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하 계명산과 기대 이상 종댕이길
1. 일자: 2024. 4. 13 (토)
2. 산: 계명산과 종댕이길
3. 행로와 시간
[마즈막재(09:43) ~ (2.5km, 된비알) ~ 계명산정상(11:15) ~ (거친 내리막) ~ 전망바위(12:13) ~ (급경사) ~
하종마을(12:43) ~ 출렁다리(13:14) ~ (1,2조망대, 출렁다리) ~ 하종마을(14:08) / 10.44km]
< 계명산 산행을 준비하며 >
지도를 본다. 충주 도심 좌측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계명산은 시 동쪽에 위치한다.
산 넘어 충주호가 보인다. 충주는 늘 차로 스쳐 지나가던 도시다. 오늘은 산에 올라 도시와 강과 호수를 둘러보려 한다.
길은 정겨운 우리말 이름인 나즈막재에서 시작된다. 들머리 고도는 280m 어름이고, 계명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2.5km 비고는 500m이다. 마즈막재에서 1.1km 거리에 있는 제1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고 이후는 완만하다. 날머리인 하종마을까지는 3km거리다. 계명산만 본다면 5.5km, 2시간 30분의 산행이 예상된다.종댕이길은 충주호를 벗 삼아 걷는 호반 트레킹로이다. 상종마을에서 팔각정과 출령다리를 지나 호수길을 걸어도 되고, 삼항산을 올라도 된다. 현지 상황에 따라 발길 가는 대로 걸어볼 생각이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산과 호수를 걷는 낭만을 즐기고 싶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과정의 기록이다. 실제 산행은 많이 달랐다.)
< 계명산 산행 >
충주 오는 도로 옆 나무들은 1주 사이에 몰라보게 푸르려졌다. 사람으로 치자면 막 걷기 시작한 애기였는데 다시 보니
학생이 되어 있는 꼴이다.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그 여린 녹색에 반한다. 휴게소에서 이제는 클래식 카가 되어 버린 포니 세 대가 나란히 주차장에 서 있다. 동호회에서 운행 중인가 보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에 담아 두었다.
나즈막재에 도착하니 9시 40분이 넘어선다. 등로는 초반부터 진득한 오르막이다. 1km를 40분에 힘겹게 왔고 고도 300m 넘게 올라섰다. 계단을 지나 잠시 주춤하던 등로는 꽤 길게 내려서더니 다시 치고 오른다. 별 특징없는 길에 충주호 전경은 감질만 난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 무렵 고도는 800m 에 육박하고 트랭글 부저가 울린다. 정상 바로 밑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드디어 충주호가 들어온다. 다행이다.
정상에서 인증 샷을 찍고 한 숨 돌린다. 2.5km를 90분이 걸렸다. 만만치 않은 산이다. 산에서 길은 대개 대칭이다. 오름이 험했으니 내려가는 길도 당연히 빡세다. 먼지 풀풀나는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하산 초입부터 출입금지 팻말이 보이더니 곳곳에 나무를 베어 막으며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멀리서 불도저로 돌 깨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엇가 어수선하고 불안하더니, 임도 위에서 길이 끊긴다. 난감하다. 매우 위험한 절개지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다. 우회로도 없다. 스틱을 먼저 던지고 네발로 기어서 내려온다. 다행히 낙석의 위험에서 용케 벗어널 수 있었다. 문득 버스에서 누가 대장에서 혹시 위험구간이 있는지 불안하게 묻던 말이 기억났다. 대장은 모른다 했는데, 현장에서 상황 파악이 되었다. 지난 주도 이 산악회는 이곳을 다녀왔다는데, 위험을 알렸어야 했다. (내려와 식당에서 들으니 나 말고도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거친 돌길 중에 그나마 한곳에전망바위가 있어 쉬며 주변을 돌아본 것 외에는 그저 걷기만 했다. 걸으며 계명산은 결코 다시올 산이 못 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종마을 500m 전에서 시작된 긴 포장도로를 내려오며 그 생각은 더욱 강화되었다. 명산급이라 하는데 난 도무지 이 산의 매력이 무언지 알지 못하겠다.
< 종댕이길 트레킹 >
3시간 만에 계명산에서 탈출했다. 분명 탈출이란 표현이 맞다. 근사한 카페와 식당이 보이고 그 밑으로 충주호가 도도히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 옆으로 데크가 나 있다.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근사한 풍경을 만든다. 한참을 걷다 이번엔 배꽃이 매혹적으로 핀 강가 마을로 내려선다. 호반을 따라 걷는다.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다. 계명산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들이 희미해진다. 종댕이길은 기대 이상이다. 바라보는 물빛은 푸르러 시원하고 울긋불긋 길가 꽃들은 벗이 되어 준다. 섬을 한바퀴 돌 생각이었으나 오르내림이 꽤 있어 제2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린다.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구름다리는 갈 때와 달리 조용했고, 내 걸음에는 더 여유가 생겼다. 계명산이 이리 형편 없을 줄 알았다면 나즈막재부터 길게 종댕이길을 따라 걷고 삼항산도 올랐으면 더 좋은 경험을 했을 것 같다. 길가에 활짝 핀 꽃을 보니 더욱 그 생각이 난다.
어쨌든 그만 걷길 잘 했다.
'누구에게나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만둘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르다고 느껴지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만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여느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생존전략이다. 포기자로 불리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서 자신을 지키지 않고 그냥 두면 안된다. 그러니까 그만두자.' 최근 읽은 책 '퀴팅'에 나오는
문장이다. 오늘은 길에서 퀴팅을 실천했다.
< 희망사항 >
하종마을 붐비는 식당에서 자리가 없어 합석한 채 주문한 음식은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돈 안 되는 혼자인 손님을 홀대한 것 같다. 차 출발 시간이 임박해 와 취소하고 나오는데 화가 났다. 이 동네는 산도 형편 없었는데 음식점 인심도 그렇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오늘 산행에서 종댕이길 이외에 좋았던 게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이동거리가 짧아 평소보다 귀가가 빨랐다는 것이다. 씻고 저녁 먹고 졸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소소한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