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산행 에세이】
오늘도 공짜로 ‘숲 향(香)’을 즐기며
― 산에 오르며 감사하는 이유
윤승원 수필가
오늘따라 숲 향이 더욱 상큼하다. 비가 오고 난 뒤의 산길이라 그런가.
젖은 가랑잎에서도 향기가 난다. 촉촉한 숲 속 흙에서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기가 풍긴다.
▲ 도솔산 숲길(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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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나무들도 독특한 저마다의 향을 지니고 있다. 어제의 숲 향 다르고 오늘의 숲 향이 다르다.
아침에 맡는 숲 향 또한 다르고 오후에 맡는 숲 향이 역시 다르다.
도심의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래서 산에 자주 올라야 한다.
나는 하루라도 산에 오르지 않으면 궁금해진다. 이 계절에 숲 향이 어찌 달라졌는지 궁금하고, 나뭇잎 색깔은 또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숲 속 딱따구리는 오늘은 또 어느 나무를 쪼는지 궁금하고, 직박구리는 오늘 또 어떤 노래를 들려주는지 궁금하다.
▲ 딱따구리 작업장 - 구멍이 보인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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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봉 약수터 참나무 숲.
등산용 배낭 짊어지고 매일 올라오시는 팔순의 할머니 콧노래는 오늘도 얼마나 즐겁고 건강한지 궁금하고,
약수터 앞 공터에 떨어진 참나무 이파리를 매일같이 빗질하는 백발 할아버지의 밝은 표정도 변함없는지 궁금하다.
다정하게 손잡고 산에 오른 60대 부부. 땀 흘린 남편에게 부채질해 주는 부인의 사랑스러운 손길과 즐거움 넘치는 웃음소리가 오늘도 여전한지 궁금하다.
▲ 숲길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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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뜻하지 않게 내게 칭찬하는 노인을 만난 것도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뜻하지 않게 칭찬? 그렇다.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앗! 하마터면 고약한 배설물을 밟을뻔했다. 어느 비양심 견주(犬主)인가. 한 무더기 싸놓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무심코 걷다가 이걸 밟을 것이다. 그런 낭패감이 어디 있을까? 누가 밟기 전에 내 손으로 얼른 치워야지.
그런데 무엇으로 이 고약한 배설물을 치운단 말인가. 맨손으로? 돌멩이로? 난감한 일이다.
암, 그렇지! 부러진 나뭇가지. 저걸 주어다가 배설물 한 덩이를 말끔히 치웠다.
▲ 숲길에서 만난 뜻하지 않은 배설물(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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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지나가던 팔십 대 노인이 가만히 지켜본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 어른의 이 같은 칭찬은 하느님의 축복이나 다름없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 숲길 개똥을 치웠다고 해서 감사하다니. 이보다 값진 찬사가 어디 있는가.
평소 ‘일일 삼선(一日三善)’이 은밀한 목표인데 내게 이런 ‘일선(一善)’의 기회를 준 어느 견주(犬主)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감사해야 할 일은 또 있다.
두꺼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앞에서 큰 눈망울을 굴린다. 두꺼비의 언어를 나는 알아듣는다.
▲ 갑자기 나타난 두꺼비(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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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이 할아버지. 언젠가 손자의 一日一善(일일일선) 이야기를 쓰신 적이 있으시죠? 손자가 휴일에 아빠와 함께 산행하면서 빈 깡통과 과자봉지 등 쓰레기 줍는 장면을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리셨잖아요? 할아버지의 오늘 개똥 치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손자의 선행이 겹쳐 떠올랐어요.”
▲ 휴일에 아빠와 함께 자연보호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하는 손자(사진=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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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역시 영물(靈物)이구나. 동작이 느려도 ‘좌견천리(座見千里)’로구나. 어떻게 할아버지 블로그 글을 저리도 또렷이 기억해 낸단 말인가.
뜻하지 않은 반가운 길동무, 두꺼비에게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아침 일찍 산에 올라 3시간 동안 맨발 걷기 운동하면서 만난 도솔산의 다양한 얼굴들.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숲속 자연 철학자들.
▲ 숲속에서 매일같이 맨발 운동하면서 자연의 철학자들을 만난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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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육기관에서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무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 공짜로 깨달음을 얻는가.
매일매일 즐기는 자연 학습 혜택. 혼자 조용히 감사하는 마음. 오늘도 내일도 건강한 숲에서 이들과의 만남은 이어진다. ■
2026. 5월
윤승원, 도솔산 숲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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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감상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오늘도 무상으로 ‘숲 향(香)’을 즐기며」는 단순한 산행 기록을 넘어, 자연과 인간, 선행과 감사, 그리고 생활 속 수행(修行)의 의미를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낸 생활 철학적 산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숲길의 일상’을 통해 독자에게 잔잔한 웃음과 깊은 성찰을 동시에 안겨준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우선 이 작품의 가장 큰 문학적 매력은 ‘숲 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각적 묘사에 있습니다.
