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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 대학 교수가 60세에 가까워지면서 깨달은 ‘노화’의 사회적 역할 / 2월 28일(토) / 다이아몬드 온라인
사회보험료 부담 증가와 연금 제도를 둘러싼 불공평감이 이유가 되어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 고령자는 과연 사회의 짐일까. 60세에 다다른 대학 교수인 필자는 죽음을 의식하면서 다시 한 번 ‘노화’와 마주했다. 생물학과 인류사의 관점에서 드러난, 늙음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 본 글은 시즈오카 대학 교수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 栄洋)의 『우리는 어떻게 늙는가』(소학관) 중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 『다케토리모노가타리』의 할아버지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옛날 이야기인 ‘카구야 공주’는 원래 헤이안 시대에 기록된 『다케토리모노가타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케토리모노가타리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이야기이다.
다케토리라 불리는 할아버지가 빛나는 대나무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작은 소녀를 발견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길러진 카구야 공주는 결국 달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일본 최고의 이야기라면서도, 얼마나 판타지로 가득하고 웅장한 이야기인가.
그런데, 『다케토리모노가타리』에는 ‘다케토리 노인’이라 불리는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 할아버지는 몇 살 정도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놀랐다.
이런 SF 같은 이야기 속에 등장해 ‘노인’이라고 불릴 정도라서 선인 같은 할아버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에는 50세라고 적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몸이 뒤로 젖혀졌다. 다케토리 노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럼에도 대나무 안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확실히, 대나무 안에는 작은 소녀가 들어갈 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
대나무에는 마디가 있다.
그리고 이 절과 절이 공간을 지탱하고 있다.
대나무는 유연하게 잘 구부러지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대나무는 결절이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 역사 속 위인들은 젊은 나이에 위업을 달성했다
40살 생일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인생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80년이라고 생각하면 이미 절반이 지나버렸다. 남은 인생은 이미 후반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당황한 것이다.
‘초노(初老)’는 40세를 의미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랬다. 이제 나는 확실히 중년이 되었다.
조사해 보니, 일분법사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40대인 것 같다. 나는 이제 아저씨를 지나쳐 할아버지가 되었다.
산을 오른다고 하면, 이미 정상은 지나고 하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동요는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무한히 있다고 생각했는데, 곧 하려고 하는 일도 많이 있는데, 벌써 인생의 후반전이야…….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참 잘 만들어진 것이어서, 41번째 생일이 되니 그런 일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40대를 만끽했다.
그런데, 그렇다.
50번째 생일에, 내 마음은 절망했다.
‘인생 50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실제로 수명이 50년이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인간의 일생은 짧고 허무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 50년’이라는 구절을 좋아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만 48세에 사망했다.
급히 알고 있는 위인의 연표를 찾아보니, 50세가 되면 이미 사망한 사람도 많다. 외모가 나이 든 사람처럼 보이는 오오쿠보 토시미치와 나쓰메 소세키도 50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도 사망 연령을 보면, 나이가 더 어릴 것 같다.
●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도 인생의 목표가 보이게 되었다
30대 전후는 ‘아라사(30대 초반)’, 40대 전후는 ‘아라포(40대 초반)’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30대는 대략 서른, 40대는 대략 서른이다. 이에 반해 50세 전후는 아라피프(50대 초반)라고 부르지만, ‘아라반’이라는 표현도 쓰인다고 한다.
아라반은 ‘아라운드 반세기’의 약자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이미 반세기나 살아버렸다.
그런데 옛날에 유행했던 것들을 지금 젊은 사람들도 새롭게 여기고, 패션 트렌드도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이 들어.
자신의 연표를 뉴스와 함께 적어 보면, 이제는 일본사 자료와도 같다.
이제, 그렇게 오래 살아버린 건가……. 공자는 “오십에 이르면 천명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참 잘 만들어진 것이어서, 51번째 생일이 되니 그런 일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이제 60살이 되려 하고 있다.
