게 음악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항상 이러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전에 어디선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 사람이 배운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모차르트는 수업료를 두배로 청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전에 전혀 음악을 배운 적이 없다고 말하면 모차르트는, “그럼 좋습니다. 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이것은 너무도 부당한 처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답니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오면, 당신은 수업료를 반만 내라고 말하고 10년 동안이나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오면 수업료를 두 배로 내라고 하시는데, 그건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말했답니다. “음악을 배운 사람들의 경우 우선 나는 찌꺼기를 거두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더 힘든 작업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힘 드는 일입니다.”
만일 그대가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순수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르치는 일이 매우 간단하다. 그리고 어린이는 순수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 지음/ 김훈배 엮음/ 배꼽
우리가 흔히 잘못된 사고방식과 편견은 인간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고, 올바른 눈으로 볼 수 없게 하고, 올바른 말을 들을 수 없게 하기도 하고,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정치를 보아도 그렇고, 경제, 교육도 그러해서 우리를 암담하게 하고 어둡게 합니다. 정말 우리 사회는 더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지식은 지혜를 만들지 못하고, 양심은 허울뿐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계속 말도 안 되는 말을 떠들고 있으며, 자신이 경제와 교육을 살리고, 복지국가를 이루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의 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데도 떠들고 있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 권력에 눈이 멀고, 부귀영화에 귀가 멀고, 명예에 가슴이 굳어버린 사람들이 떠들들어대도 국민들이 외면하고 있는데도 자아도취에 빠져 그렇게 떠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책임을 질 사람이 없고, 누군가 양심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마구 떠들고, 멋대로 헛소리를 해대고, 모든 것을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결국 아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요? 정치가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인지 우리가 아님은 그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격차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극한적으로 대립된 두 가지 경향을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상황과 주님을 두고 사람들이 험담을 해대는 것과 아주 극한적인 상황이 대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두고도 전혀 상반되게 해석할 수도 있고, 말하는 태도와 느낌으로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진심을 알아주지 못할 때, 그 진심을 엉뚱하게 왜곡할 때 분통이 터져 오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상반된 두 상황과 국면을 아주 심각하게 드러내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진리의 말씀을 하실 때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하느님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셔도 아무도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한이 아무리 ‘회개하라.’하라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대꾸도 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느님나라의 진리를 설파하여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인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님을 자신들의 편견과 아집으로 비판합니다. 같은 상황을 가지고도 전혀 다르게 비판하고 험담하고 헐뜯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역시 자신들의 율법이고, 편견이고, 가치관일 것입니다. 정말 그들이나 우리들은 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잘못된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 할 모양입니다. 하나도 쓸데가 없는 모든 것들을 전부 깨트려버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이 대림절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쇠 장벽과 같은 편견과 아집의 굴레를 깨트려 버리고 진리의 주님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축일 : 12월 15일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신분 : 과부, 설립자, 수녀
활동 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 연도 : 1587-1651년
같은 이름 : 버지니아, 첸뚜리오네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는 1587년 4월 2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공화국의 총독을 역임(1621-1622년)한 조르지오 첸투리오네(Giorgio Centurione)와 렐리아 스피놀라(Spinola)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세례성사를 받은 그녀는 어머니와 가정교사로부터 신앙과 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비르지니아는 봉쇄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느꼈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1602년 12월 10일 가스파레 그리말디 브라첼리(Gaspare Grimaldi Bracelli)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인 가스파레는 저명하고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도박에 깊이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비르지니아는 결혼 생활을 통해 렐리아(Lelia)와 이사벨라(Isabella) 두 딸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스파레 브라첼리는 결혼을 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쾌락에 빠진 생활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비르지니아는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기도와 애정을 갖고 남편을 겸손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이끌려고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병약해진 남편은 1607년 6월 13일 이탈리아 서북부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에서 사망하였다. 신앙심 깊은 비르지니아는 남편이 하느님 안에서 은총과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다.
