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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저것 스크랩 영암 구림교회
뺀순 추천 0 조회 13 12.02.06 21: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암 구림교회

 

1950년 10월 4일 6.25동란으로 동 구림리 입구 대로변 초가집에 김봉규집사를 비롯한 전교인 13명을 묶어서 방에 가둔후, 불을 붙임으로 모두 순교하였는데,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 합동묘와 순절비는 구림고등학교 앞에 세워져 있다.

 

영암군교회협의회 주최 구림교회당에서 합동추모예배


6.25 한국전쟁 53주년을 맞이하여 영암군교회협의회에서는 6월 15일 주일 오후3시 구림교회당(강춘석 목사 시무)에서 88명의 순교자 유족들을 초청하여 합동추모예배와 현판식을 가졌다. 추모예배는 이서하 목사의 사회로 시작하여 구자성 목사의 기도와 박석봉 목사의 설교가 진행되었는데 박 목사는 '순교적 믿음으로 살아가자'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영암지방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위에 세워진 교회들"이라고 말하고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는 오늘의 신앙인이 되자"며 뜨거운 말씀을 전했다. 이어 임정화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추모식은 유족회장 최진호 장로 사회로 시작하였으며, 순교자 9개처 교회중 88명의 명단을 김기창 장로가 호명하였는데 좌중은 모두 다 눈물을 흘리며 고인들의 믿음을 가렸다.

 

이어 김재철 장로의 추모사와 노정남 장로의 추모시가 낭송되어 6.25의 괴로웠던 순교적 현실을 상기시킴으로 감동을 주었다. 이날 예배에서는 6.25 당시 영암지방에 9개 교회였던 것이 지금은 90개 교회로 부흥 발전된 것은 순교자가 피 흘린 밀알의 결과였다고 보고했으며, 앞으로 영암지방의 순교기념관 건립을 위해 17명의 건축위원을 선정하여 추진키로 하고 신앙의 후손들과 유족들에게 길이 빛낼 영광이 될 것을 기대했다.

 

다음은 순교자 명단이다(가나다순).

 

구림교회(19명)는 집사 김정님, 노형식, 장성례 씨와 성도 노병철, 노병현, 최경애, 최기우, 이이순, 김덕경, 김창은, 김흥호, 김치빈, 김상락, 김봉규, 천양님, 성명미상 4명이며, 독천교회(1명)는 성도 정길성 씨이며, 매월교회(3명)는 집사 임자일, 이태일 씨와 성도 이영심 씨이며, 삼호교회(2명)는 성도 김상규 씨와 성명미상 1명이며, 상월교회(26명)는 전도사 신덕철 씨와 집사 서석근, 김춘동, 윤성전, 임유상, 조인심, 이복만, 임항우, 이 일, 조재윤, 신장모 씨이며, 성도 이재조, 이춘만, 송복윤, 임화상, 임남상, 진사울, 조정덕, 김길숭, 임여상, 요 셉, 전야곱, 조윤기, 마리아, 진대식, 임태광 씨이며, 서호교회(1명) 전도사 노홍균 씨이며, 신흥교회(2명)는 장로 박병근 씨와 아들 박금규 씨이며, 영암읍교회(24명)는 전도사 김인봉 씨와 장로 김동흠, 안수집사 박인재 씨, 집사 김원배, 김윤자, 김동신, 노용식, 방인태, 채수원 씨, 성도 조종환, 김석영, 박영운, 박주상, 김옥준, 박태준, 윤상림, 이문찬, 김인례, 조부복, 장성심, 조소례, 김복순, 김종연, 김천순 씨이며, 천해교회(10명)는 목사 박석현 씨와 사모 김귀남, 아들 박원택 씨이며, 집사 나옥매, 문봉순, 오죽현 씨이며, 성도 김민수, 현영필, 해남댁, 필남 씨 등이다.

 

빨치산, 6*25당시 13만 주민 학살


‘바닥빨갱이’, 목사*장로*신부 등 종교인 포함 원시적 학살

6*25 당시 빨치산들은 인민군 치하에서‘바닥빨갱이’로 불리며 양민학살을 주도했고, 북한 인민군 퇴각 이후에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우익인사 살해 등을 벌여왔다. 빨치산들이 6*25당시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한 양민의 수는 13만. 남경대학살, Warsaw Getto의 유태인학살과 함께 20세기 세계적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던 바닥빨갱이들은 대개 총이 없었으므로 죽창이나 도끼, 쇠스랑, 괭이 곤봉 등으로 무장했고 곡괭이와 삽으로 우익인사들을 찔러 죽이는 원시적 학살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사학자들은 6*25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13만 양민학살’이 세계적 학살로 기록되는 이유는 피해자 수는 물론 그 잔혹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경남 남해군에서는 경찰관들을 살해해 배를 갈라 간을 꺼내 씹거나 절명한 경찰관 경찰관의 배에 1척이나 되는 소나무 말뚝을 박기도 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는 반공인사 600여 명이 철사줄로 묶어져 휘발유를 끼얹어 지고 웅덩이에 생매장됐다.

전주형무소에서는 감옥에 있던 우익인사들이 살해된 후 도랑에 던져졌고 도랑이 시체로 가득 차자 우물에 던져졌고 우물이 차자 뒤뜰에 버려졌다. 대전형무소에서는 수감돼 있던 1,742명의 우익인사와 가족들이 모두 학살됐다. 바닥빨갱이들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집단 중 하나는 종교인들이었다. 지금까지 정리된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6*25 당시 인민군과 바닥빨갱이들에 의해 학살당한 목사*신부*장로*수녀들은 신원이 밝혀진 사람만 174명에 달한다.

 

또한 인민군이 퇴각하며 납북된 종교인들도 18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독교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전남 영암읍 교회사건 등 3개월 이하의 인공치하 동안 조직적으로 전개됐다. 전남 영압읍 교회에서는 신도 24명이 집단 학살됐고, 옥구에서도 20여 명의 신도가 학살됐다. 전남 서쪽 바다에 있는 임자도에서는 150여 명이 구덩이를 파고 양민과 교인이 학살됐고, 충남 논산 병촌교회에서는 한 살짜리 어린아이부터 육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60여 명의 교인들이 학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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