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크리스마스 이브>
"음...이정도면 될라나?"
눈앞에 쌓인 엄청난 양의 식재료들. 사비를 엄청나게 들였다...스테이크부터 파스타재료까지...모든 재료를 휩쓸어왔더니 아침부터 죽는줄 알았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이 모든 재료를 조화롭게 사용하느냐다. 버리지만 않으면 성공인데...하하.
"와 조폭. 이거 다 혼자 쳐먹게?"
"죽어."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선 방에서 나오는 강수혁. 부스스한 머리를 보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사탕 무셨고만. 으휴. 한심한놈. 저런 놈을 데체 누가 델꼬가꼬. 제발 결혼식 때 내가 이 결혼 반대요!! 할 정도만 아닌 여자를 델꼬오렴.
"근데 진짜 뭐냐? 설마 나 해주려고?"
저런 걸 흔히들 헛된 희망이라고들 하지?
"진짜 이침부터 돌았나 이게...현이 해줄거야."
"...현이형 죽일 일 있어? 너 요리 제대로 해본적은 있냐?"
"...요리는 눈으로 배우는거야 눈으로!!"
"현이형도 참 불쌍하다. 어떡해 너같은걸..."
저게 요즘 많이 기어오르지? 손을 봐줘야 할 때가 온것인가..
"맞아 죽어!!"
"야 이 미친!!"
프스타 소스가 들은 병을 높게 치켜올리자 드디어 강수혁 저자식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후...이게 사람 열불나게 하고있어!! 나도 안다고!! 한번도 제대로 요리해본적 없는거!
그래도 뭐...대충 간 보면서 만들면 괜찮지 않겠어? ...아닌가? 아님 말고...이상하면 때려치지 뭐!
"우선 시험삼아 한번..."
조금만. 조오금만 해봐야지. 스테이크도 귀퉁이만 살짝 잘라보고 면도 조금만 삶아보고 아 샌드위치할거랑...
칼질부터가 엉망이다. 오 마이 갓...그...그냥 밥은 레스토랑이나 가서 먹을까...지금 가면 환불 가능할텐데...이렇게 빨리 포기해야 하다니...
그래 내 인생이 이렇지 뭐...나중에 제대로 어필 해야지!
그래! 내가 제일 자신있는 샌드위치만 해보고! 나중에...내 요리실력이 신의 경지에 다다랐을때 그때 맛있는거 실컷 만들어 줄게 현아...미안하다. 요리는 쥐뿔도 못하는 여자친구여서.
"햄을...음...이정도 두께면 되나?"
혼신의 힘을 기울여 칼질을 해보지만 사선으로만 잘라지고 두께도 제각각. 옆에서 계속 쫑알대는 수혁이녀석은 이제 핀잔하기도 지쳤는지 tv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계란은 삶아야 되나? 몇분? 그래 이럴땐 인터넷을! 지금은 스마트한 시대지 않는가! 검색을 해보자 대충 15분 인것 같았다. 계란을 넣은 냄비에 물을 적당히 붓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시간을 쟀다.
흰자랑 노른자랑 분리해서 마요네즈에 섞음 되겠지? 오이도 절여놓고 치즈도 준비해놓고! 뭔가 햄 다시 썰어야 될 것 같은데...어쩌지?
"너 이거 제대로 순 있냐?"
"당연...! 히 아니지..."
"으휴. 불쌍하다. 줘봐."
내가 쥔 칼을 뺐더니 이내 능숙하게 칼질을 하는 강수혁. 뭐지 이녀석이 갑자기 새로워 보인다. 뭐지뭐지. 왜 이녀석은 이렇게 잘 하는거지!!
"야 너 누구한테 배웠어!"
"요즘 트랜드는 가정적인 남자지. 이런건 기본이라고. 그리고 이런건 내가 너보다 더 엄마를 닮았걸랑."
거만하게 웃어보이는 녀석이 재수없었지만 지금은 방도가 없었으므로 어색하게 웃으며 꽉 쥔 주먹을 숨겼다. 젠장. 아빠도 요리는 잘하는데 난 뭐지. 출생의 비밀인가...아니지 지금은 그냥 참자 참아.
