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장과 기도의 단계 (요일2:14)
당신의 기도는 당신의 신앙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한국의 많은 성도들은 과부의 기도를 그들 기도의 모델로 삼고 있어요. 이유는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떼쓰는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한번해서 안되면 두번하고 아니면 세 번하고, 열흘해서 안되면 40일하고 기도원에 가면 소나무를 뽑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막무간 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과부의 기도가 나옵니다. ‘어떤 힘없는 과부가 있었는데 억울한 일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소연할 데가 없어가지고 불리한 재판관에게 내 원한을 풀어 달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관은 힘없는 과부를 무시했고 그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 과부가 너무너무 강청 하니까 견디다 못해서 이 재판관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거죠. ’내가 저 과부 얘기 안 들어줬다가는 내가 귀찮아 죽겠다‘ 그래서 들어줬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가 기도에 대한 좋은 모델처럼 생각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은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도하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는건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겠느냐 그런말이죠 그러니까 기도해라 끈질기게 해라 이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과부의 기도는 기도의 좋은 모델은 아니예요. 어떤 면에서 모델이 아닌가하면 첫째로, 이 과부는 재판관을 알지 못하는 사이입니다. 두 번째 이 재판관은 좋은 사람이 아니구요. 세 번째 이 과부는 재판관에게 하소연할 권리가 없고 하소연할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런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아버지이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우리가 기도할 때 귀담아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차원에서 과부의 기도를 기도의 모델로 삼으면 그 사람의 기도개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본문에는 사람을 사람의 성장 단계가 세 가지로 언급합니다. 본문 14절“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 때, 청년시기, 아로 성장한 단계입니다. 영적인 성장도 이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그 사람의 기도도 이러한 세 단계를 거치게 되지요
1. 기도의 첫 단계는 아이의 단계입니다.
이 아이의 기도의 특징은 뭐냐면 기도가 열리기 시작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믿고 고백하면서 부터 기도가 열리기 시작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아이의 특징을 뭐라고 그랬냐면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버지를 알면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면서 진정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을 때 이전에는 그 진정한 기도도 안되고 알지 못하는 어떤 신에게 소원 아뢰는 기도로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이냐 하면은 달라는 거죠. 눈에 보이는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보이는 대로 다 요청하죠. 우리의 기도의 초보는 자기의 필요만 구합니다. 아버지인 하나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래서 이 아이의 시절은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만큼 기도의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을 배워가는 시기입니다.
2. 기도의 두번째 단계는 청년기입니다.
14절에 하번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신앙에 성장하면서 기도가 강해지고 말씀으로 악과 싸워 승리하는 단계가 청년의 기도입니다. 신앙이 성장할 때 항상 영적인 싸움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유혹과 시험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 이것을 어떻게 이기냐 기도로 이기는 겁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먼저 있고 기도는 그걸 붙잡고 기도합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말씀과 상관없이 내가 생때를 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내가 너와 함께 세상 끝 날까지 있을거다’ 하나님 약속하셨어요. 이제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함께 끝 날까지 함께 계신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외롭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쓰러질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나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소서’ 그럴 때 그 말씀이 응답되고 내가 붙들 근거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가 성장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나가는거죠 .
신약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기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약속을 했어요. 떠나지 않고 기다리면 성령을 보내 주리라 그랬어요. 우리의 기도도 언제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믿고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상관없는 배치되는 기도를 하면서 뜨겁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과부의 기도를 전부로 생각하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기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기도의 단계는 아비의 단계입니다.
2:14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이건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는 말이에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는 것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근원을 바라본다는 거예요. 나타난 사건의 현실만 보지않고 그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숨은 의도와 그 뜻을 찾고 믿고 그것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가’라고 불평할 수 있지만 아비들은 이 속에 하나님의 숨은 계획이 있고 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합력해서 선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깊고 원대한 뜻을 찾는다는 거이지요. 이게 아비의 기도인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출애굽기 33장 보면 모세의 기도가 나와하는 유명한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모세가 세 가지를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첫째는 지금 ‘필요한 것을 공급해달라’는 거예요. 지도자로서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는 거예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와 함께 이 백성을 인도해 나갈 지도자를 좀 보내달라 필요한 것을 구하는 모세의 기도가 있어요. 그 다음에는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과 그 마음을 알게 해 달라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해 달라고 우리를 이끌어주시라고 인도해 달라고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요. 마지막으로는 ‘주의 영광을 보여주소서. 합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놀라운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떤 일을 어떻게 되게 해 달라는게 아니고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임재 앞으로 내가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실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기도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데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굉장히 큰 기도 제목이지만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내가 딱 서게되면 문제 자체가 없어져버려요. ‘내가 지금 병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낫는 것은 큰 기적이죠. 그러나 이 고난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의도를 내가 확실히 깨닫고 천국 문이 확 열려 버리고 주의임재 앞으로가면 그거 자체가 문제가 되지않는다는 거예요.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를 바랄뿐이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깊은 수준의 기도 그게 바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나오는 것, 이것이 아비의 기도입니다.
정리하면, 첫째 단계의 기도는 자기의 필요를 위해 기도인데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라고 이런 기도는 자녀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단순히 필요한 것만 구하는 단계입니다. 사실 이 기도는 우리가 건강의 문제가 있을 때, 재정의 문제가 있을 때, 복잡하게 얽힌 삶의 문제들을 우리 힘으로 다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 하늘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우리는 자녀로서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영역이 이것으로만 끝나면 안 되는 거죠. 기도를 내가 필요한 현재적으로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그것 어린아이의 단계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성장할수록 더 깊은 것을 구하게 되고 그리고 구하면서도 결과를 주님께 맡겨버려요. ‘하나님, 이유가 무엇이죠? 왜 이런 고통이 온 것이죠. 알기를 원해요 .가르쳐 주세요. 그 길 가기를 원합니다.’ 악의 공격이라면 물리치고 죄 때문이라면 회개하고 그래서 문제해결을 보기 원하지요 .그 아비의 마음과 믿음이 되고 기도가 되면 ‘이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텐데 낳지 않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된다면 그렇게 하소서!’ 이렇게 되는거죠. 철이 날수록 하나님과의 기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여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는 무지무지한 부담이지만,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기도라고 생각하면 기도는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결론,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불러주시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을 구하는 아이의 기도도 있고, 더 나가서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묻고 악과 싸우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청년의 기도도 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아비의 기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