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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004m. 일명 재내·와천이라고도 한다. 태백산맥의 설악산(1,708m)과 점봉산(點鳳山, 1,424m)과의 안부(鞍部 :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 있다. 고개의 동쪽은 태백산맥의 동해 사면으로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된다. 따라서, 도로도 이들 양 계곡을 따라 개통되고, 예로부터 인제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서 중부 지방과 양양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중부 지방을 연결하였다.
특히,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서쪽 사면의 도로는 한계리를 거치는 길 외에 한계령에서 남서 방향의 계곡을 따라 가리봉(加里峰, 1,525m)의 남쪽을 돌아 흑석리를 거쳐가는 두 갈래의 길로 분기된다.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그러나 1971년 12월에 도로가 확장되고 양양에서 인제까지 도로가 포장, 정비되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구실뿐 아니라, 설악산국립공원의 관광 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개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장수대가 있고, 고개를 넘어 남대천의 상류 오색천에 이르면 개울가의 암반에서 솟는 오색약수가 있고,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계령은 동해안의 낙산사·의상대를 거쳐 비선대·비룡폭포·신흥사의 외설악을 잇는 관광 도로의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매자나무과의 2년초, 높이 30∼40㎝, 5월에 황색꽃이 핌.)로 유명하다. 또한, 한계령 위에 돌로 쌓은 둘레 6,287척, 높이 4척인 한계고성(寒溪古城)터가 있는데 지금은 그 문자리만 남아 있다.
이 지역은 몽고침입 때 조휘(趙暉)의 모반으로 원나라에 투속되었다가 공민왕 때 탈환된 곳으로서, ‘至正十八年’(1358)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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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계령 / 시 : 정덕수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양희은 >>>http://durl.me/ap3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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