후배들이 40살이 되거나 50살이 되었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그때쯤 익숙해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인간도 식물도 전환점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60세가 되면 환갑이다.
70세가 되면 고희(古希), 77세는 희수(喜寿), 80세는 산수(傘寿), 88세는 미수(米寿), 90세는 졸수(卒寿), 99세는 백수(白寿), 100세는 백수(百寿) 등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나이가 계속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식물에도 전환점이 있다.
예를 들어, 대나무에는 마디가 있다. 대나무는 결절이 확실히 살아 있다. 그래서 대나무 재료는 매우 튼튼하다. 그것은 결절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나무는 텅 비어 가볍다. 하지만 결절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단단한 것이다.
끈질기다고 여겨지는 잡초 중에도 줄기에 마디가 있는 것이 있다.
마디가 있는 잡초는 뽑히거나 찢어져도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싹을 틔운다. 절이 다시 성장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식물의 성장은 중요한 전환점이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인생에도 전환점이 있다.
태어난 뒤에는 오시치야, 오쿠이자메, 초절기 등 여러 통과 의례가 있다. 이러한 통과 의례는 모두 축하의 의미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축하하고 있다.
성인식까지 축하하면, 어른들의 통과 의례는 재미가 없다. 어쨌든 ‘불운의 해’라는 경고 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60세가 되어 환갑이라는 축하와 불운의 해가 동시에 찾아온 뒤에는, 고희와 산수 모두 축하할 일만 남는다.
이제는 불운의 해가 없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음, 나이가 들면 아이로 돌아간다고 자주 말하잖아….
● '노화'는 불행이 아니라 인간만의 특권
‘노후’라는 말이 있다.
‘노후’란 무엇일까?
‘노후’라는 말은 신기한 표현이다. 그대로 읽으면 ‘늙은 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 뒤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늙은 뒤에는 이미 죽어 있다.
정년 후라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노후 여부는 회사가 결정하는 일일까?
원래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늙어간다. 어디부터가 노화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젊은 전성기를 지나면 노년을 느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늙는 것을 우려하지만, 늙을 수 있는 생물은 적다.
그렇게 활기차게 울던 매미도 가을이 되면 죽어버린다. 알을 낳으면 이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나이 든 매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 연어도 알을 낳으면 생명이 다한다. 그래서 나이 든 연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포유류는 다른 생물에 비해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 포유류는 새끼를 낳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아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 때문에 포유류는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는 나이가 되면, 수명이 다해간다.
● 인류가 오래 살기 위해서는 노인의 지혜가 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끝난 존재다. 어쨌든 아이들은 자립했고, 육아도 이미 끝났다.
자손을 남기는 것이 생물의 역할이라면, 세대를 이어받은 나는 이미 생물로서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양육이 끝난 뒤에도 아직도 오래 산다.
이것은 왜 그런 걸까.
‘할머니 가설’이라고 불리는 가설이 있다.
인류의 여성은 일정 연령에 이르면 폐경하고 번식을 중단한다. 하지만 양육 경험이 있는 여성이 할머니가 되어 손자를 돌보면 아이의 생존율이 높아진다. 게다가 음식을 모으고 조리하는 기술 등 생활 지혜도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전해진다.
즉, 할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이 인류의 생존에 유익했기 때문에 인류는 수명이 길어지고 진화했다는 것이 ‘할머니 가설’이다.
즉, 인류가 살아가려면 노인의 지혜가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지혜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번식 능력을 잃은 뒤에도 오래 사는 것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할머니 가설’이라고 명명되었다.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다. 그리고 노인의 지혜는 도움이 된다.
이것이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이유이다.
● '노(老)'의 본래 의미는 지식과 경험이 뛰어난 사람
라쿠고에 등장하는 ‘고인쿄상’은 평소에는 느긋하게 살아가지만,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 위급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장옥 주민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은퇴한 노인에게 의지한다.
