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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송구영신의 밤 예배 설교
제목: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마태복음 6:10
설교 소개:
2022년 송구영신예배에서 나는 금년의 표어인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되돌아볼 것이다. 2021년 마지막 주일예배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것은 그때까지 2년 동안 우리 교회의 표어를 정리하자는 의미였다. 당시의 표어는 ‘하나님의 꿈을 배우고 바라고 행하자’였다. 그 뒤에 나온 표어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였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꿈은 성경 이야기에 영롱하게 담긴 하늘의 청사진이다. 그것은 율법의 핵심이며 근본정신이다. 하나님의 꿈이 실현되는 세상을 물려받는 것이 성도들이 받을 유산이다. 그것은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십자가다. 즉, 예수님을 따라 그 모범을 본받을 때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실현될 것이다.
성도의 삶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땅에서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삶이다. 그것은 성령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바람에 자신을 던지는 삶이기도 하다. 그 위대한 도전과 모험을 통해서 세상은 새롭게 될 것이다. 그 모험에 나서라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부르셨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도 이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금년에 우리의 여정은 어땠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이 설교의 핵심이다.
설교 개요:
1. 우리 교회 표어를 되돌아보며
2.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3. 하늘의 청사진
4. 성도의 유업
5. 한 해의 여정을 마치면서
1. 우리 교회 표어를 되돌아보며
오늘은 2022년의 마지막 날이며, 이 시간은 올해의 마지막 밤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해를 마치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금년을 돌아보고 감사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먼저 저는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8년간 우리는 어떤 표어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난 2015년 1월 25일 저는 새소망교회에서 담임목사로서 처음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주보에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이 굵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는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라는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4월 19일부터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빌 2:13)는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지난 8년간 꾸준히 연습하고 선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의 로고인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라는 말과 그림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2015년 부임 첫해 6월 7일입니다. 그루터기는 오랜 세월동안 자라왔다가 중간에 베임을 당했기에 남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옹달샘교회와 통합하여 새로운 순이 자라났으니 앞으로 무성하게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을 기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이사야 6장 13절 말씀을 암송구절로 삼아 우리 교회의 기대와 희망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습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우리는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라는 믿음의 자부심이 우리 안에 견고하게 되기까지 이 표어와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부임 2년째인 2016년초, 저는 우리 교회가 붙들어야 할 5대 키워드를 정했습니다. 그것은 진리, 겸손, 공감, 가치, 각오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드디어 우리 교회의 목표를 확정하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우리 교회는 두 가지를 배우고 익힙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사명을 확신하며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가 되고자 합니다. 이 목표는 우리 교회 예배당 벽면에 게시되어 오늘까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푯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4년 전 2019년에 저는 우리 교회의 두 가지 실천사항을 정했습니다. 그것은 ‘황금률과 케노시스’입니다. 황금률은 먼저 대접하자는 것이고 케노시스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의 꿈을 배우고 바라고 행하자!’였습니다. 우리는 ‘구도자에서 기도자로, 기도자에서 동참자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 표어는 그 다음해인 2021년까지 2년간 우리 교회 표어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저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가를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20년에는 누가복음을 강해하면서 예수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하나님의 꿈을 배우고 나서 저는 금년 2022년에 우리 교회 표어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고 정하여 하나님의 꿈이 이 땅에서 펼쳐지기를 바라고 노력했습니다.
2.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라는 표어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나온 말입니다(마 6:10).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면서 그 뜻을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이야기를 배우면서 하나님의 꿈(뜻)을 배우고 익힌 사람들은 이제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은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땅은 하늘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단지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려야 땅에서 생물이 살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늘에는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하늘을 무시하며 하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런 참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전쟁터입니다. 성경에서 전쟁은 저주입니다.
성도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하늘의 뜻을 살피고 하늘의 뜻이 자신의 마음 속에 부어질 때 정성껏 그 뜻을 받들어 순종합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때로는 물질적 손실을 감수하기도 하고 고생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순종은 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성경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상적인 세상은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세상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세상은 하나님이 땅에 거하시고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둘 사이에 마음이 분열되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살았던 에덴동산은 하늘과 땅이 하나된 세상이었습니다. 성전은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은 사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임재하여 있으므로 성전은 하늘과 땅이 하나된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땅으로 내려오는 환상이 소개됩니다. 그 성전도시가 얼마나 큰지 온 세상이 그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시는 세상은 온 세상이 성전이며 온 세상이 에덴동산과 같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는 성전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 이야기가 이상적인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서 우리는 하늘과 땅이 하나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므로 그 사람들은 그 자체로 성전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이 맡아 관리하는 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할 때마다 성도들은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세상이 임하기를 바라고 소망하면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자신들을 통하여 펼쳐지고 이루어지기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세상은 점점 변화되고 사람을 살리는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정신문화가 계발됩니다. 신실한 성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여성에 대한 교육과 정치 참여의 기회가 확대됩니다. 그런 세상은 하늘의 뜻이 땅에 펼쳐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때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또한 다른 생각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므로 교회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제사장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을 가르고 판단하는 재판관 역할을 합니다. 이 모든 불행은 땅과 하늘이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기보다 땅과 하늘이 결코 하나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2022년도 우리나라의 개신교회가 이런 환상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꿈꾸시던 하늘의 꿈이 이 땅에 실현되는 새로운 환상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하늘의 청사진
이 땅에 펼쳐지는 하늘의 뜻은 하늘의 청사진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그려진 청사진입니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하늘에 그려진 성막의 청사진을 보고 산 아래로 내려와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처소인 성막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그 재능 있는 일꾼들 중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출 36:2). 그들은 모세로부터 하늘의 청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대로 성전의 모든 기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예언자들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하여 하늘에 그려진 청사진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하늘의 청사진과 어긋난 모습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그러지고 어그러진 모습입니다. 하늘의 청사진은 사실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 그리고 시편에 영롱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언자들은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인 하늘의 청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본 하늘의 청사진은 황무지가 변하여 장미꽃 만발한 꽃동산이 되고 시내가 흘러 생명으로 충만한 땅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것을 보고 나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입니다.
