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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촛불광장 원문보기 글쓴이: 촛불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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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2011년 05월 24일(화) 김양희 기자
<연재> 4.3항쟁 63주년에 즈음해 만난 평화의 섬, 제주 (마지막회)
제주도는 지난 2005년 1월 27일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 제12조 근거해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의 지정과 선언만으로 될 수 없다.
4.3항쟁뿐 아니라 과거 탐라 시기부터 부침과 영욕의 역사에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척박한 돌무지 땅을 일구고 거센 바람에 맞서 싸운 제주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앞으로도 평화의 땅으로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 때만이 평화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올해 4.3항쟁 63주년을 맞아 <통일뉴스> 기자는 취재를 위해 제주를 잘 아는 한 지인(知人)과 함께 곳곳을 탐방했다. 헌신적으로 제주를 알려준 그 지인은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다. 제주의 아픈 역사는 아직도 일상 곳곳에 뿌리 깊이 남아있다. / 편집자 주
10년 넘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싸움
▲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의미하는 조형물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제주도에 처음 도착한 날 저녁, 운이 좋게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바 있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 중 나는 유일한 외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행사를 취재한다고 하자 설명을 해주시던 분은 참 난감해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 싸움은 벌써 10년 넘은 싸움입니다.” 그는 제주도의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역사부터 꺼냈어야 했다.
국방부가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립을 처음 추진한 것은 1993년이며 1997~2001 국방중기계획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반영됐다.
▲ 경고.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해군은 2002년 해군기지 최적지로 화순을 선정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이후 사업은 2006년 방위사업청에서 해군전략기지 건설 강행 방침이 발표되고 당시 김태환 도지사가 해군기지 실무팀을 구성하면서 9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가 선정됐다. 그러나 이 역시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그렇게 부지선정이 난항을 겪는 사이 2007년 강정마을이 선정된 것이다.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주민들의 의사결정은 지난 2007년 4월 26일 마을총회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마을에 콘도를 건설할 때도 8번이나 총회를 열어서 결정했는데 해군기지는 주민투표도 없이 결정됐고 그나마도 성원이 모자란 상황에서 총회를 진행했다.
국방부, 제주도정은 주민동의 없이 해군기지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강정해군기지 건설은 절차적으로 잘못돼 단 한 번의 주민설명회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마을회가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유권자수 1050명 중 725명 투표 반대 680표, 찬성 36표, 무효 9표 등 반대의견은 94%를 넘었다고 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 중
▲ 해군기지 공사현장으로 뒤로 보이는 건물들은 현장사무소와 임시식당 등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강정마을에는 이미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해안바위는 깨지고 있었고 현장 사무소는 물론이고 현장 인부들을 위한 임시식당까지 세워졌다.
강정마을 바닷가는 2002년 11월 환경부 지정 생태계보전지역, 해양수산부지정 해양보호구역, 2002년 12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 제주특별자치도 생물권 보전지역, 2004년 12월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제442호, 천연보호지역 등 무려 5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려한 환경보호지역이라고 하는데 한켠에서는 이미 흙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방문을 했을 때도 유적지 발굴을 위해 일반인들이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노란선이 둘러 쳐져 있었다. 선사시대 유적발굴을 위한 현장 조사 중이라고 한다.
▲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올레길 코스도 옮겼다고 설명하는 해군방어사령관이 세운 표지판 바로 뒤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발굴조사중이라는 문화재청의 표지판이 놓여있다. 문화재청 표지판 뒤로 보이는 노란 선들은 발굴조사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선이다. 해군 측은 선사유적지를 밀어버리고 해군기지 건설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특히 강정마을은 제주도에 얼마 되지 않는 논이 있을 만큼 물과 흙이 좋은 지역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고 했다. 수려한 자연환경 외에도 제주군사기지화는 주변국가와의 긴장도만 가중될 뿐 평화에 그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뿐이라며 주민들은 정부가 천억금을 준다 해도 마을을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바닷가 곳곳에는 활동가들이 다녀간 흔적이 가득했다. 각종 해군기지 건설반대의 내용을 담은 조형물들이 가득했고 의견을 적어서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엽서를 쓰고 반대서명을 할 수 있는 천막도 설치돼 있다. 강정마을은 올레7코스를 지나는 길에 위치해 관광객들도 지나면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 몇몇 비닐하우스는 부서져있고 감귤나무들은 베어졌다.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찬성하는 집에서 수 년 동안 길러온 감귤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일부러 죽인 감귤나무.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안타깝게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논란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생활공동체가 깨졌다. 농경은 물론이고 어업 등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공동체가 어느 지역보다 발달한 제주도지만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집과 반대하는 집은 가족 친지들조차도 서로 등을 돌린 지 오래라고 한다.