‘노(老)’라는 한자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상형문자이다.
하지만 ‘노(老)’라는 한자는 결코 체력적으로 열등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약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노(老)’는 ‘지식과 경험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에서는 학교 선생님을 ‘老師’라고 부른다. ‘노사’는 나이 든 선생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선생님이라도 ‘노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본 에도 막부에는 ‘노중’이나 ‘대노’라는 직책이 있었다.
이러한 직책들은 결코 연공서열에 따라 선출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막말의 혼란기 안정 개혁을 추진한 아베 마사히로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노중이 되었다.
즉, ‘노(老)’는 ‘노인처럼 뛰어나다’는 뜻이며, ‘노인처럼 존경받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막부의 노중은 ‘연고’라고도 불렸다. ‘年寄’는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스모에서도 은퇴한 힘씨는 연고가 된다. 노인도 ‘세월이 쌓인 뛰어난 존재’라는 의미이다.
‘노(老)’라는 말, 정말 멋지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끝난 존재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뒤가 있다.
인간으로서 받은 앞으로의 수명을 바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음, 실제로는 젊은 사람들에게 방해받는 경우도 많지만…….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 栄洋)
老人は大切にすべきなのか?大学教授が60歳間近で気づいた、「老い」の社会的役割
老人は大切にすべきなのか?大学教授が60歳間近で気づいた、「老い」の社会的役割 / 2/28(土) / 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社会保険料の負担増や、年金制度をめぐる不公平感を理由に、世代間の対立が進む昨今。高齢者は本当に社会のお荷物なのか。60歳を目前にした大学教授の筆者は、死を意識するなかで改めて「老い」に向き合った。生物学と人類史の視点から見えてきた、老いることの社会的意味とは?※本稿は、静岡大学教授の稲垣栄洋『私たちはどう老いるか』(小学館)の一部を抜粋・編集したものです。
● 『竹取物語』のおじいさんが 自分より年下と知ってのけぞった
昔話の「かぐや姫」は、もともとの話は平安時代に記された『竹取物語』である。竹取物語は現存する日本最古の物語である。
竹取の翁と呼ばれるおじいさんが光り輝く竹を見つけ、その中に小さな女の子を見つける。そして、おじいさんとおばあさんに育てられたかぐや姫は、最後には月に帰ってしまうのである。
日本最古の物語にしては、何とファンタジーに満ちていて壮大な物語だろう。
ところで、竹取物語には、「竹取の翁」と呼ばれるおじいさんが登場する。
このおじいさんは、何歳くらいなのだろうと興味本位で調べてみて驚いた。
こんなSFのような物語に登場して、「翁」と呼ばれているくらいだから、仙人のようなおじいさんかと思っていたら、物語には50歳と書かれているという。この話を聞いたときはのけぞった。竹取の翁は、私より年下だったのだ。
それにしても、竹の中から女の子が生まれるというのは、本当に不思議である。
確かに、竹の中には小さな女の子が入るくらいの空洞がある。
竹には節目がある。
そして、この節と節とが空間を支えているのである。
