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I M 8월호
“태극기․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표상(表象)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8월 15일은 어떤 날인가. '일제의 36년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날'이라는 요약지식만으로는 8․15에 대해 정확히 파악했다고 할 수 없다. 8․15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 한편을 참고삼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학문연구로서가 아니라면 역사의 맥락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할 때 그 의미가 선명하게 가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역사 공부’라고나 할까.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 나는 밤 하늘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후략)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沈熏)이 시 ‘그날이 오면’을 통해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며 기다린 그날은, 바로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다. 심훈은 그날을 맞이하지 못했지만 당대의 우리 국민은 앞서 1919년 3월 1일의 독립만세 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 해방의 날, 1945년 8월 15일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에 환호했다
물론 그 때까지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1948년 건국 이후에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태극기에 경례하고 새로 제정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제창했다. 따라서 우리에게 광복은, 상징적으로 풀이하면 태극기를 찾은 날이고 건국은 애국가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혹한 가해자였던 일본의 경우 ’국기(國旗)․ 국가(國歌)에 관련해서만큼은 현대사의 전개과정이 우리와 정반대다.
‘군국 일본'은 20세기 초, 러․일-청․일 전쟁- 대한제국 병탄-만주 정벌 등의 과정에서 일장기 ‘히노마루’의 깃발을 흔들고 ‘기미가요’라는 이름의 천황 경배(敬拜)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를 제창하며 ‘대일본 제국의 영광‘을 구가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우리에게는 심훈의 싯구 그대로 ‘기뻐서 죽어도 한이 없는 날’이었지만 일본인에게는 땅을 치며 통곡할 그 패전의 날- 바로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에서는 그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사회적 금기(禁忌)였다.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공식 석상에서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은 용인되지 않았다. 가해국으로서의 반성인 동시에 ‘평화 애호국 일본’이라는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선양하기 위한 정책적 '연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일본은 어떤가. 지금 일본 정치권은 이른바 평화헌법 개정도 공공연하게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잃어버린 20년’라고 할 정도로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있지만, 사회 기류로서의 右傾化(우경화)가 날로 뚜렸해지고 있다. 다시 한 번 군사대국의 길을 가려는 조짐도 드러나고 있다. ‘영광’의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국가적 욕망의 표출인 셈이다. 지난 1999년 8월 13일을 기해 ‘국기(國旗) ·국가(國歌)법안’이 정식 발효됨으로써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도 완전 ‘복권’ 됐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근거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국가를 부정하고 국기를 모욕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어느 정당의 비례대표로 뽑힌 초선 국회의원은 “우리는 국가(國歌)가 없다. 애국가 안 부르는 게 무슨 상관인가”라고 했다.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대신 이른바 운동가요를 공공연하게 제창하는 정당· 단체가 있는가 하면 어느 정치지도자는 어떤 행사장의 제단 바닥에 깔린 태극기를 짓밟고 서기도 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며 태극기 화형식 퍼포먼스를 펼친 집단도 있었다. 애국가를 그렇게 부정하고 태극기를 그토록 모독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있는가. 그대의 생각을 묻고 싶다.
애국가와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구체적으로 표상하는 국가(國歌)이고 국기(國旗)이다. 실제로 국민의례규정은 공식 행사 때 태극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명시하고 있다. 태극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이야말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우리는 국가적 경사때마다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한마음으로 감격과 감동을 공유해 왔다.
그대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던 2002년 월드 컵 대회 때 태극기를 온 힘을 다해 흔들면서 ‘대~한민국’을 한 목소리로 외쳤던 그 감격의 나날들을... 가까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당시 우리 선수들이 시상대에 서서 금메달을 목에 걸 때, 게양되는 태극기와 연주되는 애국가를 TV 화면을 통해 보고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일을...
심훈이 시 ‘그 날이 오면...’을 쓴 날은 3․1운동 시작 11주년인 1930년 3월 1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일제의 강압통치가 한층 강화되자 향리 (충남 당진)에서 글을 쓰며 칩거하다가 1936년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심훈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그날’ 이후 67년이 지났다. 지금 그대의 병영 연병장에는 날마다 이른 아침에 태극기가 높이 게양된다. 이런 저런 행사 때마다 그 태극기에 거수경례하며 애국가를 부르는 그대는 참으로 떳떳한 시대, 자랑스러운 나라의 군인임을 가슴속 깊이 자부하기 바란다. < 조 규석 / 언론인 >
첫댓글 HIM이 좀더 일찍 나왔으면 이모 김모 같은 이들도 안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우리나라를 떠나 _ 먼곳을 여행하다 보면, 조국 우리나라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더 느끼게 되는데 . . .
근래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가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