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 원으로 활개를 치리라
장인수
내 통장에
이천만 원 있으니
다 갚으리라
모든 빚을 청산하리라
수중 모래섬인 풀등이 펼쳐진 무인도를 사리라
배도 한 척 사고
수천 마리 갈매기를 호위무사로 거닐며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덮치는
해적질을 하리라
내 통장에
이천만 원 있으니
빚을 다 갚고
지상낙원을 사리라
마다가스카르 바오바나무 섬을 사리라
뿌리가 하늘로 자라고
잎새와 가지는 땅밑으로 자라는 물구나무선 나무
거꾸로 선 풍경 속에서 활개 치며 살리라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2024. 문학세계사
양푼 해장라면
장인수
콩나물 라면을 기똥차게 끓여주던 양은냄비
한밤중에 일어나
출출하니
행복추구권을 책임지던 양은냄비
십 년 동안 끄떡없이
자취를 잘 하더니
이젠 찌그러지고, 손잡이가 헐거워지고
곰보처럼 잿빛으로 탈색이 되었다
갑자기 암전된 반지하 월세방에서도
삶의 저인망을 끌어당기며
어둠 속에서 해장라면을 맛있게 끓여주던 녀석
끓어 넘치던 생의 무늬여
혼술을 퍼마신 날
저 쭈굴쭈굴 찌그러진 양푼의 투덜거림
한껏 끓어넘치는 양푼의 뜨거운 울음이여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2024. 문학세계사
장인수 시인
1968년 충북 진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3년 ‘시인세계’ 『돼지머』리 외 4편으로 등단한 후 시집 『유리창』『온순한 뿔』『교실, 소리질러!』『적멸에 앉다』『천방지축 똥꼬바랄』 산문집 『창의적 질문법』『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검음이』『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