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간다. 山幕에서는 8월 15일이 지나자 가을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전에는 바람이 전혀 없었고 습도가 높아 지독한 폭염에 시달려야 하였는데 하루 사이에 바람이 불고 아침과 저녁 기온에 가을이 묻어났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기온이 어제와 달랐다. 어제는 열풍기에서 쏟아지는 극렬한 열기가 느껴졌었는데 오늘은 상쾌한 바람이 창너머로 밀어닥쳤다. 남향으로 열린 통유리창 앞에 서서 숲을 바라보자 나뭇잎이 제법 바람의 영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작업을 위하여 밖으로 나와 데크 위 의자에 앉아 양말을 신고 작업화를 신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12시까지 제법 작업 능률이 올랐다. 한낮의 기온이 상승하는 것을 느껴 작업을 중단하고 실내로 들어와 점심을 챙긴 후 4시까지 휴식시간을 갖었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하여 오후 5시경 밖으로 나와 석축상단과 석축벽에 붙어 있는 잡초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여 환경을 개선해 주었다. 오후 8시까지 진행한 작업에서 어제와 같은 열기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세월에 들어 있는 절기는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시간의 흐름 안에 숨어져 있는 삶의 기회를 포착하여 일 년 동안 삶의 기회를 펼칠 수 있는 때를 잘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절기력인 것이다. 우리들의 선조님들은 절기 때를 맞춰 의식주를 해결하시며 살아오셨다. 나 역시 성장해 오면서 그 혜택을 부모님을 통해 경험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도 그러한 절기의 때에 맞춰 삶의 구색을 갖추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은 어차피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것은 숙명이기에 하늘과 땅의 기운을 외면하고 살아갈 방도는 없으면서도 문명이란 너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이 삶의 최고가치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판단이다. 이러한 오류가 결국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알게 모르게 인간을 병들어 가게 만든 것이다. 지나친 도시화는 결국 인간에게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기상이변이 속출하여 인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벌써 상당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왔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종을 울려왔지만 아직까지 무제한적인 소비문화에서 벗어나려는 각자의 소신은 보이지 않는다.
말복을 지나면서 미세하게 폭염의 형태가 바뀐 것을 경험하면서 자연이 드러내는 인간적 사랑에 대하여 구체적인 삶의 질서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문명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타당한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려면은 우리 스스로 털어내야 할 문명의 모순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문명 안에 도사리고 있는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