삶은 계란 껍질을 벳기는데 뜨거워서 혼났다. 여차저차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고 마요네즈와 섞었다. 아 참치도 넣을까? 아니다 이건 내일 해야지.
"야 먹어봐!"
햄과 계란 치즈 오이를 넣은 나의 완벽한 샌드위치를!! 이것도 맛 없다면 난 정말 요리에 손을 떼야했다. 솔직히 맛있는 것들의 조합인데 맛없으면 안되지...
"오! 야 이거 괜찮다?"
와구와구 더럽게도 먹어대는 수혁일 물끄러미 바라보다 드디어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꼭 행복하게 보내야지! 이쁜 여자친구는 못해주겠지만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는 되도록 노력헤볼게.
책상위에 고이 모셔둔 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하며 나도모르게 설렘이 담긴 웃음이 지어졌다.
<크리스마스>
"와우..."
영화관에 온 나와 현이. 역시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연인들이 북적거렸다. 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뚱해 있었다.
아침에 만난 우리는 딱 처음은 좋았다. 현이가 내가 사준 니트를 입고와서 내 기분은 하늘을 찔렀지만 현이는 아닌가 보다.
대뜸 내 옷부터 지적을 하더니 영화관에 와서도 저런상태다. 간만에 멋좀 부려봤더니 저런다. 치마가 짧다는 흔하디 흔한 이유지만 은근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은 이유.
내가 생각해도 살짝 짧긴 했지만...뭐 어떠랴. 무다리인 내 다리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는 커녕 보기도 거북할텐데. 흑.
"가자."
"아 좀! 기분좀 풀어라. 그래도 우리끼리 처음맞는 크리스마슨데...이제 이옷 안입을 테니까 엉?"
"짜증나. 추워 죽겠구만 보는사람도 춥게 그게 뭐냐!"
"뭐야...너 내 다리 누가 볼까봐 그런거 아니였어?"
젠장 나혼자 김칫국 항아리채 원샷 한건가...슬프다 슬프도다! 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개나 주라지.
"미쳤냐 내가. 그 다릴 누가 봐."
비웃으며 내 다릴 흘낏 보는 현이...아 스팀. 또다시 드는 미친듯한 허무감. 뭐야 그럼 나 혼자 북지고 장구치고 리코더까지 분거네?
"야!!!!!"
"농담 농담. 그래 누가 볼까봐 걱정된다. 채가는거 아니냐? 돼지가 걸어다닌..."
"손떼!! 안떼?!!"
내 어깨에 둘러진 남현의 팔을 빼내려 몸부림 치자 드디어 그가 웃으면서 더 강하게 날 감싸안았다. 나쁜놈. 기분다 상하게 해놓고 다시 띄워주고 있어 화도 못내게.
"아 이쁘다 강세현. 오늘이 제일 예쁘다."
"뭐래."
실실 웃으면서 말하나까 뭔가 진짜 같기도 하구...놀리는 것 같기도 하구...에라 모르겠다!
"싫음 말고."
"아 누가 싫대!!"
"애가 이렇게 단순해서야...역시 너 데려갈 놈 나밖에 없지?"
내 머릴 메만지며 묻는 현이의 말에 답도 못하고 그저 그의 어깨에 살짝 머릴 기댄체 걷기만 했다. 제발 날 데려갈 놈이 너였으면 좋겠다.
역시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영화란 영화는 로맨스가 대부분. 그중 우리도 로맨스 코믹을 끊고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자기야 이거 먹어."
"자기두. 아 좋다 자기랑 영화보는거."
"나두."
우웩. 사방이 모자라 팔방에서 들려오는 버터같은 말들. 비위가 안좋아질것만 같았다. 여기서 애교도 없고 팝콘도 뭣도 없이 빈손으로 온건 나와 현이 둘뿐이었다.
우리둘다 영화보면서 뭘 먹는걸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냥 들어왔는데 남들은 아니었다. 서로 먹여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 우리도 뭐 하나 사올걸."
한탄섞인 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는 질투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로 앞 커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부러워?"
"어."
