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사 은행나무 단풍
새롭게 한 주를 맞은 십일월 중순이다. 토요일은 열차로 물금으로 나가 내원사 계곡 단풍을 구경하고 왔다. 어제는 이웃 아파트단지 노부부와 함께 강가 농장으로 가 수로에 자란 연근을 캔 체험을 했다. 이른 아침 산책 동선은 용추골을 넘어 우곡사로 향하려고 집에서부터 걸었다. 해가 짧아지는 때라 여섯 시 지나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동녘 하늘엔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외등이 켜진 아파트단지 뜰에서 거리로 나가자 가로등 불빛에 비친 단풍이 물드는 메타스퀘아 가로수는 갈색이었다. 퇴촌교 삼거리에서 창원천 상류를 거슬러 올라 창원대학 앞 느티나무 가로수는 낙엽이 져 보도에 가랑잎이 수북이 쌓였다. 리모델링 중인 창원대학 공학관 뜰에 자란 모과나무는 노랗게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창원중앙역으로 올라 철길 굴다리를 지났다.
평일 이른 아침 용추계곡으로 든 산책이나 산행을 나선 이는 드물었다. 인적없는 산책로 들머리에서 용추계곡 등산로를 따라 걸으니 늦가을 정취가 물씬했다. 여러 수종 활엽수가 어울려 자란 숲은 단풍으로 물든 잎이 나목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먼저 떨어진 잎은 숲 바닥이나 쌓이거나 물웅덩이에 떠 있었다. 등산로 쌓인 마른 가랑잎은 발을 디딜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용추5교에서 출렁다리를 건너 숲속 길은 산허리로 걸쳐지고 계곡으로 드는 산행로를 따라 올랐다. 여름날 보라색 꽃을 피운 맥문동은 열매를 맺었는데 날씨가 더 추워지면 까맣게 익어 새들의 먹이가 될 테다. 포곡정과 우곡사로 나뉜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해 비탈을 올랐다. 맞은편 경사가 가파른 날개봉으로 단풍이 물들어 갔는데 가을빛은 아침 햇살이 비쳐와 더욱 선명했다.
무더웠던 지난여름에 용추계곡으로 영지버섯을 찾아내느라 두 차례 들었다. 팔월 초순 포곡정에서 진례산성 동문 성곽을 따라 남문으로 내려왔다. 다른 한 번은 우곡사 갈림길에서 용추고개로 올라 북쪽으로 뻗은 산등선을 따라 노티재에서 서천으로 나갔다. 가을날 찾은 이번 걸음은 용추고개를 넘어 우곡사에서 은행나무 단풍을 완상하고 자여에서 마을버스로 가술로 나갈 셈이다.
용추고개로 오르는 비탈길에는 가랑잎이 쌓여 미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고개를 넘은 북향 비탈에 소사나무가 주종을 이룬 활엽수림은 단풍이 먼저 물들어 나목도 일찍 되는 중이었다. 용추계곡에서는 이른 시각이라 산행객이 드물었는데 우곡사에서는 고개로 오르는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약수터에 이르자 차를 몰아와 플라스틱 통 샘물을 받는 이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측면에 고목 은행나무는 우곡사 명물이다. 우곡사는 신라 하대 무염국사가 창건한 절로 구전되나 사적에 남겨져 있지는 않다. 둥치가 성히 살았다면 천년도 헤아릴 고목 은행나무는 고사가 되면서 새로 움이 돋아 부챗살처럼 가지를 펼쳐 무성히 자란다. 우곡사 은행 단풍은 해마다 입동 무렵이 절정인데 올가을은 단풍이 뒤늦게 물들어 이즈음이 고왔다.
언덕을 올라 은행나무 주변으로 다가가 샛노랗게 물드는 단풍을 바라봤다. 아래서는 한 나무로 보여도 가까이서 살피니 고사목 둥치 둘레 움이 튼 가지가 여러 갈래였다. 곱게 물든 단풍잎이 지상으로 하나둘 낙하해 쌓여갔다. 은행 단풍을 완상하고 계단을 더 올라 법당 뜰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약수를 한 모금 받아 마셨다. 돌아서니 노티재 산등선으로 단풍이 물드는 중이다.
자여로 나오니 서천저수지에도 가을빛이 잠겨 있었다. 용잠삼거리에서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 가술로 와 오후에 ‘우곡사 은행단풍’을 한 수 남겼다. “무염이 창건해도 사적은 희미하나 / 약수터 물맛 좋아 찾는 이 줄을 잇는 / 우곡사 오르는 언덕 다비식이 열린다 // 고사목 둥치에서 새롭게 움이 솟아 / 부챗살 펼친 가지 무성한 이파리가 / 늦가을 무서리 맞고 소신공양 바친다” 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