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金龍澤)-낮달
새벽바람이
맨발을 스치고 지납니다.
바람이 어디를 지나왔는지.
눈을 감아도 따라들어오지 않는 메마른 얼굴이 있습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일이 문득문득 하루종일입니다.
산그늘 밖으로 손을 내놓은 나무들,
닭들이 뒤뚱거리며 산그늘을 따라 배추밭까지 나갔습니다.
늙은 부부가 텃논에서 마른 짚을 묶어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 기댄 먹감나무
먹감들이 하얀 서리꽃을 덮고 알맞게 먹물이 드는 동안
마당에서는 이미 마른 감잎들이 끌려다닙니다.
강을 건넌 햇살은 무덤 잔디 위에서 침묵으로 하루가 편안
하였습니다.
거짓 없이 시드는 아름다운 저녁 햇살,
난생처음 그립다며 내게 울던 당신
나는 아직도 그대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홑이불 같은 낮달을 끌어다가
꼼지락거리는
내 맨발을 덮습니다.
*김용택[金龍澤, 1948. 9. 28.~.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장산리) 출생] 시인은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평생 자신이 태어난 부근의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부박한 모더니즘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을 삶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직관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하여 김소월,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인은 순창농고 출신이었는데, 어려서 소설책과 만화책을 즐겨 읽은 것이 정서적으로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이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고, 시인의 시집으로는 “섬진강” “꽃산 가는 길” “맑은 날”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래서 당신” “누이야 날이 저문다” “나무” “수양버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오래된 마을” “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등이 있으며 “콩, 너는 죽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등의 동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시인은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위 시는 김용택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시선 360)”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