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살구 이야기
1960년도 이야기로 내가 살던 뒷집은 기와집으로 바깥 마당에는 살구나무,대추나무가 두 그루씩 있었다.현재 중산형이 살고있는 집으로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나랑 옆집 친구는 비바람 불면 돌 팔매질을 하며 이 살구를 따먹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곤 했는데 이 집이 바로 내 초등시절 사랑방에서 서당을 여신 중산형의 아버님댁이었다.그 당시 중산형의 아버님은 우리를 회초리로 매질 하시면서 천자문부터 소학,대학,사서삼경을 가르쳐 주신 훈장이셨다.
무릎을 꿇고 하늘 천 따지 하며 무조건 외우던 시절 그때 나는 아주 몸이 약했나 보다. 단지 눈만 초롱초롱 빛났다고 어른들이 이야기 하곤 했다. 아마도 매일 오줌을 싸서 머리에 키를 이고는 동네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다닌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왜 그리도 오줌을 쌌는지 그때 나에게 소금을 퍼주신 엄니들은 이제 거의 아니 계신다. 6살 때인가 홍역을 아주 심하게 앓아서 사탕과 과자로 生과 死를 오가는 나를 살리셨다고 한다. 그때 아마도 이빨이 다 망가지는 시초이었는지 아직도 이빨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내가 하도 심하게 앓아서 엄니는 나를 위해 푸닥거리(굿판)도 하시고 용한 점쟁이와 스님에게도 다니면서 내生을 점치곤 하셨다 한다.나는 어렸을 때 아주 병약하게 자랐다.학교도 8살에 갔으니 동갑들 보다 1~2년이 늦다.그러면서 나는 외톨박이로 성장하며 동네 친구들과도 학년이 맞지 않아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 책과 벗하며 지낸 것 같다.오직 만화책과 셋째형이 휴가때 가져오는 외제 노트와 연필, 색연필(형은 미군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로 아무데나 그려대곤 한것 같다.그렇게 저학년을 지내고는 4학년때 부터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반장과 부회장을 하며 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리고는 서울로 중학을 가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내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아 읍내의 중학으로 진학한다.중학 때에는 아주 명랑한 개구장이로 선생님으로 부터 꾸중도 무척 많이 들었다.특히 지난번 tv는 사랑을 실고에 출연하신 남정희 은사가 1학년 3반 담임 이셨는데 난 선생님한테 빰도 많이 맞은 제자로 기억속에 남아 있다.그후 십수년지나 충주시내에서 만났는데 어찌나 반가 웠던지...
그때 공부한 한문 실력으로 나는 한문을 가르치는 학생교사로 또한 국민교육헌장을 최초로 암기한 학생으로 중학교 역사에 남아 있다. 3학년 수학여행때에는 여학생으로 부터 편지가 학교로 오고 학예부장으로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무기여잘있거라>로 독후감을 써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는 왜 그리도 겁이 없었는지 어릴적 이야기를 넘 많이 하는군요.
그 당시 이 맘때는 장마로 접어 들고 모내기가 한창이라 동네가 텅비어서 나와 옆집 친구는 동네 살구나무를 마구 흔들어 대서 떨어진 살구들을 잔뜩 잠뱅이에다 묶어서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 항아리에다 감춰 두고는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6월을 개구장이 들은 동네 모든 살구나무를 흔들어 대어 온통 동네마당을 살구로 만들어 놓으면서 시치미 뚝 떼고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노랑 살구를 나눠 주곤했는데 그때 그 살구나무는 지금 하나도 없다. 참으로 아쉽다. 그때 그 살구나무는 지금은 왜(?)한나무도 없는 것인지...오늘 살구를 주우며 어릴적 시절이 떠올라 추억을 더듬어 본다.(20090614)
2.자전거 이야기
[기억속 싸리문]
기억속 우리집 싸리문은
씨앗들의 텃밭 긴 한숨이 깔려있는
신작로 이슬이 감도는 어머니 가슴이다
노을이 등성이에 너울대던 어느 날 뒷곁에
강아지는 나를 밀어냈다 강산은 몇 번의 색채를
바꾸어 냈고 거머쥔 세월은 희끗한 머리만 남겼다
손짓만이 강으로 산으로 활보를 멈추지 않는다
뒷곁에 내려놓은 내 어릴 적 고향
저녁연기 따라 노을 속에 타고 있다
긴 신작로 휘어든 내 기억들이...
1966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감곡읍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의 멘토르는 황토길 에 서있는 미루나무 이었습니다. 그때 집에서 감곡 읍내까지 십 오리를 걷는다는 것은 내 부모님도, 내형도, 내 누이도 다 아 그렇게 걸어 다닐 때입니다. 나도 입학하면서 일 학기를 걸어 다녔지요.새벽밥을 지어 주시는 엄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는 달랑거리는 책가방을 들거나 둘러메고는 황토길 먼지 나는 신작로길 이 황토길에서 사열 받듯 만나는 미루나무들,이른 여름인 6월부터 이 나무에서는 맴~~맴 하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개구쟁이들은 이 나무를 오르기 시작 했지요.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 매미들과 놀다보면 여름방학이 오는데 나는 자전거 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아마도 2~3일인가 단식투쟁한 끝에 내 형수가 "도련님" 하고 부른다.얼릉 형님 장에 가시는 우마차에 타란다.그리하여 감곡 파출소 삼거리에 있는 오성자전거포에 다 다르는데 그때 제일 비싼 자전거(내 기억엔 체인을 감싼)를 사주시는데 내 마음은 그때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리하여 2학기부터는 자전거로 통학을 하게 되며 여름방학 야밤에 상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누이들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리켜주게 된다. 1~2년 선후배 중 유일하게 자전거로 통학한 여학생이 우리 동네에 2명 있었다. 그리고 통학 하는 아침에 안산에서 뒤 꽁무니에 달고 다니던 여자 후배들과 동창들은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특히 2년 후배들 중에 귀숙이와 용재가 보구 싶다.[20090615]
[약력]
이름: 한신섭
필명: 길손백하(白霞)
생년월일:1954년 5월생
출생지: 충북 음성 감곡 개미실
현직업: C&K 미래연구소 소장
현주소: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692 주공아파트 703동 506호
전화: 010-5534-2839 / 070-8113-2733
저서:[포토에세이]개미실에서 히말라야까지의 그안 이야기준비중
*5년내에 향리로 귀향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