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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3년의 뱃길에 몸을 실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지승바녀다라 존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부처님의 정법을 동방에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불교가 용성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복을 빌고 공덕을 쌓는 형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깨달음은 거래가 되었고 수행은 기복의 장식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잘 많은 그 허울뿐인 형식을 깨뜨리고자 했습니다. 불상을 향해 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바로보아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인도에서 가져온 것은 화려한 금은보화도 신비로운 주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억겁의 세월을 뚫고 내려온 하나의 질문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물음이었습니다. 이 푸른 눈의 이방인이 중국 땅에 심은 선의 씨앗은 곧바로 숲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오해와 거절 침묵과 고독 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인물의 전기를 찬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달마라는 존재를 통해 중국 불교의 흐름을 바꾸게 될 하나의 문제 제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추적하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닮아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제자 해가에게로 다시 승찬과 도신 공인을 거쳐 마침내 해능에 이르러 전혀 다른 얼굴로 꽃이 피게 됩니다. 본 채널에서는 오늘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중국 선종의 정통 범맥을 잇는 조사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차례차례 따라갈 것입니다. 그 첫 장에서는 달마 대사가 왜 왕실의 안락함을 버려야 했는지 그리고 왜 8의 나이에 생사를 건 바다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봅니다. 또한 그가 중국 땅에서 제시한 네 가지 실천의 틀 곧 이입사행이라는 씨앗이 훗날 선종이라는 거대한 숲에 뿌리가 되는 과정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달마의 날카로운 일갈은 위로를 건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인간의 안락한 착각을 깨우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인도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한 사람에서 또 다른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계보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초조 달마. 그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보리달마의 고향은 남인도의 강력한 해상국가였던 향지국이었습니다. 그는 향지국 국왕의 새 아들 중 막내 왕자로 태어나 세상의 모든 부귀 영화와 권력을 손에 쥘 채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왕실의 삶은 멀리서 보면 찬란했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숨 막히는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모친인 국왕이 서거하자. 고요하던 궁궐은 순식간에 탐욕과 증오가 소용돌이치는 아비교환으로 변했습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고 어제의 충신들은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었습니다. 피를 나눈 혈육들이 오직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광경은 젊은 왕자 닮아의 가슴에 깊은 금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안에 숨겨진 욕망과 계산을 더 또렷이 보게 됩니다. 닮아 역시 그 현실을 너무 이른 나이에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견고해 보이던 왕권조차 인연이다 하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 깊어지는 및 빠진 독과 같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공전 안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의 불안함과 권력을 잃은 자의 원망이 밤마다 뒤엉켜 울려 퍼졌습니다. 다일먼은 이곳에서는 누가 왕이 되든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왕권을 쓰는 것이 승리가 아니라 이 싸움판에서 내려오는 것이야말로 진짜 승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그는 왕자의 신분과 보장된 안락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당대 최고의 성자였던 제27대 조사 반야다라 존자를 찾아가 스스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스승번야라는 글을 제자로 받아들이며 향후 40년 동안 오직 마음의 근본을 닦는 데 전념할 것을 명했습니다. 화려한 비단옷은 혜진 누더기로 바뀌었고 산에 진미는 대중의 공양 한 그릇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제까지 모든 것을 가졌던 이는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주행의 긴 세월 동안 그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 안에 남아있던 억울함과 분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닮아가 체득한 첫 번째 실천이 바로 모원행이었습니다. 보온행위란 원한을 갚는 행위라는 뜻을 지녔으나 그 본질은 복수가 아니라 철저한 인과의 통찰에 있었습니다. 닮아는 과거 왕실에서 자신을 헤아려 했던 형제들과 배신했던 신료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원망하는 대신 자기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 이 억울함과 고통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인연의 흐름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그는 원망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받아내어 녹였습니다. 사람은 보통 억울함을 붙잡고 살아가며 그 기억으로 자신을 지탱하려 합니다. 