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2024년 3월 29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이사 52,13-53,12)(히브 4,14-16;5,7-9)(요한 18,1-19,42)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재임 중에 한국을 2번 방문하였습니다.
1984년 5월에는 103위 시성식을 위해서 방한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여의도에서 시성식이 있었고, 저는 현장에서 자리를 정리하는 질서요원으로 봉사했습니다.
1989년에는 제44차 성체대회를 위해서 방한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여의도에서 파견미사가 있었고, 저는 성체분배를 하였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참가자들에게 행사장소로 안내하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 신학교에서 미사를 하였을 때입니다.
저는 중앙 통로 자리에 있었고, 하혈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져서 하혈이 멈추었던 것처럼
교황님의 제의가 제 발에 스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을 살짝 통로 쪽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사제가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제게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제가 되었고, 33년 동안 사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교황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2009년 2월에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세요.”
교황님과 추기경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복음을 전하셨고,
말씀과 표징으로 새로운 권위를 보여주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7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 일곱 가지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삶을 통해서 꼭 실천하도록 권고합니다.
오늘 성금요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나의 영혼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반당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3번이나 넘어지시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극한의 고통 중에 하느님의 침묵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그러니 절망 중에, 고통 중에 예수님께 의탁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짐을 진 자들은 모두 나에게 오노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목마르다.’입니다.
2000년 전에는 제자들의 배반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외침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교만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목이마르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뜻을 먼저 찾으려는 신앙인들 때문에 목이 마르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기 보다는
취미 활동과 재물에 더 관심이 있는 사제들 때문에 목이 마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목마름을 우리들이 희생과 선행으로 채워드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우리가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 중에는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기까지 우리는 신앙의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다섯 번째는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요셉성인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여섯 번째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죄인은 삶이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가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 죄인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느님의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평가는 절대평가입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커다랄지라도, 아무리 우리 죄가 많다할지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유다는 희망을 버렸고, 구원의 길에서 멀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절망을 버렸고,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 중에는 ‘나는 안 돼!’라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새도, 들의 꽃도 다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일곱 번째는 ‘어머니 이 사람이 아들입니다.
이분이 어머니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