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 안하고 고른 영화다.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홍콩배우들 그다지 깊이 있는 연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백지 정도의 귀엽고 발랄한 여배우 우리나라에도 넘치는
데 결국 내러티브가 좋았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애인에 대한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들
은 지니(장백지)는 함께 파티에 참석한 알란(지니의 여자친
구의 애인)과 한 택시에 타게 된다.
알란이 지켜보는 앞에서 앤에게 결별을 선언한 지니 알란과
어찌어찌 첫날밤을 보낸다.
일하다가 새벽에도 지니를 보러 뛰어오는 알란 둘은 뜨거운
사랑은 나눈다.
고층빌딩의 인텔리 사원인 알란(진혁신)은 바빠지고 지니
의 조바심이 집착으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너무 자주 울리는 핸드폰에 지니의 집앞에서 다시 발길을
돌리는 알란.....
말다툼 끝에 지니가 결별을 선언하고
실연의 괴로움에 몸무림 치는 지니-친구를 시켜 알란에게
전화해서 스피커 폰으로 목소리를 듣는다.이 장면에서 친구
가 지니에게 말한다-"이제 목소리 듣었으니 됐지?"
남녀의 연애담을 아기자기한 열두개의 챕터로 나누어 담고
남녀관계 자체를 논하는, 거리를 유지한 독특한 어조로 인
해 흔한 멜로영화와 구별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여자여, 그 자존심 오직 얼굴에 있구나'
등 열두장 앞머리에 붙은 논평조의 제목들이 이 영화가 말
하고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얼핏 촌스러운 듯한
이런 이야기 방식은 영화에 리듬을 선사하는 매우 요긴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또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밝음과 어두움의 교차는 항상적이
지 못하고 늘 기쁨과 아쉬움을 오가는 '연애'라는 현상에
대한 영화적 표현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활를 포기하고 상대에 헌신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
이라 여기는 지니는 여자 일반이 빠지기 쉬운 사랑의 함정
을 말하고있는 듯하고 그것을 구속으로 느끼며 첫감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알란은 일과 사랑을 다 같이 추구하는 남
성 일반을 말하고 있는 거 아닐까 생각된다.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예외는 수없이 많겠지만,
아직도 많은 연인들이 '자기 왜 예전 같지 않지?-뭐가 난
똑같은데 왜 그래?-뭐 이런 걸로 토닥거리지 않을까?
확인해도 확인해도 확인사살까지 한다 한들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에 힘들어 하고 -그런 상대를 보며 감정적 부담
을 갖는 설정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새로움은 수많은 로맨틱 코메디 멜로처럼 결국은 서로 포옹
하는 앤딩(주로 짙고 긴 키스로 끝나죠)이 아닌 지니가 '제
일야'라는 제목을 붙인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남자들 만
난다는 거에 있다.
사랑 역시 열두달의 순환처럼 돌고 도는 것임을 경쾌하게
긍정한다.
로미와 줄리엣이 부부가 되어 오래 같이 살았다면 원수가
되지 말란 법이 없듯이 사랑은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명제가
확인되는 엔딩이다.
그래 그 사람하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길 잘했어.
뭐 이런 긍정을 하면서도 왠지 허전함은 남는다.
이 허전함의 정체는 그래도 역시 사랑에 거는 낭만적 기대
일까?오래된 연인이 말했다-'새로운 그녀가 너보다 외모
지성 성격 다 너무 못해 '그런데?-'어쨌든 새거잖아'
이게 남자의 사랑에 대한 멘탈리티를 다 보여준다고 하고싶
진 않다. 누군가의 반론을 기대하며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