너무 당당하게 어라고 말하는 현이때문에 되려 내가 더 당황해 버렸다. 얘가 사귀면서 투정만 늘어나고 애가 되버렸다. 못 살아요.
"우린 뭐야. 연인같지도 않고."
"그래서 나 싫어?"
"아니, 사랑하는데. 이래서 문제야. 헤어질수가 없어."
날 자기옆으로 끌어당기는 녀석덕분에 난 녀석의 어깨에 기댈수 있었다. 영화엔 관심도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있고싶었다.
적당히 두근거리면서 적당히 행복한. 그런 상황. 난지금 행복했다.
"어이구 우리 현이 질투많아서 어떡해? 너 왜 이렇게 귀여워졌냐?"
"넌 왜 이렇게 기어오르냐?"
오른손으로 그의 오른쪽 뺨을 살짝 잡아 늘렸다. 확실히 이녀석은 매력이 더 늘어나버렸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올만큼?
지루한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됬다. 영화는 식상한 이야길 다뤘지만 꽤 괜찮았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 흔해빠진 기억상실증. 좀 특이한게 있다면 여주만 기억상실증에 걸린게 아니라 그녀의 친구까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거?
역시 마지막은 기억을 되찾으면서 해피엔딩. 중간중간 나오는 여주의 엉뚱함과 남주의 대책없는 행동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좋았다.
"이젠 뭐할까?"
글쎄다. 영화가 끝나고 드디어 그 버터들 틈에서 빠져나왔을 때 우린 그닥 할게 없었다. 그냥 정차없이 돌아다니기만 할뿐. 내 어깰 두른 현이와 현이의 허리를 두른 나. 기대는게 이렇게 편할줄이야. 잠까지 쏟아진다. 아니지 아니야! 정신!
어제 사온 재료를 안 뜯은것에 한해 모두 환불시켰다...그때의 직원의 강렬한 눈빛이란...그래 뭐! 내가 사고 내가 환불한다는데!
그 많은 재료를 사갈땐 비웃더니...흥이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뭐. 아 이게 마트 밀당이란건가. 나도 참 대책없다.
핸드백에 들어가있는 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이거 받으면 좋아할라나? 나 이것때매 돈도 엄청 썼는데...에라 안받아주면 환불하고 맛있는거나 사주지 뭐!
"으으..."
이리저리 걷다보니 밖으로 나오게 됬는데...밖은 왜 이렇게 추운거야아!!! 스타킹 하나로는 부족했다. 칼바람은 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다리가...다리가 얼어붙는 것 같다!!!
춥다 추워. 이빨도 따닥따닥 소리를 내고 죽겠다 아주. 따뜻한거...제발 나에게 따뜻한걸 먹여줘!!
"춥냐?"
"어어..."
입술도 떨려오는게 괜히 쪽팔린다. 뭣하러 짧은걸 입고 나와선...사서 고생인지.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븅. 그러니까 누가 짧은거 입고오래."
"그래 미안타...따닥..."
"손톱 보라색 된거 봐라. 으휴."
허리에 둘려져 있던 내 손을 푸르더니 자신의 주머니속에 넣어버리고 꼭 감싸주는 현이. 반대편 손을 보니 손톰이 이미 보라색으로 질려있었다. 어지간히 춥긴 추웠구나.
아 따끈하다. 서서히 따뜻해진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구!! 난로 앞에서 손을 녹이고 싶다. 다리를 녹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불 피우면 안되나...
"따뜻한 것좀 먹을래?"
"응!!"
그래 그말을 기다렸다!!!
"근처에 카페 있으면 들어가자."
"응응!!"
얼어버린 입고리를 간신히 올리며 종종걸음으로 현이를 따랐다. 크리스마슨데 이게 뭐야 정말. 하...데이트를 해봤어야지. 뭐 그런건 차차 알아가면 되는거니까.
"어! 저기 있다!! 우리 저기 들어가자!"
"그래."
그때 시력도 안좋은 내 눈에 포착된 카페!! 딱걸렸으!! 무조건 핫초코 시켜야지.
"저렇게 행복하면 안되는데..."
아무도 듣지 못했다. 골목에 숨어서 우릴 지켜보던 누군가의 자그맣고 섬뜩한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