예언자 요엘도 하나님이 장차 만드실 세상의 청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에서 아이들은 예언을 말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며 아비들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모든 사람이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에 정통하고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래하고 노력하는 일꾼들이 될 것이라는 환상이었습니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하고 나서 자신의 시대에 예언자 요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 깨닫고 발견하는 것은 하늘의 청사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꿈이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고자 계획하신 계획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지도와 같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보물을 찾게 하는 보물지도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바르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시대를 새롭게 하는 지도자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에 담긴 하늘의 뜻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조지 뮬러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고아들의 아버지시라는 구절(시편 68:5)을 발견하고 고아원을 세워 수많은 어린이들을 돌보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연구했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미국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시절에 대통령이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으로 나라를 갈라진 분단국가로 끝나지 않고 미합중국으로 만들어 그 영광을 온 세계에 떨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오늘까지 157년 전에 죽은 링컨 대통령을 오늘날까지 존경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는 사막과 같고 때로는 망망대해와 같아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에는 하늘의 청사진이 새겨져 있으며, 우리를 희망과 번영의 미래로 안내하는 보물지도가 숨겨 있기 때문입니다.
4. 성도의 유업
예수께서는 하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제자들을 모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인 공동체는 이 땅을 새롭게 할 하나님의 대리인들이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적은 수로 시작할지라도 장차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며 대세를 이룰 것임을 예수께서는 확신하시고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겨자씨 이야기와 누룩 이야기에 담긴 비전입니다. 그런 세상이 열린다면 예수님의 즐거움은 정말 클 것입니다. 바로 그 즐거움을 위해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장차 물려받을 빛나는 유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하신 새로운 창조와 회복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대통합과 하나됨의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조항에 매인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자유인의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유대교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교훈을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 기간 내내 동족의 위협과 훼방, 그리고 살해협박을 받으면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상급은 자신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유업이었습니다. 그 유업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물려받을 그 놀랍고 영광스러운 기업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들려주시며 그 나라에 동참하자고 권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꿈이 실현되는 세상에 동참하자고 수많은 사람들을 권하고 초대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꿈에 동참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기존의 문화나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물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갔습니다. 그들은 전에 어둠 가운데서 살았지만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가담하지 않고 이제는 그 거짓됨을 폭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엡 5:8~11).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장차 열리게 될 새로운 세상은 그 후대 사람들에게 빛나는 유산과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회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되었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전통과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는 대열에 우리들이 서 있습니다.
5. 한 해의 여정을 마치면서
2022년 올 한 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배우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 같은 대리인으로 새롭게 지음 받았으며,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갈 새 이스라엘임을 깨닫고 그렇게 살기를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헌신했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과 물질을 바치는 것, 그리고 교인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헌신으로 우리 교회는 올해도 여기까지 은혜 가운데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필리핀 임마누엘교회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임마누엘교회는 방효천 선교사님이 세우신 교회로서 필리핀 누에바 에시하(Nueva Ecija)주의 산골마을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방광현 선교사님이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196명의 교인들이 1,2부에 걸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한편 아프간 난민사역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선교사로 일하시는 박밀알 선교사님은 궁핍한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난민들 사이에 살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고 때로는 그들의 교사가 되고 부모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후원이 선교사님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힘을 모아 아프간 난민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그루터기는 하늘의 뜻을 배우고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는 거룩한 씨앗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의 걸음은 때로는 느리고 우리의 성취는 하도 적어서 큰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신실한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암송하는 두번째 성경구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우리가 가진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입니다.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늘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에 동참하게 하신 소명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할 때 우리에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물려받을 유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고하여 지킨 믿음과 신앙의 유산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새로운 전통이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해를 기쁨으로 맞이합시다.
금년에도 여러분이 함께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의 동참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끝>.
참고 자료:
2022년도 주일설교 모음
https://cafe.daum.net/Wellspring/8SB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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