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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같은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사 41:8-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축구경기를 보다, 하도 속상해서, 끝까지 보지 않고, 배구 경기를 보았는데, 2:2, 마지막 5세트, 한 점만 내주면 패배하는데, 16:14로 역전하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답답하고 속상한 인생이 아니라, 뻥 뚫린 시원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은 어렵습니다. 이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미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어렵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는 말 못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사람들은 소리를 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내는 울음소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울어야 할 가슴 아픈 소리들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미터 허들 경기 예선전에서, 허벅지 근육으로 인하여 출발선 앞에 서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선수를 보았습니다. 5년간의 피와 땀, 눈물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렵고 힘든 인생을 우리의 작은 힘으로 바꾸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바꾸는 것이 힘듭니다. 인생을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게 인생을 변화시키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된 쉼과 평안과 풍요로움을 누릴 날이 곧 다가오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야곱이 노년에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애굽의 바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
그때,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대답했습니다.
백삼십 년을 살아온 야곱이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야곱은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험악할수록,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야곱과 같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역경과 시련을 통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승리했던 인물 중에, 대표적인 사람을 꼽는다고 하면, 야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인생은 험악한 나그네 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통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치사한 인간, 거짓말하는 인간, 두려워하는 인간,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간의 싸움,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여인들의 모습, 변화하고 싶지만, 변화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절망하는 인간 내면의 아픔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무서운 집념과 끈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인간의 열정과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야망 때문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고뇌를 배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생애를 통해, 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였던 한 인간이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변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야곱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야곱을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잡초 같은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야곱을 향하여,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옛날 성경번역에서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서에는 “벌레 같은 야곱아”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버러지 같고, 지렁이 같고, 벌레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잡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야곱의 또다른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곱”에게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은혜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지렁이 같고, 벌레 같고, 버러지 같고, 잡초 같은 우리 인생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만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고통 중일지라도, 춤을 출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모든 환경을 역전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 한마음교회도 새롭게 변화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잡초 같은, 벌레 같은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아멘.
야곱은 야심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빨랐습니다. 계산에 빨랐습니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저질렀습니다.
야곱은 거짓말도 잘했습니다. 도둑질도 했고, 필요하다면, 사기도 쳤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있어 놀라운 점은, 그렇게 나쁜 짓을 하면서도, 열심히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도 잘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품은 야심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야곱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 의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어 보고 싶은 의지가, 그에게 숨겨 있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사기꾼, 도둑놈”이라는 뜻입니다. 그 유래를 보면, 야곱은 그의 어머니인 리브가에게서 쌍둥이로 태어나면서, 동생이 되는 게 억울하여, 형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야곱을 성경은 “버러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야곱, 벌레 같은 야곱, 잡초 같은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왕자”라고 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버러지” 같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9-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여러분!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한 번 붙잡으시고 선택하시면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붙잡으신 후에,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의 실수, 그의 범죄, 그의 거듭되는 거짓말, 그의 야비한 수법을 보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 붙잡은 야곱을 결코 놓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을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오히려, 그의 손을 더 굳세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 잡초 같은 야곱을 선택하시고,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끈기와 사랑으로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어렵습니다. 인생은 전쟁터입니다. 치열한 싸움터가 인생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전쟁터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산다고 하는 것이 전쟁입니다. 인생은 험난합니다.
야곱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 나는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인생은 험악한 세월이다.”라고 고백했고, 모세는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실 앞에, 무너져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인생길은 험악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싸워야 할 인생이고, 이겨야 할 싸움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탁월함만으로는 인생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 잡초 같은 야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야곱처럼, 부족함을 느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여러분! 산에 올라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일 것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쭉쭉 뻗은 소나무들을 볼 수도 있지만, 꼬이고 꼬인 소나무들, 뒤틀린 소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쭉쭉 뻗은 나무가 보기 좋습니까? 아니면, 꼬이고 꼬여 뒤틀린 소나무가 보기 좋습니까? 우리 인생은 쪽쭉 뻗은 소나무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꼬이고 꼬인 소나무, 뒤틀린 소나무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값어치로 따지면, 쪽쭉 뻑은 소나무보다는 뒤틀린 소나무가 더 비싸지 않습니까?
여러분! 야곱의 인생은 순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야반도주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을 만나, 그의 집에서, 20년을 사는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네 명의 부인과 열두 명의 아들과 딸 하나, 가정관계도 복잡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외삼촌 라반을 속이고, 야반도주했습니다. 얍복나루터에서의 씨름, 형 에서와의 화해, 딸 디나의 사건, 그 일로 세겜 사람들을 몰사시킨 아들들, 다시 야반도주,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한 형들, 흉년이 들어 죽게 된 야곱과 그의 자녀들, 요셉이 살아 있다고 하는 애굽을 향하여, 모든 자녀들을 이끌고 내려가는 야곱, 바로 앞에 선 야곱,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야곱에게는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싫어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잡초 같은 삶을 살아가는 야곱을 항상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그를 돌보셨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모든 나무들이 베어져 버린 민둥산을 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쓸모없는 나무, 볼품없는 나무들을 베어냈는데, 쓸모있는 나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잡초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잡초의 특징은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무더위와 폭염 속에도, 잡초는 쓰러지지 않고, 더 빠르게 번식해 나갑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밟고 또 밟아도 여전히 살아 남는 것이 잡초입니다. 잡초에게는 아름다움도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잡초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 숱한 실패와 질병과 역경 중에서도, 우리가 살아 남았다면, 우리는 잡초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된 잡초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뚝 솟은 나무가 아니라,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자라고 있는 잡초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 야곱의 생애를 보면, 야곱은 결코 대단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잡초와 같은 인생입니다. 별 볼일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좋아하십니다. 잡초와 같은 야곱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기 위해,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숱한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은 날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잡초와 같은 야곱을 항상 붙잡고 계셨습니다. 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7: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적고, 가장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아, 쓸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버러지 같은 존재, 잡초 같은 존재, 볼품없고, 쓸모없는 존재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살만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마치 벌레 같고 잡초 같은 인생으로 오셨습니다.
시편 22편 6-7절을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라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벌레라고 했습니다. 야곱을 버러지 같다고 한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 보기에, 그렇게 흠모할만한 모습을 갖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2절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마치 예수님을 잡초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벌레같이, 잡초같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잡초 같은 인생을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잡초 같은 제자들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보잘 것 없는 어부들, 그 당시 비난의 대상이었던 세리를 선택해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잡초 같은 인생을 향해 따뜻한 눈길을 보내십니다. 사랑의 손길로 붙들어 주십니다.
볼품없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꽃피우게 하실 것입니다.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버러지 같고, 잡초 같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7-20절 말씀입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연못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것이 막힌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열린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길이 막혀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은 막히지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막힌 길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장애물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뛸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여러분! 잡초 같은 인생도 꽃을 피우게 하시는 하나님, 버러지 같은 인생을 하나님의 왕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잡초 같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폭염과 무더위 속에서도 기뻐하며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있게 하시고, 영적인 기쁨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에 크신 은총을 베푸사,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이들에게 풍성한 복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