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이 더 나은 세상으로,
성서를 통해 만난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지극한 정성을 들이시는 분이다. 비록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볼품이 없어도 주님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시며 똑같이 사랑하신다. 심지어 길 잃은 한 마리의 어린양을 온 산과 들을 헤매 마침내 찾아 안고 오시고, 아버지를 뿌리치고 집 나간 거지 탕자를 눈물로 환대하시는 주님이시다.
시종일관 약자라고 함부로 여기지 말고 소자라고 무시하지 말라 하신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대동소이하며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하신다. 오히려 다르기에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그 다름으로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고 말씀대로만 살면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름답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어떤 무력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살 수 있다고 여긴다. 대립과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뛰어난 머리와 재주가 있지만 좋은 결과로 만들지 못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게 하셨다. 그걸 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성공이나 부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에 부합하는 삶에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고 한시도 잠잠할 때가 없었다. 안주하거나 가진 자의 편에 서면 그때부턴 신앙의 본질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길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주변의 아프고 상한 자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뒤틀리고 길을 벗어난 인생과 인류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교회나 기독교의 수많은 문제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답이다. 모든 기독교의 역사와 수많은 그의 사람들을 다 모아도 예수의 사랑에 어림없다. 그편의 사람들까지도 누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고, 정말 형편이 없다며 최악의 평을 받아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예수의 길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악이 득세하고 어둠이 판을 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선한 힘과 빛의 존재들이 훨씬 더 많고 그 힘이 세다. 드러나지 않지만, 곳곳에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애써 감추며 부끄럽다고 숨어드는 교회들이 가는 곳마다 들꽃처럼 존재한다. 참 대단한 일을 하면서도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스스로 감추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다.
기독교 신앙의 마음과 자세는 어느 곳, 어떤 사람에게나 같아야 한다. 그건 자신의 취향이나 생각을 넘어 나에게 새 인생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중심에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크든 작든, 나의 직분이 무엇이고 내 삶의 직업과 위치가 어디든 상관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내 존재가 완전히 달라졌고 내 삶의 기준과 나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새롭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어떤 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심이 내가 아닌 예수에게 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내 선택에 후회한 적이 있는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더 좋은 세상과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는 투표해야 한다.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물꼬가 되고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 말씀하신 것처럼, 화려한 외모나 세상의 이력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고 프로다운 정신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직업적 정치인이 되고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은 있는지, 나라와 민족에 대해 어떤 그림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따져야 한다. 인맥이나 지연, 작은 욕심을 넘어 자녀들과 다음 세상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위험하고 불행한 세상이 된다. 선거는 더 나은 세상이 열리고 희망을 보는 기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투표에 임할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나의 선택이 더 나은 세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