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의료민영화인가
미국 사례로 예측해보는 영리자회사의 우울한 미래
By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 2014년 6월 25일, 9:33 AM
지난 6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고, 병원이 부대사업 목적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허용하는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작년 12월 발표했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라는 의료민영화 정책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부분의 정책들이 유보되고 있었지만, 이번 가이드라인은 예고한 그대로 6월에 발표되었다. 영리자회사 허용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발표 당시부터 우회적 영리병원 허용의 내용을 담았다 하여 시민사회의 비판과 반대에 부딪쳤던 영리자회사 도입 안은 몇 가지 항목만 달라졌을 뿐, 큰 틀은 변한 것이 없다.
비영리병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영리자회사를 통로로 하여 투자자들이 가로챌 수 있는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더욱이 보건복지부가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고 있는 영리자회사에 대한 규제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으로, 아무런 법적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현실화시키는데 있어 법 개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자회사 설립과 운영만이 남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우회적 영리병원이 실제 우리의 일상과 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예측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1980년대에 영리병원과의 수익성 경쟁을 위해 영리자회사를 설립했던 미국 비영리병원의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 의료현실에 어떻게 적용될지 살펴보자.
영리병원과의 수익 경쟁 속에서 영리자회사를 도입한 미국 비영리병원
1980년대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체인이 성장하면서 비영리병원은 수익성 경쟁에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여기에 레이건 행정부가 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예산을 삭감하면서 이들을 주로 치료해왔던 비영리병원은 재정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비영리병원은 여러 경제적 해법을 찾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병원의 일부 기능이나 부서를 영리자회사로 독립시키는 일이었다.
1985년의 전국적 규모의 조사에 의하면 34%의 병원이 자회사를 설립했다고 답했으며, 1987년 버지니아 주의 모든 병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62.5%의 병원이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회사에서 수행하는 사업은 크게 4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가 의료 관련 상품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의료기기 판매·임대·보수, 병실 임대 등을 포함하며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두 번째가 보조적 서비스 제공으로 주차장, 음식점, 청소업, 세탁 서비스 등을 포함한다. 세 번째가 인력 제공 및 경영 자문이며, 네 번째는 병원 소유의 토지 및 건물 임대 또는 판매업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영리자회사 설립 붐은 비영리병원의 기업화로 이어졌다. 1979~85년 사이에 구조조정을 통해 영리자회사를 설립한 1,037개 병원 이사회의 정책결정구조와 영리자회사를 설립하지 않은 1,883개의 병원을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영리자회사를 설립한 비영리병원이 기존의 자선적 모델에서 기업형 운영구조로 변화한 것이 관찰되었다.
가이드라인 하에서 예측되는 영리자회사 운영 전략과 그 부작용
보건복지부는, 한국의 경우 영리자회사의 범위를 부대사업으로 제한했고, 부작용을 방지하는 규제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먼저 정부의 이야기가 옳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미국의 비영리병원들은 영리자회사를 세울 때 우선 고수익을 내는 사업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나누었다.
고수익을 내는 사업 부문은 자회사로 독립시켜 비영리병원 내부에 있을 때보다 수월하게 더 높은 수익을 내도록 한다. 한편 병원을 부양했던 고수익 부문이 빠지고 나면 그 동안 적자를 내고 있었던 부문의 의료비를 새로 책정한다.
한국의 경우로 적용해보자. 현재 비영리병원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부문은 장례식장, 주차장업 같은 부대사업이다.
예컨대, 2012년 서울대병원의 부대사업 부문은 순이익 185억으로 수익률이 25%에 육박한다. 수가로 규제받지 않는 부대서비스 부문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상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영리자회사로 독립시키게 되면 병원이 운영할 때보다 더욱 수익을 추구할 것이며 그 열매는 대부분 투자자들이 가져갈 것이다.
고수익 부대사업 부문을 분리시킨 병원은 표면적으로는 전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낮아지게 될 것이다. 새로 설립된 영리자회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지만 어쨌거나 영리자회사와 병원은 서로 다른 기업체이다.
