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 가문의 역사]
구찌 가문의 역사는 화려한 명품의 이면에 탐욕과 배신, 그리고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한 한 편의 비극적인 드라마와 같다.
창업주 구찌오 구찌는 영국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상류층의 고급 가죽 가방을 접했다. 그는 귀족들의 취향을 간파하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192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죽 제품 매장을 열었다. 초기에는 승마용품을 주로 취급했으나, 점차 핸드백과 신발로 영역을 넓히며 이탈리아 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구찌오가 사망한 후, 장남 알도 구찌가 경영권을 이어받아 브랜드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렸다. 그는 뉴욕 5번가에 매장을 내며 이탈리아 브랜드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우리가 잘 아는 'GG 로고'와 '캔버스 패턴'도 이 시기에 알도의 주도로 탄생했다. 구찌는 전 세계 셀럽들이 사랑하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가문 내 분열은 알도의 아들 파올로 구찌로부터 시작되었다. 파올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으나 아버지 알도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파올로는 아버지 알도의 수백만 달러 규모 탈세 혐의를 당국에 밀고했다. 결국 80세가 넘은 알도는 아들의 고발로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극을 맞았다.
알도의 조카 마우리치오 구찌는 파올로와 손을 잡고 삼촌 알도를 경영권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우리치오는 경영 능력이 형편없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로 회사를 파산 위기까지 몰아넣었다. 결국 그는 가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지분을 중동 자본에 모두 매각했다. 이로써 구찌 가문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마우리치오의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에 의해 벌어졌다. 그녀는 마우리치오와 이혼한 후, 그가 재혼을 준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연금을 위협하자 분노했다. 1995년, 파트리치아는 청부 살인업자를 고용하여 출근하던 마우리치오를 총격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블랙 위도우'라는 별명을 얻으며 29년형을 선고받았다.
역설적이게도 가문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구찌는 전문 경영인 체제 아래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90년대 톰 포드라는 천재 디자이너가 무너져가던 구찌를 다시 일으켰고, 이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거치며 젊고 힙한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현재 구찌는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는 별개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하우스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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