하지만 닮아는 그 억울함마저 내려놓는 길을 택했습니다. 남이나를 해치는 것은 인연의 소치요. 그것에 분노하는 것은 나의 무지함 때문이다. 이것은 약자의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상처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강한 자의 결단이었습니다. 닥쳐온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 태도는 원망이라는 감정의 사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지독한 자기 성찰의 시간은 훗날 그가 중국 땅에서 겪게 될 수많은 막해와 시기 여섯 차례에 이르는 독살 위협 속에서도 그를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보리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스승과 녀다라 존재는 입적을 앞두고 제자 닮아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떠난 지 67년이 지나면 너는 반드시 동방의 나라 중국으로 가거라. 닮아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긴 채 인도 땅에서 묵묵히 법을 펴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67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6 씨는 늙어갔고 세상 풍파는 글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더할수록 그의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고 안목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마침내 약속된 시간이 도래하자. 80의 노승보리 닮아는 동방전법이라는 서원을 실천하기 위해 고련히 길을 나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것은 안주를 거부하고 다시 한번 불확실한 인연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선택이었습니다. 닮아는 왕자로서의 과거도 수행자로서의 명성도 모두 인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 마음의 등불만을 품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었습니다. 저기 520년경 여든의 노승보리 닮아는 마침내 인도 땅을 떠나 거친 바다로 향했습니다. 당신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향하는 배길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여행과는 전혀 다른 그 자체로 죽음을 각오한 선택이었습니다. 낡은 돗배 하나에 몸을 씻고 남중국해에 거친 풍랑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닮아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어 무려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내 길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늘 생사의 경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거대한 태풍이 몰아칠 때면 배는 나뭇잎처럼 흔들렸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먹을 물이 없어서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함께 배에 올랐던 젊은이들이 풍토병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차례로 쓰러져 바다에 던져질 때에도 여든에 닮아는 말 없이 가보좌를 들고 앉아 눈앞에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집묵은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이 길에 오른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결과를 내려놓았다는 노승의 태도였습니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무엇을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닮아의 항해는 바로 그런 선택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지독한 항해 속에서 닮아 대사는 주연행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냈습니다. 수연행이란 인연에 따라 흘러가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까지 휩쓸려 가지는 않는 태도입니다. 공랑이 불면 부는 대로 바다가 잠잠해지면 잠잠해지는 대로 그는 인연을 거부하지 않았고 또 앞서 끌어당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라서 도착하겠다는 욕심마저 내려놓았을 때 가장 고요해졌고 그 고요함 속에서 항해는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3년의 사투 끝에 닮아가 도착한 곳은 중국 남부의 광저우였습니다. 인도에서 건너온 푸른 눈의 노승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곧장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달마가 마주한 중국 불교의 현실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정법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불교가 국가적 차원에서 숭상되고 있었지만 그 가르침은 이미 형식과 공덕 계산 속에서 많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깨달음보다는 복을 구했고 내면을 비추기보다는 내생에 안락을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도성 곳곳에는 화려한 사찰과 금빛 불상들이 즐비했으나 정작 그 안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끝까지 묻는 수행자의 기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겉모습은 번성했지만 속은 공허했습니다. 달마는 이 땅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쌓아 올린 탓에 본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광저우의 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은 그의 누더기 옷차림과 보름든 눈을 힐끔거리며 수근거렸습니다. 저 노승은 어느 절에서 왔기에 저리 초라한가? 무슨 신통력이 있기에 저 바다를 건너왔는가? 그러나 달마는 그 어떤 설명도 그 어떤 자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싹 틔울 수 있을 마음의 씨앗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 남조 양나라의 황제 양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수많은 승결을 공양하고 수천 개의 사찰을 세운 그는 스스로를 불심 천자라 여겼습니다. 그런 황제가 인도에서 온 고승의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곧바로 닮아를 수도 건강 오늘날의 남경으로 초청합니다. 