병원 측은 영리자회사의 엄청난 수익률은 쉬쉬하면서 상대적으로 저수익 부문만 남은 의료법인의 재정 악화를 과장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는 경영난을 구실로 삼아 비급여 진료와 과잉진료를 강화해 환자들을 상대로 사라진 수입을 벌충하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자들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인상된다.
또한 병원이 경영 위기를 핑계로 노동조합을 압박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수가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가 영리자회사 도입의 근거로 주장하는 의료법인의 수익성 개선의 이면에는 이런 부정적 효과가 숨어있다.
영리자회사를 제재할 수 없는 정부의 지도‧감독권
이번에는 정부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정부는 영리자회사가 시행규칙으로 정한 부대사업 이외의 사업을 하는 경우에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재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법적 효력을 전혀 갖지 않는 것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만들어 놓은 처벌 규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만약 영리자회사가 지정된 것 이외의 부대사업을 하는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먼저 시정명령을 내린다. 시정명령은 지정된 부대사업 이외의 사업 부문의 자산과 주식을 매각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자산이나 주식을 매각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최근 자회사인 안연케어의 주식을 매각해 750억 원의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더구나 자산이나 주식을 매각할 때 제대로 판매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기다려 준다는 것 역시 처벌할 의사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병원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도지사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법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법적 근거도 없는데다가 영리자회사를 작정하고 밀어주는 보건복지부가 이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의료법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도지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사법당국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 한 제재 조치는 유명무실할 뿐이다. 무엇보다 가이드라인은 모법인인 의료법인만을 규제하고 있다. 실제 문제가 되는 영리자회사는 상법의 적용을 받아 가이드라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
이렇게 규제가 허술한 경우에 영리자회사가 가장 먼저 뛰어들 사업은 무엇일까? 바로 의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의료기기 임대·판매, 의약품 공급, 의료기관 건물 임대업 등이다. 이미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의료서비스와의 연관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영리자회사의 수익률이 좋았다.
이 같은 사실을 뻔히 아는 병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병원은 영리자회사가 공급하는 의료기기의 사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환자들에게 과잉진료를 실시할 것이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건물 임대료나 물품 대금을 비싸게 지불하는 방식으로 영리자회사로 흘러갈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영리자회사의 이윤은 투자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과잉진료로 높은 의료비를 물게 된 환자들이다. 만약 이 사실이 발각되어 시정명령을 받는다 하더라도 영리자회사의 높은 수익률을 담보 삼아 주식과 자산을 비싼 가격으로 팔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또 미국의 사례처럼 영리자회사가 인력 공급을 맡아 병원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법 개정이 필요 없다면 의료법 시행규칙만 바꿔 부대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면 간단하게 가능해진다. 중소병원의 수익성 개선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정부이기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선 노동조합의 파업에 연대하자
작년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민영화 논란이 일자 정부는 자신들도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책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부가 지향하는 것은 미국식 의료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80년대의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체인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으며 의료복지예산은 삭감되었다. 그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영리병원들은 영리자회사를 만들고 기업화가 심화되어 영리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한국의 의료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려 한다. 영리자회사 허용은 이미 상업화 되어버린 의료법인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게끔 만들 것이다. 격화된 경쟁 속에서 환자들은 높은 의료비를 지출할 것이며 병원노동자들은 경영 위기를 핑계 삼아 호시탐탐 구조조정을 노리는 경영진의 압박에 고통 받을 것이다.
지난 2003~2008년 사이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등 중부 유럽에서 정부의 의료민영화를 막아낸 투쟁들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국가에서 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다. 체코에서는 100만의 노동자가 참여한 총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6월 24일에 경고파업을 하였으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6월 27일에 1차 경고파업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의료민영화를 기치로 걸고 하는 첫 파업이다.
노동조합들이 파업으로써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섰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중들의 강력한 연대이다. 함께하여 우리 모두의 건강을 파괴할 의료민영화를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