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적(王籍)-野望(야망)(들에서)
東皐薄暮望(동고박모망) 동쪽 언덕에 올라 저녁놀진 들을 바라본다
徙倚欲何依(사의욕하의) 헤맨다고 하여 어디에 내 몸 의지할 곳 있으랴
樹樹皆秋色(수수개추색) 나무란 나무는 모두 가을빛으로 물들었고
山山唯落暉(산산유낙휘) 산이란 산은 지는 햇빛에 붉게 물들었다
牧人驅犢返(목인구독반) 목동은 송아지를 몰아 돌아오고
獵馬帶禽歸(엽마대금귀) 사냥꾼 또한 잡은 새를 말에 매달고 돌아온다
相顧無相識(상고무상식) 주위를 둘러봐도 모르는 사람들뿐
長歌懷采薇(장가회채미) 길게 노래 불러 수양산에서 고사리 뜯은 백이 숙제를 그린다
*왕적[王籍, 미상 ~ 547년 추정, 자는 문해(文海), 남조 양(梁)나라 낭야(琅邪) 임기(臨沂, 지금의 山東 출생) 사람]은 박학했고 재기(才氣)가 넘쳤으며, 제(齊)나라 말엽에 관군행참군(冠軍行參軍)이 되었으며, 외병기실(外兵記室)로 옮겼고, 양나라에 들어서 여요령(餘姚令)과 전당령(錢塘令)을 지냈고, 천감(天監) 연간에 안성왕(安成王)의 주부(主簿)가 되었으며,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이 회계(會稽)를 진압하러 출병했을 때 그를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삼았고, 군(郡) 안에 유운문(有雲門), 천주산(天柱山)이 있어 왕적은 이곳을 유람하느라 때로는 몇 달 간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따금 약야계(若耶溪)에 이르러 유람하며 시를 지었다고 하고,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옮겼지만 뜻을 얻지는 못하였으며, 나중에 다시 안서부(安西府)의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었으며, 겸하여 당현령(唐縣令)이 되었으나 현(縣)의 공무는 돌보지 않고 종일 술을 마시며 우울해 하다가 송사(訟事)를 일으키는 이가 있으면 채찍질을 해서 쫓아버리곤 했다 하고 초서(草書)를 잘 썼고, 부시(賦詩)에도 능했다고 하며, 시풍은 원적이나 도연명을 따르려 했고, 은둔적인 경향이 강하여 소박하다 합니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인데, 가을 저녁 산과 들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로 왕적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영위되고 있는 생활을 읊으면서 그 모든 것은 제3자로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고독한 감회가 끝 두 구절에 나타나 있고, 시 처음의 동고 또는 작가가 은둔생활을 하던 곳으로 그는 동고자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다. 위 시는 수나라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황혼의 풍경은 왕조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합니다.
*형식 : 오언율시(五言律詩)
*東皐(동고) : 동쪽 언덕, 원래의 뜻은 습지대
徙倚(사의) : 목표없이 어정거리다
落暉(낙휘) : 지는 햇빛
犢(독) : 송아지
獵馬(엽마) : 사냥갈 때 타는 말
禽(금) : 새의 총칭
相顧(상고) : 주위를 둘러보다
相識(상식) : 낯익은 사람
長歌(장가) : 목소리를 길게 뽑아 노래하는 것
采薇(채미) : 고사리를 뜯다,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뜯어 먹다 끝내 굶어 죽은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를 가리킴
伯夷叔齊(백이숙제) :
중국 주(周)나라의 전설적인 형제성인(兄弟聖人).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자 신하가 천자를 토벌한다고 반대하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백(伯)과 숙(叔)은 장유(長幼)를 나타낸다. 본래는 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 河北省 昌黎縣 부근)의 왕자이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다가 끝내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떠났고 가운데 아들이 왕위를 이었고, 그 무렵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멸하여 주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수양산 首陽山]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죽었는데, 유가(儒家)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淸節之士)로 크게 높였다.
첫댓글 아련히 바라보는 가을의 잔상...
백이숙제를 그리는 황혼의 삶...그리고 삶의 무상함~~~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 인생은 서서히 저무는 것인가 봅니다.
회장님의 댓글에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