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청량하고 소박한 음식
현진건 '운수 좋은 날'의 슬픔까지 전해지는 설렁탕
간편식 '동원양반죽' 광고엔 설레고 반가운 표정 공감대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온 네델란드 농부는 가족들과 감자를 먹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과 거북이 수프, 메추라기 요리를 먹었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혼자만을 위한 식사로 배추전을 부쳤고, 아카시아도 튀겼다.
어느 것 하나 '대충 먹는 음식'은 없다.
고흐 그림 속 가난한 농부들은 비록 먹을 게 감자밖에 없었으나
거칠고 고단한 손으로 따뜻한 감자를 소중히 먹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바베트는 특이한 식재료를 준비해 정성껏 손질한다.
아무도 먹어보지 못했던 그녀의 프랑스 만찬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연다.
따뜻한 음식을 나누며 서로 대화하고, 웃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돌아온 지친 혜원은 매 순간 노동을 통해 얻은 채소와 소박한 재료로 자신만을 위해 한 끼를 차린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많은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의미도 있고, 위로한다는 의미, 응원한다는 의미, 정성 들여 산다는 의미도 있다.
하루에 세 번이나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어쩌면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우리 문학 속에서도 음식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중 가장 슬픈 음식은 현진건의 작품에 나오는 설렁탕이 아닐까?
그의 단편 '운수 좋은 날'에 등장하는 설렁탕은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아내가 끝내 먹지 못한 서러운 음식이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설렁탕이 먹고 싶다는 아내에게 모진 소리를 했지만, 며칠째 밥을 굶은 아내가 마음이 쓰인다.
열흘간 1원도 못 벌고 허탕을 치다 80전을 벌 정도오 운수가 좋았던 어느 날, 뜨끈한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ㄷ르어간다.
하지만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다고 사흘을 조르전 아내는 미동도 없다.
김첨지는 속절없이 움직이지 않는 아내를 툭툭 친다.
'왜 먹잘 못하나'며 원망한다.
가난한 이에게 가장 힘든 점은 가족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실컷 사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반면에 가장 반가운 음식은 백석의 시 '국수'다.
삿리 맥석이 시로 지은 국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수가 아니라 냉면이라고 한다.
봄, 여름, 가을을 모두 지나 드디어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시인은 마음이 들뜬다.
마치 일 년에 한 번 오는 반가운 가족을 기다리듯, 국수는 그렇게 시인에게 찾아온다.
겨울밤 마주 앉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받은 국수 한 그릇,
문학 속에서 자주 음식을 아름답게 지어내는 백석의 '고담하고 소박한' 한 끼다.
음식이란 단순히 식재료를 갖고 조리해 배를 채우는 게 아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됐다가, 마음 설레는 반가움이 됐다가,
나만의을 위한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음식을 다양란 마음으로 끓이고 튀긴다.
음식을 얘기한다는 건 마음을 얘기하는 일이니까.
사실 음식을 가장 많이 다루는 분야는 광고다.
TV를 틀면 피자, 페스트푸드, 전통 음식 등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15초의 메뉴들이 즐비하게 선 보인다.
그중 11월 말부터 지상파와 케이블, 2가지 버전으로 나오는 동원양반죽 광고가 눈에 뛴다.
동원양반죽은 30년이 다 돼 가는 장수 브랜드다.
1992년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최초츼 즉석죽으로 선보인 동원양반죽은 18년 동안 매출 1위 자리를 지키며
건강한 간편식으로 자리 잡아 왔다.
광고는 오랜 시간을 거쳐,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건강한 한 끼가 된 양반죽을 보여준다.
젊은 이미지ㄹ르 더해주는 레드벨벳의 맴버 아이린과 웬디는 매 순간 동우너양반죽 뚜겅을 연다.
때로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가, 따끈하게 데워진 그릇에선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큼직한 전복, 단팥, 참치, 쇠고기 등이
좋은 쌀과 함께 만들어져 식욕을 돋운다.
죽은 우리에게 위안이고 응원이고 위로였다.
양반죽은 죽을 통해 그 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시간이 없는 순간에도 잘 챙겨 먹었으면 하는 응원, 다이어트나 출출한 밤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위안,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내라는 위로, 그 마음이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음식 문화가 발달된 나라다.
길거리 음식부터, 제사 음식, 명절음식, 잔치 음식, 재료는 다양한 해산물부터 육류, 채소류까지 바다와 육지에서나는
수많은 재료들을 음식으로 해먹는다.
궁중에서 먹던 귀한 음식인 떡볶이가 길거리 음식으로 대중화되기도 하고, 삼계탕, 곰탕 등
귀한 요리였던 음식들이 이제는 돈만 내면 먹을 수 있는 '민주화된' 음식이 됐다.
결혼식에선 국수를 먹고, 장례식에선 육개장을 먹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축하와 위로를 대신한다.
우리나라가 술 소비량이 많고, 커피 소비량이 높은 이유도, 앞에 음식을 놓고 대화와 위로와 즐거움을 나누는
오래된 습성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겨울이면 적은 돈으로도 붕어빵을 호호 불어가며 따뜻함을 채우고, 봄에는 봄나물을 더해 입맛을 돋우고,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몸을 보호하고, 가을에는 집 나간 며느리 마음까지 불러들이는 전어를 굽고,
서먹한 사이엔 음식 한 끼 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 서먹한 사이를 빨리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것도 음식이다.
유명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에 에펠탑이 생기자 밥 먹는 시간만큼이라도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
에펠탑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싫어하는 것을 보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것만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한 끼를 먹는다는 건 그렇게 귀한 시간이다.
마음을 만나는 일이니 그렇다. 신숙자 HS애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