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것이 活句禪이요, 바른 참선이냐? / 송담 큰스님
참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구두선(口頭禪),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구두선이라 그런 말씀을 하셨고
'구두선은 사구선(死句禪)이다'
구두선이라 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입으로 따져서 하는 것이다 이 말이여.
입으로 '그것은 이러쿵저러쿵, 체(體)다 용(用)이다,
법신이다, 여래다, 뭣이다' 해 가지고는
참선을 입으로 이래 이래, 이래 따져 가지고
답을 알아맞히고,
또 제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기를
무슨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있어서 힌트를 주는 것처럼
살살 가리켜서 힌트를 주어 가지고,
'아! 이것이 아닙니까?'
'오! 옳다, 옳다. 아! 그것 참 어지간하다'
또 다른 공안을 내줘 가지고
'이걸 오늘 해 전에 이것을 알아 오너라.'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
그냥 골치가 아플 정도로 하루 종일 따져 가지고는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 가지고 쫓아가서 '알았습니다.
이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그 조금 틀렸다'
다시 또 이리저리 따져 가지고는
'이것이 아닙니까?'
'아! 인제 되았다.'
이러한 식으로 참선을 가리키고,
이러한 식으로 참선을 배우는 것을
이것을 갖다가 구두선(口頭禪)이라,
이것을 의리(義理), 의리로 따져서 한다.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그러고.
이렇게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참선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따져서 모든 공안을 다 풀이를 했다 하더라도
마침내 중생의 분별심을 여의지를 못하고, 따질 수록에
중생의 분별심만 더욱 치성하게 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분별심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점점 생사(生死)의 불에
섶을 더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더욱 생사의 번뇌에 분별의 불은 치성하게 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참선은
생사윤회의 주검으로 떨어지는 참선이여.
그래서 이것을 '죽은 참선' 이라 해서
사구선(死句禪)이라 그러는 것이거든.
그러면 '어떠한 것이 활구선(活句禪)이요,
바른 참선이냐? 하면
'분별심,
이론으로 따지는 버릇을 쓰지를 말아라.
이건 유(有)다, 무(無)다, 비유(非有)다, 비무(非無)다,
이것은 허공이다, 허공 같으되 허공도 아니다,
이러한 이론을 쓰지를 말아라 이 말이여'
'화두는 이론으로 풀 수 없는 것이여.
이론으로 따지지도 말고 이론으로 풀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서 '그렇다 면은 왜 화두를 드느냐?
아마 이것은 모든 번뇌와 망상을 싹 쓸어버리기 위해서
이 화두는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화두는 바로 쇠로 맨든 빗자락과 같은 것이다.
일체 번뇌 망상을 다 쓸어버리는 빗자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론으로 사용하지 말고
다맛 이뭣고? 만 하라는 것이로구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한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화두를 들면 번뇌와 망상이 해결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 화두를 든다고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출처 :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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