20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그녀는 평생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며 아버지가 제안한 재혼의 기회를 거절했다. 그녀는 시댁에 머물며 자녀들을 교육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기도와 자선 활동에 전념하였다. 1610년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특별한 소명을 느낀 비르지니아는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도 가문을 훌륭히 지키며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재산의 반을 가지고 개인적 또는 자선기관을 이용해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두 딸이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자 그녀는 버려진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소외된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전적으로 투신하였다.
1624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리구오리(Liguori) 공화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부아(Savoie) 공작 간의 전쟁으로 직업을 잃고 굶주리는 이들이 증가하였다. 비르지니아는 처음에는 15명의 버려진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다가 점차 마을의 난민들 전체로 확장해갔다. 그녀는 특별히 가난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1635년 8월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마을로 나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가난한 이들과 그릇된 길에 빠질 위험에 놓인 이들을 찾아다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점증하는 가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조직인 ‘자비로운 8명의 부인회’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의 자비로운 보호자인 100명의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가정 방문을 통해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숫기가 없는 이들의 요구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1629-1630년의 전염병과 대기근의 시기에 그녀는 어린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사업을 더욱 본격화하기 위해 몬테 칼바리오(Monte Calvario)에 있는 빈 수도원 건물을 빌려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의 보호 하에 있던 이들을 데리고 1631년 4월 13일 입주하였다. 그 후 3년의 시간 동안 그녀가 설립한 기구는 300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세 개의 시설로 확장되었다. 그러자 비르지니아는 제노바 공화국 의회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여 1635년 12월 13일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이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함께 음식과 옷을 나누며 비르지니아의 훌륭한 자매들이 되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비르지니아는 몬테 칼바리오 수도원을 아예 매입하고자 했으나 값이 너무 비싸 포기하였다. 대신 카리냐노(Carignano) 언덕 옆에 있는 두 채의 주택을 구입하여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성당으로 개축하여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모원으로 삼았다. 그녀가 설립한 기구의 정신은 1644-1650년에 편찬된 규칙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모든 거주시설은 피난처이신 성모의 집과 같은 형태를 갖춰야 하며 공화국 의회에서 임명된 훌륭한 평신도 보호자의 감독과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도복을 입는 자매들과 그렇지 않은 자매들 간의 구분은 필요하지만 그들 모두 서원 여부와 상관없이 순명과 가난, 노동과 기도 안에서 엄격한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 또한 공공의 보호시설에서 봉사할 준비를 해야 하며 이를 서원의 한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 운영되던 기구는 그 후 두 개의 수도회, 즉 골고타 언덕의 피난처이신 성모의 자매회와 골고타 언덕의 성모의 자매회로 분리되었다.
1641년 7월 3일 수도회의 진정한 책임자인 보호자 모임이 임명되자 비르지니아는 비로소 행정적인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직무에서 물러나 가장 낮은 자매의 자세로 기꺼이 허드렛일을 수행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 나가 자선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였다. 그녀는 모든 이들, 특별히 병든 이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했다. 비르지니아는 몇 년 동안 죄악의 뿌리를 치유하고, 타락으로부터 예방하며, 병자와 장애인들을 기구에 모셔오고, 건장한 남자들에게 일터를 찾아주며, 여성들에게는 자수와 양말을 만드는 기술을 훈련시키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사회활동 그룹을 조직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의 활동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들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비르지니아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다시 관리직 활동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 지역 전체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1637년에는 제노바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서 성모 마리아가 선정될 수 있도록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40시간 기도 모임과 가정 사명의 회복을 위해서 힘썼다. 귀족 가문과 기사들 간의 평화 조정자로서도 활동한 그녀는 1647년 교회와 공화국 간의 화해를 도모해 공화국 당국이 보호시설에 대한 지원을 포기함으로써 야기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환시와 내적 담화 등 많은 신비적 은사를 받은 그녀는 1651년 12월 15일 64세의 나이로 제노바에서 선종하였다. 1985년 8월 22일 제노바를 방문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녀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3년 5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 (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