“젖은 가랑잎에서도 향기가 난다”, “촉촉한 숲 속 흙에서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기가 풍긴다”는 표현은 단순한 후각적 체험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는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글을 읽는 동안 마치 비 온 뒤 도솔산 숲길을 함께 걷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어제의 숲 향 다르고 오늘의 숲 향이 다르다”는 문장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삶의 미세한 결을 읽어내는 수필가 특유의 관찰력을 잘 드러냅니다.
또한 이 작품은 윤승원 수필 특유의 ‘궁금함의 미학’이 잘 살아 있습니다.
딱따구리와 직박구리, 팔순 할머니, 낙엽을 쓸고 있는 백발노인, 손잡고 산행하는 노부부까지 모두가 하나의 살아 있는 숲 속 등장인물로 연결됩니다.
작가는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과 습관, 웃음소리까지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회복시키는 따뜻한 시선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개 배설물 치우기’ 장면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쾌함으로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을 작가는 오히려 ‘일선(一善)의 기회’로 전환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승원 수필의 인간미와 생활 철학이 빛을 발합니다. 더구나 이를 무겁고 도덕적으로 설교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황 전개 속에서 보여준다는 점이 매우 뛰어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팔십 대 노인의 짧은 한마디,
“감사합니다.”
이 단순한 대사는 작품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정서적 절정’ 역할을 합니다. 작가는 이를 “하느님의 축복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작은 선행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깊은 정신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독자 역시 “나는 오늘 어떤 선행을 했는가”를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윤승원 수필의 독창적 특징 중 하나인 ‘유머와 환상적 의인화 기법’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두꺼비와의 대화 장면은 자칫 교훈적으로 흐를 수 있는 글에 생동감과 해학성을 불어넣습니다.
두꺼비가 블로그 글까지 기억해내며 말을 건네는 장면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윤승원식 우화(寓話) 수법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좌견천리(座見千里)”라는 표현을 두꺼비에게 연결한 대목은 재치와 동양적 풍류가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지닌 큰 가치 중 하나는 ‘사회 교육적 메시지’입니다.
이 글은 환경보호를 거창한 구호로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산길의 배설물 하나를 치우는 행동으로 시민의식을 말하고, 손자의 쓰레기 줍기 이야기를 통해 세대 간 선행의 계승을 보여줍니다.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공공질서, 생태 감수성,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윤승원 수필이 가진 생활 교육적 힘입니다.
또한 “어느 교육기관에서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무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마지막 물음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숲은 단순한 운동 장소가 아니라, 인간됨을 가르치는 ‘무상의 학교’입니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 이 같은 태도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삶의 균형과 겸손을 일깨워 줍니다.
결국 이번 작품은 단순한 산행 에세이가 아니라,
‘숲 속에서 배우는 인간학’이며,
‘감사의 철학’이고,
‘작은 선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따뜻한 생활 문학입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유머와 인간미, 자연 친화적 감수성, 그리고 생활 속 깨달음을 조화롭게 엮어내며 독자들에게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이번 작품은 특히 윤승원 수필가님 특유의 ‘생활 속 깨달음의 미학’이 매우 자연스럽게 살아난 수작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숲길의 작은 사건 하나를 단순한 체험담으로 끝내지 않고 ‘감사’와 ‘선행’, 그리고 ‘자연이 주는 무상 교육’이라는 큰 울림으로 확장시킨 점입니다.
특히 개 배설물을 치우는 장면은 자칫 평범하거나 불쾌한 에피소드로 지나갈 수 있는데, 오히려 인간미와 공공의식을 드러내는 따뜻한 문학 장면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윤승원 수필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두꺼비와의 대화 장면은 윤승원 수필가님만의 개성적인 창작 기법이 잘 드러난 대목입니다.
현실 속 이야기에 살짝 환상성과 우화를 섞어 넣으면서도 전혀 이질감이 없고, 오히려 독자에게 미소와 여운을 남깁니다.
독자는 “숲속 자연도 인간의 선행을 지켜보고 있다”는 정겨운 상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무상 교육”이라는 표현은 참 깊은 철학성을 품고 있습니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치고, 인간은 조용히 배우며, 그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마음을 적십니다.
윤 수필가님께서 평소 소중히 여기시는 삶의 태도인 ‘安分知足’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산행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단순히 “산이 좋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글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마음이 맑아지는가”를 조용히 보여주는 따뜻한 생활 철학의 산문으로 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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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맨발걷기운동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