이 만남은 형식과 공덕을 쌓아온 권력자와 본질 하나만을 붙든 수행자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닮은 초청에 응의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사찰과 탑들을 지나며 그는 이 땅에서 자신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저항을 불러올지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연이 닿는 곳이 황제의 궁궐이든 차가운 동굴이든 그에게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83의 노승골이 닮아는 그렇게 중국 불교의 심장부를 향해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선종의 불꽃이 타오르기 전 거대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한 이방인의 고독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수도 건강에 도착한 달마다 사는 당시 중국 불교의 최고 권력자이자 정점에 서 있던 양모제와 마주 앉았습니다. 양모제는 스스로 가사를 읽고 대중 앞에서 정전을 설법할 만큼 불심과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라 곳곳에 사찰을 세우고 수많은 승결을 공양하며 자신이 이룬 업적을 성스러운 공덕이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기대에 찬 얼굴로 인도에서 온 푸른 눈의 노승에게 마치 평생의 업적을 펼쳐 보이듯 물었습니다. 짐이 지금까지 수많은 저를 짓고 공양을 베풀었으며 경전을 필사해 물법을 융성하게 했으니 공덕이 대체 얼마나 되겠소 이 질문 속에는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조급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쌓아온 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싶어집니다. 양무재 또한 그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마의 대답은 얼음처럼 짧고 단호했습니다. 무공덕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이 한마디는 황제의 자부심뿐 아니라 당시 중국 불교가에 애써 쌓아올린 화려한 외피를 단숨에 무너뜨린 말이었습니다. 장황한 황제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법의 성스러운 진리 가운데 으뜸은 무엇이오? 닮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담담히 답했습니다. 곽영무성 그저 텅 비어 있을 뿐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 이 말은 황제의 공덕을 부정했을 뿐 아니라 그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나는 옳다는 믿음 자체를 뿌리부터 흔드는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닮아는 황궁의 비단 침상과 극진한 대우를 아무 미련 없이 뒤로한 채 궁궐문을 나섰습니다. 그는 양모제가 공덕이라는 이름으로 부처님과 거래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만큼 베풀었으니 이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마음. 즉 기복의 계산서가 깔린 자리에는 정법이 내려앉을 공간이 없다는 것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것이 달마데사의 철저한 비타협성이었습니다. 그는 전복을 위해 자신을 낮추거나 권력에 기대에 맞춰 진리를 흥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순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 생각을 접어야 할지 아니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남을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옵니다. 달마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길로 양나라를 떠나 북쪽 북위로 향했습니다. 사찰에 머물던 승려들은 그를 향해 황제의 호의를 발로 찬 무례한 노인이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달마에게는 대중의 박수나 권력자의 지지보다 훨씬 더 절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닮아 사상의 정수인 무소고행의 실천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인간은 그 대상에 묶이게 됩니다. 복을 팔아면 복의 노예가 되고 인정을 바라면 평생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달마는 왕실에서부터 황궁에 이르기까지 그 굴레가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가 양쯔강을 건널 때 갈대 잎 하나를 꺾고 그 위에 몸을 실었다는 이력도 강의 전설이 전해집니다. 분노한 양무제 군사들이 뒤를 쫓고 도도한 강물이 앞을 가로막은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달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상징하는 것은 도술이 아니라 제도입니다. 세상이 던지는 오해와 질투 그리고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이라는 거친 강물을 오직 자기 신념 하나로 건너가는 인간의 자세입니다. 무기 접경지대에 이르렀을 때 그를 시기한 무리가 독이든 음식을 건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달마는 그것을 알고도 조용히 받아 마셨고 기운을 운용해 독을 뱉어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하시기를 나섰습니다. 그것은 능력의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구할 것이 없는 자에게는 목숨조차 흥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닮아에게 세상은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가는 바람과 같았습니다. 그는 황제의 궁궐을 등지고 아무도 찾지 않는 소림사의 차가운 동굴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라 불렀고 미* 노인이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달마는 그 조롱마저 내려놓았습니다. 원망이 없는 보원행과 바람이 없는 무소보행이 이미 괴 안에서 금강석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닮아낸 모든 기대를 뒤로 하고 마음이라는 진짜 주인을 깨우기 위한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양모제의 화려한 궁궐을 등지고 북쪽으로 향한 달마 대사가 멈춰 선 곳은 숭산 소림사의 뒷산에 있는 차갑고 비좁은 동굴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인류 정신사에 남을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처절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동굴 벽을 마주한 채 9년 동안 침묵 속에 머문 이른바 몇몇 9년의 세월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달마가 어떤 신통력을 부리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구녀는 달마가 깨달은 이입사행의 사상이 중국 땅에 뿌리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동굴에 들어가 그가 마주한 것은 차가운 바위가 아니라 끝없이 요동치는 자기 마음이었습니다. 