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알자
빌헬름 구스틀로프호(Wilhelm Gustloff) 침몰 사건의 발생 시기와 인명 피해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침몰 시기
발생일: 1945년 1월 30일 밤
상황: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군의 진격에 쫓기던 동프로이센 지역의 독일 피난민과 부상병, 해군 장병들을 태우고 발트해를 항해하던 중 **소련 해군 잠수함(S-13)**이 발사한 어뢰 3발을 맞고 침몰했습니다.
2. 인명 피해 규모
희생자: 약 9,000명 ~ 9,400여 명 (역사상 단일 선박 침몰 사고 중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됨)
승선 인원: 정원(약 2,000명)을 훨씬 초과해 피난민과 군인 등 1만 명 이상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민간인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며, 어린이만 약 4,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생존자: 약 1,200여 명
🚢 타이타닉보다 6배 더 많은 사람이 숨진 침몰 사고 🚢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침몰 사고 🚢 세계 최악의 선박 침몰 사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군이 독일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하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발트해를 통해 서쪽으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태운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소련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약 1시간 만에 침몰했습니다.
약 9,000~9,4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타이타닉호보다 약 6배 많은 인명 피해입니다.
이 사고는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단일 선박 침몰 사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현봉학 박사 등의 간곡한 설득으로 수많은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향했던 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에는 선원들을 제외하고 약 1만 4,000명의 피난민이 승선했습니다.
이 배는 원래 정원이 승선원과 승객을 모두 포함해 60여 명(또는 59명)에 불과한 화물선이었으나, 선적하고 있던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그 공간에 정원의 200배가 넘는 피난민을 태웠습니다.
이후 3일간의 혹한 속 항해 과정에서 배 안에서 태어난 신생아 5명을 포함하여, 총 1만 4,005명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무사히 거제도에 하선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단일 선박에 의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첫댓글 흥남부두 기적의배에는 약14,000명이
승선 무사히
거제도까지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