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너는
며칠 간격으로
떠났다
마비였다,
심장이, 태엽이
멈추었다
때 아닌 눈발이
쏟아졌고
눈발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가에서
더러워졌다
널어놓은 양말은
비틀어졌으며
생활은 모든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
불 옆에 있어도
어두워졌다
재를 주워 먹어서
헛헛하였다
얻어 온 지난 철의 과일은 등을
맞대고
며칠을 익어갈
것인데
두 사람의 심장이
멈추었다는데
이별 앞에 눈보라가
친다
잘 살고
있으므로
나는 충분히 실패한
것이다
사무치는 것은 봄으로
온다
너는 그렇게만
알아라
이병률, 음력 삼월의
눈
몇 개의
꽃.
몇 개의
전화.
몇 개의
타협.
몇 개의
추파.
눈, 코, 입도
없이
이어지는
나날.
늦은 밤
창가에서
담배를
집어들면
손가락은 이미 재가 되어
있고
무심한, 텅 빈 얼굴을 한
달님이
빈자의 창문을 비껴
지나간다.
최승자, 나
날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
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한강, 해부극장
中
뒤돌아보면
아름답고
너는 광장에 있었다 눈이
부셨다
꺾인 발목으로도 너는 너의
치정을
붙잡지
못하고
초라해질 적마다 나를
흔들고
밤마다 나를 불러
세웠다
아무 일도 없다고 너는 웃고만
있다
빈사(瀕死)의
섬에서
빈사의 너와
만난다
허연,
꽃다발
후회하지 않기로 하면서 후회한다. 눈
어두워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서. 다시 보면서. 나무가 있고. 거리가 있고. 벤치가 있고. 공허가 있고. 어둠이 있고. 고요가 있고.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고. 들판이 있고. 묘비가 있고. 꽃이 있고. 시가 있고. 눈물이 있고. 네가 있고.
너의 얼굴은
지워져간다
어둠의 어둠 속의 희미한
빛처럼
그믐의
달처럼
이제니,
그곳에서 그곳으로 中
비행기가
비행기랑 박을 거예요.
내 말이
맞지? 커다란 폭발음과 한께 세상이 무척 밝아집니다.
나는 내가
아직 죽지 않을 것을 알아요.
추돌은
육십 년 동안 진행됩니다.
지금은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고.
김승일, 난 왜 알아요?
中
사랑하는 두
사람
둘 사이에는 언제나 조용한 제삼자가
있다
그는 영묘함 속으로 둘을
이끈다
사랑에는 반드시 둘만의 천사가 있어야
하니까
둘 중 하나가
사라지면
그는 슬픔의 옆자리로 자기 자신을
이끈다
사랑에는
반드시
"잊지 마"라고 속삭이는 천사가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모른다
신(神)이 낮과 밤을 가르는
시간을
두 사람이 신
몰래
서로의 영혼을 황급히 맞바꿔야 했던
시간을
그 시간을 매혹이라고
부른다면
매혹 이후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매혹 이후
한 사람의 눈빛은 눈앞에 없는 이에 의해
빚어진다
매혹 이후
한 사람의 눈빛은 눈앞에 없는 이에게
영원히 빚진 것이다
심보선, 매혹
中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지만 완벽을 위해 그 문장을 남기지 않는다
술 취한 천사에겐 천사의
몫을
오래 굶은 귀신에겐
고수레를
까마귀와 까치에겐 그들의
밥을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남겨두었다 그 사랑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우린 이별하지 않았을 테지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운 너에게
지난 것이지만 만날 것을 버린 것이 남은
것을 생활하니까
미문(美文)은 미문(未聞)의
사용흔이니까
모든 문을 여는 열쇠공도 돌아갈 집은
하나뿐이니까
단 하나 미문(未門)의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침묵으로 돌아눕는다, 우리는 처음의
사랑을 버린다
아름다움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이현호,
봉쇄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