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6대 단종의 영원한 휴식처 영월 1경 장릉 #3
단종역사관 관람후 단종능인 장릉으로 향하는 데크계단
정령송(精靈松)
단종과 정순왕후의 영혼이라도 함께 하는 뜻에서 남양주문화원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단종능이 있는 언덕으로 가는 길.
조선 제6대왕 단종능
단종 장릉
숙종의 명에 따라 조선 2대 정종의 후릉의 예에 따라 간소하게 조성하였으며
봉분에 둘레석과 난간을 두지 않고 있다.
장릉 봉분 앞에 세워진 석물. 일반 왕릉과는 달리 무석인이 세워져 있지 않다.
망주석은 조선 왕릉중 유일하게 세호(細虎)가 없다.
봉분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제향공간
제향공간 초입의 장판옥(藏板屋)
정조 15년(1791)에 건립,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다.
장릉의 유래 표시석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매장하였으며,
다른 왕릉과는 달리 단종대왕에게 충절을 바친 신하들의 위판을 배향한 배식단사와
충신단, 정려각 등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배식단(配食檀)
장판옥(藏版屋)에 위패를 모신 268위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제단
이곳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산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인 홍살문
붉은 칠을 한 둥근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
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지형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ㄱ’자형으로 꺾여서 연결된다.
수복실(守僕室)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숙종 28년(1699)에 정자각과 함께 세운 것이다.
능역에 심어져 있는 느릎나무.
수령 370년의 고목으로 조선후기에 심어졌다.
정자각과 단종비각
영천(靈泉)
장릉(莊陵) 서쪽에 있는 우물로써 정조 15년(1791)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하였다.
보통때에는 조금씩 샘물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하였다.
우물의 깊이는 1.5m정도이며 하부는 화강석 돌담으로 둥글게 쌓여 있고 상부는 정방형이다.
제사에 사용하는 물이 있는 우물인 영천이다.
수라간(水剌間)
수라(水剌)는 원래 몽고어로서 탕미를 뜻하며, 수라를 짓는 주방을 의미한다.
제향음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산릉제례를 올리는 공간인 정자각(丁字閣)
숙종 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시 제를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丁)자 모양으로 건립된 제전(祭殿)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단종비각
영조9년(1733)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11:40 선돌, 장릉 탐방후 민족통일강원도협의회에서 지정한
'진미막국수' 식당에서의 점심식사 시간이다.
메뉴는 곤드레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