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월산 신도사/
6.25전쟁을 예언한 구월산 신도사와 38도선의 미래/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민초들과 함께 미래의 격변을 예언한 분들중에 신도사라는 분을 소개해 주고자한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우리나라는 약 35년간 길었던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무렵 북한의 영산 중 하나인 황해도 구월 산에는 신도사라는 사람이 유명했는데 구월산은 충청도의 계룡산처럼 도사들이 많이 살았던 산이다.
당시는 해방이 되고 좌우 이념이 충돌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북쪽에서는 김일성이 세력을 잡으면서 부자들을 잡도리 할 것이라는 소문도 흉흉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했고 이북에 살고 있던 사람들 특히 개성에 살며 전답이 50 마지기 이상되는 중농 계층들이 신도사를 많이 찾아갔다고 한다.
한 마지기가 200평이며 50 마지기면 만평 정도 되었는데 그 당시 이 정도면 상당한 부자였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절실한 마음을 갖고 찾아온 개성 부자들에게 신도사는 간지를 건네주었는데 그 사람의 사주팔자 전체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간지라고 부른다.
신도사는 간지의 끄트머리 부분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문장을 적어내 놓았다.
"이도 남하 "
신도사는 그를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남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었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남쪽으로 갈까요?"
" 아니다.
집과 전답을 다 팔고 가산을 정리해서 식솔들과 함께 모두 내려가라"
"남쪽에 어느 지역으로 가란 말입니까?"
"한강 아래로 가면 한번은 죽었다 살아날 것이고 낙동강 아래로 가면 안전하다"
"그러면 언제쯤 돌아올 수 있습니까?"
"손자 때까지는 돌아올 수 없고 증손자 때가 되면 조상 위패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도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조상 대대로 이어왔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얼마 후 6.25 전쟁이 일어났다.
신도사 말을 듣고도 이사를 가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6.25 전쟁으로 인해 사망했다.
한강 근처로 이사를 갔던 사람들은 한강 아래까지 인민군이 점령해 거에 죽을 뻔했고 다시 한번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낙동강 밑으로는 인민군이 점령하지 못했는데 신도사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낙동강 이남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신도사 말처럼 우리나라는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을 맞이하여 온갖 희망에 부풀었던 그때는 6.25 와 같은 참혹한 민족상잔의 비극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 구월산 신도사가 써주었던 누렇게 변색된 간명지는 지금도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다.
과거 6.25나 임진왜란 때 미리 예언하고 신도사나 최풍헌( 조용헌 살롱] 도가(道家)의 최풍헌(崔風憲)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끝냈으리라."
당대 제도권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지만, 민초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평가에 의하면 송구봉은 강단(講壇)이 아닌 강호유학(江湖儒學)의 최고봉으로 여겨져 왔다.
당대의 석학 이율곡과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전해지는 송구봉은 여러 가지 신비한 야사가 많다.
하지만 능력에도 불구하고 출신상의 비천한 신분이 문제가 되어 당시 역사무대에서 활동이 봉쇄되었던 인물이다.
진묵은 임진왜란 때 서산(西山)대사와는 달리 서방산(西方山)에 은둔하면서 끝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고승이다.
하지만 민초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신이(神異)한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재야에서는 고려 말의 나옹(懶翁)대사와 함께 가장 도력이 높았던 고승으로 진묵을 꼽는다.
3일이면 임진왜란을 끝냈을 것이라고 보는 최풍헌은 도가의 인물이다.
여기서 '풍헌(風憲)'은 이름이 아니다.
직책을 가리킨다.
조선조에 행정조직의 가장 말단에 있었던 직책이 풍헌이다.
요즘으로 치면 시골 동네 '이장' 정도 되는 자리이다.
강증산이 최고의 인물로 꼽은 최풍헌은 가장 보잘것없고 역사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오직 민중들의 구전에만 내려온다. 야사에 의하면 평양으로 피란 간 선조에게 나아가 '병권을 3일만 허락해 주면 왜병을 물리치겠다'고 요청했지만, 선조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증산이 유독 강호의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임금인 선조를 비롯하여 주변을 싸고 있던 조정의 관료들이 너무 무능하지 않았느냐는 대다수 민초들의 비판과 경멸을 반영한 것이다.
같은 분들의 역사속 가르침을 잘 살펴서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옮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