竹はしなやかによく曲がって、簡単に折れることはない。
竹は節目があるから、強いのである。
● 歴史上の偉人たちは 若くして偉業を達成していた
40歳の誕生日に、私の心は動揺した。
人生は永遠に続くものだと思っていたのに、人生を80年と考えれば、もう半分が終わってしまった。残りの人生は、もう後半戦なのだ。そう考えてうろたえたのである。
「初老」というのは、40歳のことだと聞いたことがある。
そうなのだ。もう私はまぎれもなく初老なのだ。
調べてみると、一寸法師に登場するおじいさんは、40代らしい。私はもう、おじさんを通り過ぎて、おじいさんなのだ。
山登りで言えば、もうピークは過ぎて下山に差し掛かっている。
どうしよう。どうすればいいんだ。私の動揺は止まらない。
時間なんて無限にあると思っていたのに、そのうちやろうと思っていることもたくさんあるのに、もう人生の後半戦なのだ……。
しかし、まぁ、人間の心というのは良くできたもので、41歳の誕生日には、そんなことには、もうすっかり慣れてしまって、何とも思わなくなった。
こうして私は40代を謳歌したのだ。
ところが、である。
50歳の誕生日に、私の心は絶望した。
「人生50年」という言葉を聞いたことがある。
実際に、寿命が50年ということではないのだろうが、人の一生は短く儚いということだろう。そういえば、「人間50年」という一節を好んだ織田信長は、満48歳で命を落とした。
あわてて、知っている偉人の年表を調べると、50歳では、もう命を落としている人も多い。見た目は年上にしか思えない大久保利通や夏目漱石も、50歳になる前に死んでいる。あのフランシスコ・ザビエルも享年を見れば、年下ではないか。
● 何も成し遂げていないのに 人生のゴールが見えてしまった
30歳前後は「アラサー」、40歳前後は「アラフォー」と呼ぶのが流行ったことがある。アラサーはアラウンドサーティ、アラフォーはアラウンドフォーティだ。これに対して、50歳前後はアラフィフとなるが、アラ半という言い方もするらしい。
アラ半は「アラウンド半世紀」の略らしい。
何ということだろう。私はもう半世紀も生きてしまったのだ。
そういえば、昔流行したものを今の若い人たちが新しがっているし、何となくファッションの流行もひとまわりしたのを感じる。
自分の年表をニュースと併記して書くと、もはや日本史の資料のようだ。
もう、そんなに生きてしまったのか……。孔子は「五十にして天命を知る」と言った。
とんでもない話だ。
私は何も成し遂げていないし、何者でもない。人生の終わりが見えてきているのに、まだ何もしていないのだ……。
しかし、まぁ、人間の心というのは良くできたもので、51歳の誕生日には、そんなことには、もうすっかり慣れてしまって、何とも思わなくなった。
そして、なんだかんだで、もう60歳になろうとしている。
後輩たちが40歳になったときに、50歳になったときに、心落ち着かずにいるのを見ると、「そのうち慣れるから……」と言いたくなる。
● 人間も植物も節目があるから 強く生きていける
60歳になれば還暦である。
70歳になれば古希、77歳は喜寿、80歳は傘寿、88歳は米寿、90歳の卒寿、99歳の白寿、100歳の百寿と、人生の節目となる年齢は続く。
そのたびに、私たちは、人生について悩み、考えて、そして忘れてしまうのだろう。
人はこうして年齢を重ねていくのだ。
植物にも節目がある。
たとえば、竹には節目がある。竹は節目がしっかりしている。だから、竹材はとても丈夫である。それは節があるからなのだ。
本当は、竹は空っぽで軽い。しかし、節があるから、こんなにもしっかりしているのだ。
しつこいと思われている雑草の中にも、茎に節目のあるものがある。
節のある雑草は、抜かれたり、ちぎれたりしても、節から根を出し、新しい芽を出してくる。節が、再び成長を始める起点となっているのである。
植物の成長は、節目があるから強いのだ。
人生にも節目がある。
生まれてからはお七夜、お食い初め、初節句などの通過儀礼がある。これらの通過儀礼はすべてお祝いだ。元気に過ごしていることをお祝いしているのである。
成人式まで祝ってしまうと、大人の通過儀礼は面白くない。何しろ「厄年」という注意喚起の儀礼だけなのだ。
そして、60歳になって還暦というお祝いと厄年が両方来た後は、古希も傘寿もすべてお祝いしかない。
もう厄年はない。
子どもたちと同じように、元気で過ごせていれば、それで良いということなのだ。
まぁ、年を取ると子どもに返るって、よく言うよね……。
● 「老い」は不幸ではなく 人間だけの特権
「老後」という言葉がある。
「老後」とは何だろうか?
