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길
- 김명희
제주 김녕의 '고장 난 길'* 활자를 따라
벽 속 골목으로 스며든다
벽화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매화와 이른 벚꽃이 한통속
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냥 꽃이라 하면 안 되나 저토록 잘 어우러졌
는데 매화 벚꽃 매화 부르는 사이 잡다한 풀과 꽃이 쳐들어오는 봄,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릴 때도 빌린 돈의 이자처럼 불어나는 세상사
이 끔찍한 것을 봐야하는 봄! 본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것이다 온몸
던져 벽과 싸우는 것이다
허리 굽은 나무를 보면 안다
하늘도 나무에 기댈 때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 쇠를 구부려뜨려서 꽃을 만들자
손아귀와 손목 힘줄 사이로 바다의 지느러미가 움직인다
*'꽃이 핀 길'의 제주 말
ㅡ『한국동서문학』(201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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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투리 중에서도 제주사투리가 가장 알아듣기 힘듭니다
큰애네 집 가까운 버스정류장에는 '와리지 말앙, 자들지 말앙'이란 말이 써있습니다.
조바심 내지 말고 서둘지 말라는 뜻이라네요
'곶자왈'이 숲과 가시덤불을 뜻한다는 것도 인간극장에서 일았습니다
꽃길을 고장 난 길이라고 부른다는 데서 시가 출발했습니다만
'봄'과 '벽화'를 새김질하면서
나무가 굽은 것이 하늘이 기대어 그렇다는 깨달음은 또 얼마나 상큼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