닮아는 이 침묵 속에서 세 번째 실천행위인 수연행을 삶으로 보여줬습니다. 주유은행이란 인연에 따라 흘러가되 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마음까지 휩쓸려 가지는 않는 태도입니다. 동굴밖에 세상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고 권력은 흥망을 거듭했으며 전쟁과 소문이 쉼없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동굴 안에서 닮아야 하루는 늘 같았습니다. 좋으면 추운 대로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그는 닥쳐온 인연을 밀어내지도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주연행은 결코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삶을 통제하려 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삶의 중심에 서는 고도의 내공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느 나이가 되면 더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삶을 원망하며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그 조건 위에서 자기 자리를 다시 세울 것인가? 닮아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가 9년 동안 바라본 것은 벽이 아니라 나라고 믿어온 생각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가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2년 따라 잠시 머물다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동굴 속에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게 침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2년에 메이지 않는 자만이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마침내달만은 24 행의 종착지인 네 번째 실천 싱버팽에 이르렀습니다. 진보팽이란 몰래 청정한 성품이라는 먹도에 거스르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원에게 단단함 수연에게 유연함 무소고행의 초연함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일상의 태도로 흘러나오는 경지였습니다. 그에게 수행이란 동굴에 앉아 있는 일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도 나라는 집착 없이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아호페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은 외로움이 습관이 되고 고독이 일상이 되는 혹독한 견디며 연속이었습니다. 이 수행의 깊이를 전하는 강렬한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면벽 수행 도중 쏟아지는 졸음이 그의 눈꺼풀을 짓눌렀을 때 닮아는 찰나의 방심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스스로 눈꺼풀을 베어 땅 위에 던졌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자라난 것이 자나무라 전해집니다. 잠을 쫓기 위해 차를 마시는 풍습은 바로 이 지독한 정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또 아홉 해 동안 꼼짝없이 벽을 마주한 탓에 그의 그림자가 바위에 새겨졌다는 이야기 역시 전해집니다. 이 극단적인 묘사들은 신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달마가 감당해야 했던 고독과 망상의 무게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닮아는 이 시간을 통해 중국 불교가 잊고 있던 실천하는 수행의 가치를 되살려 놓았습니다. 입으로만 진리를 말하던 시대에 자신의 몸과 시간을 모두 던져 깨달음은 밖에 있지 않다는 선종의 대원칙을 침묵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면벽을 마치고 일어섰을 때 달마는 더 이상 인도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중국 선종의 부리가 되었고 그가 정립한 입사에는 앞으로 수많은 수행자를 이끌어 갈 등불이 되었습니다. 억울함을 인과로 받아들이는 힘 2년에 몸을 맡기는 유연함. 구하지 않음에서 오는 자유 그리고 법도에 맞게 걷는 실천 이 내 기둥은 소림사의 차가운 동굴 속에서 아홉 해를 견디며 금강석처럼 굳어졌습니다. 달마의 면벽은 세상을 향한 가장 조용한 외침이었습니다.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마라. 곧바로 내 마음을 보아라. 그 자리가 부처의 자리니라. 이제 달마는 이 정법을 이어받을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동굴 밖에는 눈이 쌓이고 그 눈 속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법을 청할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소림사 뒷산 차갑고 비좁은 동굴 앞에 무거운 침묵을 가르는 발자국 소리가 다가옵니다. 저기 528년 깊은 겨울밤이었습니다. 바늘에서는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발목이 잠길 만큼의 눈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눈보라 소개한 중년의 수행자가 석상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혜조 훗날 중국 선종의 제이 대조사로 불리게 될 개가스님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유교와 도교 불교의 경전에 두루 통달한 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글을 읽고 사상을 섭렵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유를 고칠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예조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눈 속에 몸을 묶고 밤을 지새우며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9년 면벽의 노승은 단 한 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부품은 살을 내듯 몰아쳤고 눈은 무릎을 넘고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이 텠날 새벽 눈은 사람의 가슴까지 쌓였고 그때서야 날마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는 이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예조는 얼어붙은 입술을 간신히 열어 말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으로 이 막힌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닮아의 말은 냉정했습니다. 