「老後」とは不思議な言葉である。そのまま読めば「老いた後」という意味である。
しかし、老いた後とはどういう意味だろう。老いた後は、もう死んでいる。
定年後という意味だろうか?そうだとすれば、老後かどうかは会社が決めることだろうか?
そもそも、人は生まれた瞬間から、老いていく。どこから先が老いということもない。
もっとも若い盛りのピークを過ぎれば老いを感じるかもしれない。ただし、私たちは老いることを憂えているが、老いることのできる生物は少ない。
あんなに元気よく鳴いていたセミも、秋になれば死んでしまう。卵を産めば、もう用はないのだ。そのため、年老いたセミは存在しない。
魚のサケも、卵を産み落とすと命が尽きてしまう。だから、年老いたサケは存在しない。
私たち哺乳類の仲間は、他の生き物に比べると長生きをするものが多い。私たち哺乳類は、子どもを産み落としてそれで終わりではない。子育てという大切な役割がある。そのため、哺乳類は、寿命が長くなっているのだ。
しかし、それでも子どもができなくなるような年齢になれば、寿命が尽きていく。
● 人類が長生きするには 老人の知恵が必要だった
よくよく考えると、私は生物としては終わっている。何しろ、子どもたちは自立して、もう子育ても終わっている。
子孫を残すことが生物の役割だとすれば、世代を引き継いだ私は生物としては、もう終わっているのだ。
しかし、人間は子育てが終わってからも、まだまだ長く生きる。
これは、どうしてなのだろう。
「おばあさん仮説」と呼ばれる仮説がある。
人類の女性はある年齢に達すると閉経して繁殖を行わなくなる。しかし、子育ての経験がある女性がおばあさんとなって、孫の面倒を見ることで、子どもの生存率は高まる。さらには、食べ物を集めたり、調理する技術などの暮らしの知恵も、親から子へと受け継がれていく。
つまり、おばあさんがいることは、人類の生き残りにとって、有益だったため、人類は寿命が長く進化したというのが、「おばあさん仮説」である。
つまりは、人類の生存には、年寄りの知恵が有効だということなのだ。
もちろん、おじいさんの知恵が必要ないということはないが、繁殖能力を失った後も長生きすることをわかりやすく示すという意味で、「おばあさん仮説」と名付けられている。
年老いた者には、知恵がある。そして、老人の知恵は役に立つ。
これが、人間の寿命が長くなった理由である。
● 「老」の本来の意味は 知識や経験に優れた人
落語に登場する「ご隠居さん」は、ふだんはのんびり暮らしているが、知識や経験が豊かで、いざというときは役に立つ。だから、長屋の住人は、困り事があると、ご隠居さんを頼りにするのだ。
「老」という漢字は、老人が杖をついている姿に由来する象形文字である。
しかし、「老」という漢字は、けっして体力的に劣っていたり、保護されるべき弱い存在であることという意味合いはない。「老」というのは、「知識や経験に優れた人」という意味である。
たとえば、中国語では、学校の先生は「老師」と言う。老師は年老いた先生という意味合いではない。若い先生であっても「老師」である。
そういえば、日本の江戸幕府には「老中」や「大老」という役職があった。
これらの役職は、けっして、年功序列の老人がなったわけではない。たとえば、幕末の動乱期に安政の改革を行なった阿部正弘は、25歳の若さで老中となった。
つまり、「老」は「老人のように優れている」という意味であり、「老人のように尊敬される存在」という意味なのだ。
幕府の老中は、「年寄」ともいった。年寄は「年を重ねる」という意味がある。そういえば、相撲でも引退した力士は、年寄となる。年寄も「年を重ねた優れた存在」という意味なのだ。
「老」って、なんてカッコいいんだろう。
私は生物としては、終わっている。
しかし、人間には、その続きがある。
人間としていただいたこれからの寿命こそを「人間」として生きるのだ。
まぁ、実際には若い人に邪魔にされることも多いけれども……。
稲垣栄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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