마을 곳곳에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집들은 반대 깃발을 내걸었다. 심지어는 동네 구멍가게도 찬성하는 사람은 찬성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따로 반대하는 가게로만 간다고 한다.
말로만 들어도 마치 1980년대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갈등을 보는 듯 했다. 당시 두 지역 연고팀의 프로야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지역민들은 경기결과에 따라 울고 웃었다.
심지어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가게에서 해태과자는 팔지도 않았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해태과자는 사람 피로 만든 것이라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롯데 과자와 껌을 구경할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지역감정을 2011년 현재 제주도의 강정마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민갈등으로 인한 불화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해군기지가 건설된다고 해도 주민들과 공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절대보전지역 지정, 해제, 취소 요구 중
▲ 평화의 바다인가? 해군기지인가?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이런 가운데 제주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법정싸움이 진행 중이다. 강정마을은 한때는 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이었으나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도의회에서 공사 진행을 위해 이를 해제시켰고 지금에 이른다.
‘절대보전지역’은 지난 1990년 초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당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발생을 우려해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선별해 지정하는 제도로 제주도에만 있는 강력하고 유일한 환경보전 제도이다.
제주도 전체 면적의 10% 정도뿐인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상 강정마을은 ‘제주도 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상 해군기지가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지난 2009년 11월 30일 총리실은 필요에 따라 제주의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제주도특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12월 23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제주도의회에서 강정마을의 해안 10만5295㎡가 날치기처리로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최근 1년 3개월 여 만에 다시 뒤집어져 의회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소속의원들이 다시 조례개정안 통과 과정에 문제를 지적하며 지난 1월 ‘절대보전지역 변경 해제에 대한 취소 결의’안을 가결했고 3월에는 제주도의회에서도 절대보전지역변경 취소결의안이 상정됐으며 처리된 바 있다.
의회는 강정마을의 절대보전지역 해제의 날치기 처리가 편법적인 방법으로 생태계, 경관 1등급인 절대보전지역의 규제를 완화하고 해제한 것으로 성산일출봉은 물론이고 제주지역에서 개발이 불가능한 곳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취소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제주도내 야5당은 최근 강정해안변 절대보전지역 지정 해제에 대해 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밝혔다.
제주도내 야5당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야5당은 “도지사는 국책사업인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이유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강정해안변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했다”며 “특히 지난 2009년 9월 제주도에서 작성한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예정지내 절대보전지역 변경(축소) 조사ㆍ검토서’에서 현장조사 결과 강정마을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 당시와 환경여건이 변화되지 않았음이라고 명확하게 기재됐다”고 말했다.
▲ 경고.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이런 가운데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강정마을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무효로 해달라고 제기한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최근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강정마을회는 지난 2009년 12월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2010년 1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12월15일 “법령에 따라 침해되는 구체적, 법률적 이익이 없어서 소송을 제기할 원고 자격이 없다”고 판시, 1심 재판은 사실상 강정마을회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이에 강정마을회는 “법원이 원고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24일 절대보전지역 변경 처분 무효 확인 소송 항소장을 제출했고 광주고등법원 제주부는 지난 18일 항소를 기각했다.