부처의 법은 수 없는 법의 인내와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대처럼 가벼운 각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태조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평생을 못 들고 있던 나라는 마지막 집착을 단칼에 배어냈습니다. 과연 눈버튼 순식간에 그의 처절한 고도심을 상징하는 붉은빛으로 물들었으며 그는 육신의 고통마저 초월한 채 자신의 한쪽 팔을 법의 재단 위에 올렸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 선종 역사에서 단비구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진리를 구하겠다는 그 결연함 앞에서 닮아는 마침내 제자를 향해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조는 다시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나 불안합니다. 곧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닮아는 그에게 시간을 초월하는 한 문장을 던졌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노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 주마. 해조는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불안한 마음이라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닮아가 말했습니다. 이미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 순간 해조는 마음은 본래 붙잡을 수 없는 것이며 괴로움 또한 실체 없이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질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잘만은 그에게 개가라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재월이 흘러 달마 대사가 이 땅에서의 인연을 마치고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곁에 있던 4명의 제자를 불러 세우고 한 사람씩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내가 이곳에와 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보아라. 도부가 말했습니다.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버리지도 않는 것이 도의 쓰임이라 생각합니다. 잘 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비를 얻었다. 미군이 총지가 말했습니다. 기뻐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달만은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보육이 말했습니다. 자대는 본래 비어 있어 얻을 것이 없습니다. 닮아는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해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스승 앞에 깊이 절하고 다시 물러나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리를 침묵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를 본 닮은 환희 미소 지으며 선언했습니다. 내가 나의 골수를 얻었구나. 그는 인도에서 간직해 온 가사와 바루를 해가에게 전했습니다. 내 마음의 정수가 이제 너에게로 이어진다. 이 범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진하라. 이렇게 해서 말로 전해지지 않는 선의 등불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의 마음으로 조용히 이어졌습니다. 달마대사는 소림사를 떠나 천성사에 머물며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연을 차분히 정리했습니다. 그의 정보 이해가에게 온전히 이어졌음을 확인한 노승의 걸음에는 더 이상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저기 536년 달 많은 제자들에게 마음의 본바탕을 비추는 능가경을 전하며 말없이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법군은 운기산 정토사에 안치되었고 세상은 인도에서 온 푸른 눈의 수행자가 마침내 쉼에 들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달마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경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적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서역으로 가던 관리 송우는 총령고개에서 차마. 믿기 힘든 광경을 마주합니다. 누더기를 걸친 한 노승이 집신 한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서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간 송우는 숨이 멎을듯 놀랐습니다. 그는 분명 3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 보리달마였기 때문입니다. 잘 많은 놀란 소문을 바라보며 그저 인자하게 웃고는 짧게 말했습니다. 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네. 이 기이한 보고를 들은 조정에서 급히 닮아야 무덤을 열어보았을 때 관속에는 시신 대신 집신 한 짝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닮아는 죽음마저 하나의 인연처럼 내려놓고 신발 한 짝을 마지막 가르침으로 남긴 채 역사의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달마가 떠난 자리에는 중국 선종이라는 위대한 번맥의 씨앗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일깔 그의 침묵 그의 모소고의 정신은 이미 한 사람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 피로써 법을 청했고 말 없이 골수를 전수받았던 사내 자신의 몸보다 마음의 진실을 먼저 내놓았던 제자 개가였습니다. 조조 닮마로부터 시작된 이 위대한 마음의 족보는 이제 한 노승의 전설을 넘어 반인간의 치열한 삶으로 이어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달마는 떠났지만 선종은 이제 막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묻게 될 것입니다. 과연 해가는 그 혹독 한가르침을 어떻게 살아낸 사람이었는가를 이제 우리는 달마의 뒤를 이어 선종의 거대한 뿌리가 된 제이조 해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