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선생의 상경기 같은 전 주독대사의 귀독기(歸獨記) I
“이곳에서 보니, Bochum 시내가 지금은 예뻐 보이지만, 50년 전에는 한국광부들의 「눈물바다」이었어요.” 이곳 근처에서 살았던 퇴직광부회의 한 멤버가 쏟아낸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고생했다는 소리에, 왈칵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지금 Bochum 시내에 위치한 옛 광산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광산박물관」에 와서, Bochum 시내를 내려다 보며, 동 박물관 옥상에 있는 관망 대에 서 있는 것이다. Bochum 은 Essen, Duisburg 와 함께 NRW주 루루 탄광지역에 위치한 3각형을 이루 있는 주요도시로서 주도인 Duesseldorf 와 함께 경제적으로 보였던 영광을 요즈음은 거의 모든 광산이 폐광되어,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쓰임으로써, 후학들에게 그들의 조국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Essen에서는 고회장의 주도로 최근 회관을 구입하고, 지난 2013.5.4(토) 거행된 광부 파 독(派獨) 50주년 기념행사에 과거 독일에 주 독일대사로 근무하였다는 인연을 기화로 퇴직광부 회 (Glueckauf회, 회장: 고창원)에서 초청하여 이곳에 온 것이다. 올 때는 낯선 각오로 왔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보니 모두들 좋아하였고, 대부분이 아는 옛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대사관 직원이었지만, 옛 동료로서 대해서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기분이 흐뭇하였던 같다.
그리고 5.5 (일) Bochum 시내에 거주하며, 광부들보다 2년 후에 독일에 진출하기 시작한 간호사의 일원으로서, 현재 독일간호협회회장을 맡고 있는 윤행자 여사의 안내로 「광산박물관」을 견학하였다. 영사 겸 1등 서기관으로 77년-79년, 참사관으로 85년-87년, 그리고 마지막에 대사로서 2003년-2005년까지 3번 근무한 덕택에, 이번에 이들에게 초청되게 된 것이다.
맨 처음에 독일에 부임하고 보니, 교민이라 해 봤자, 대부분이 광부와 간호원 그리고 소수의 유학생들로서 “이들 해외에 처음으로 송출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한」을 얼마나, 어떻게 풀어 줄 수 있느냐!”가 대사관의 주요한 숙제이었다. 생각해 보면 독일이란 나라는 고마운 나라였다. 많은 면에서 우리를 도와 줄려고 노력하는 나라였다.
우선 우리의 산업개발기인 지난 64년, 외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경제개발자금 3,000만 불을 주어 당시 실직자들이 많던 우리나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의 해외송출기회를 만들어 놓아서, 추후 월남과 중동에 진출하는 길을 열어 놓았고,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을 맞아서, 고속도로 등 우리나라의 조국 근대화 구상을 하게 하였고, 우리나라 행정수반이 집권한 5년 기간 중, 최소한 한번 씩은 독일을 찾는 전통을 만들어 놓았으며, 또한 지금과 같이 세계 10위권에 드는 산업국으로서의 토대를 놓았고, 지난 97년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는 IMF 사태를 맞자, 그들은 5월28일 독일 상업은행(Kommerzbank)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외환은행에 3,500억 원을 투자 한다는 의향 서에 서명한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되돌려 놓는 결과였다. 즉 외환은행 주식을 당시(거래되던 액수 2,300원)의 시장가보다 높은 금액(5천원)으로 사고, 뉴욕에서 개최된 “채권 국 회의”(1998년 1월)에서도 참석한 독일은행들은 우리 입장을 적극 지지 함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자존심과 함께 회생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이 이외에도 독일은 동서독의 통일선례를 통하여 남북한의 통일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교회와 노조 등 사회 각 분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었다. 이와 같은 나라에 대사로서 갈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신이 부여해 준 기회였다. 그리고 이제 오래간만에 독일을 방문한 경험을 더 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독일에 5.1(수) 도착하자, 주 NPG 대사를 역임한 주 프랑크푸르트의 한OO 총영사가 영접, 곧 바로 “2005 한국의 해”의 시작 테이프를 끊은 독일태권도협회장 및 관광공사지사장과의 오찬으로 시작을 하였다.
다음날인 5.3(목) 에는 교민 권OO 씨가 자신의 차(Benz 350)로 나를 듀셀도르프에 안내, 금번 행사에 주무인 고창원 회장에게 인계하고, 계속하여 나를 수행하였다. 이어 행사가 개최되는 5.4(금) 에는 전기 윤회장의 이니시어티브로 Bochum (보흠) 시내 「광산박물관」을 시찰하였는데, 이 자리에는 막 베를린에서 내려온 김OO대사와 허OO공사가 자리를 빛냈으며, 또한 듀셀도르프와 에센 지역을 관할하는 본 분관의 이OO공사 겸 참사관도 와 있었다. 나는 정감 있게 김 대사의 부축을 받으며 움직여, 나 자신과 교민들에게는 김대사에게 여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고 정감 있는 분으로 기억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김 대사는 현지에서 보니, 인기가 충천하는 분이었다. 나는 금번 여행에 여전히 흐뭇한 기분으로 있을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새삼 생각난다. “오뉴월의 메뚜기가 바쁘듯,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로 현재 바쁘며, 그 이유는 와룡선생 같은 전 주독대사의 독일방문 때문이라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