이와 관련 강정마을회 측은 “1심 판결 후 항소를 통해 법원의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했지만 이날 판결은 법의 양심을 상실한 결과다”며 “곧 바로 대법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상고로 이들은 한동안 법적 공방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온라인 모임은 ‘강정마을 해안가 절대보전지역 지정 해제처분 직권취소를 위한 청원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트위터 모임인 ‘강정당(강정은 살아있당)’은 지난 16일부터 강정마을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우근민 도지사가 직권으로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도민·국민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인 목표는 제주도 1만 명과 국민 5만 명 등 총 6만 명으로 다음달 29일까지 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제주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돼 강정마을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 중이었던 영화평론가 양윤모씨와 마을주민들이 연행됐다. 또 마을 사람들의 찬반 대립은 더욱 심화돼 심지어 몸싸움으로 부상을 입는 사람들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인은 “강정마을은 제2의 4.3을 겪고 있다”고 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 또 지난 63년 전처럼 고립돼 피해 등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점 등이 당시와 똑같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국책사업이고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며 희생을 강요하는데 이처럼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4.3 당시와 꼭 닮았다는 설명이다.
서귀포지역신문인 서귀포신문이 지난 2009년 강정마을 주민 1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군기지 갈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이 생겨 10명 중 4.3명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은 정말 제2의 4.3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 못 다한 이야기>
아직도 이름 그대로인 5.16도로
지인과 함께 제주 일대를 다니면서 자주 눈에 띄는 도로가 있었다. 서귀포에서 한라산 성판악휴게소 방면으로 올라가다보면 도로 양옆에 심어진 나무들이 터널형태를 띄고 있는데 너무도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런데 이 길의 이름은 5.16도로.
5.16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토건설대를 투입해 한라산을 관통하는 이 도로를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국도로 한라산을 가로질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이어주는 곳으로 제주도의 남북을 수직으로 이어주는 도로이면서 이동시간을 단축시켜줬다.
1990년대 말 제주도의 시민단체들은 “5.16도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있다”며 “군사잔재가 남아있는 5.16도로 이름은 바뀌어야 한다”며 목소리 높여 우리 이름 찾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여의도광장도 원래 서울 5.16광장이었는데 군사잔재 청산을 위해 이름을 바꾼 것처럼 5.16도로도 하루 빨리 이름을 바꿔야한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답은 없이 지금에 이른다.
제주도에는 중국집이 많다?
▲ 산지천 하류에 위치한 중국피난선인 해양호를 복원한 배모형.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제주도에는 의외로 중화요리를 잘하는 집이 많다. 차이나타운은 없지만 실제 중국에서 온 이들이 식당을 차린 것이다.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많은 이유는?
1950년 8월 초 제주도 건입동 제주항 부두 근처의 산지천 하류에는 중국이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치를 때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피난선을 재현하여 전시관으로 꾸민 공간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열쇠다.
1947년 가을, 중국인 54명이 피난선을 타고 랴오닝성(요녕성) 장하현 석승도를 출발해 진저우(금주) 등을 거쳐 1948년 인천에 입항했다. 인천에서 2년 여 동안 생활한 피난민들은 다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다 완도 부근 청산도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배의 일부가 파손되고 인명 피해도 입었다.
피난선은 청산도에서 한국군함에 의해 예인되어 1950년 5월 초부터 제주 산지천에 정박하게 되었고 산지천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국 난민들은 1953년 인천에 남아있던 친족들까지 합류해 이 정크선에서 생활했다. 당시 50명 가까운 인원이 수년간 공동생활을 하다가 제주도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
그 후 이들은 제주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중화요리 식당에 가보면 산지의 중국피난선 ‘해상호’ 사진을 크게 확대한 액자가 걸려있는 곳이 많다. 대부분 이들의 후손이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고마운 인사
기자에게 많은 것 보여줘 제주도를 알리고 싶다며 하루에 180km씩 운전을 하면서(제주도에서 180km 운전을 한 거라면 일주를 해도 몇 번씩 할 거리라네요^^) 곳곳을 안내해준 소중한 지인에게 고마운 인사 전합니다.
진정으로 제주도를 사랑하시는 당신은 제주의 대표 지킴이입니다. 원하시는 꿈 꼭 이루세요. 서울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