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07gpYw17tY
6월 생활말씀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코린토 후서 13장 11절)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시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큰 사랑으로 지켜 보았습니다. 그는 코린토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에 그곳을 방문하여 공동체에 필요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바오로 사도는 다른 설교자들의 비난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선교 활동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는다는 점, 웅변술의 규범과 표준에 따라 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방식을 비난하며 논쟁거리로 삼았습니다. 또한 그 설교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그 자신의 권위를 보증할 만한 추천서를 지니고 있지 않은 점도 비난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예수님의 모범에 비추어 자신의 약점을 깨닫고는 오히려 그 약점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선포하는 점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 편지를 마치면서, 코린토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가득 담아 호소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특징으로 뚜렷이 눈에 띄는 것은, 바오로 사도의 권고와 훈계의 말들이 공동체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온갖 인간적 나약함 탓에 상호 이해, 충실하고 진실한 소통, 경험과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치 등이 어려워지더라도, 공동체야말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함으로써 그분의 평화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요구에 따른 구체적이고도 일관된 몇 가지 행동들을 제안합니다. 곧, 형제자매로서 자신과 모든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그와 똑같은 사랑이 순환되도록 하는 것, 이웃의 간절한 바람들을 함께 하면서 서로 돌보아 주는 것, 서로 자비롭게 대하고 용서하면서 환대하는 것, 신뢰와 경청하는 태도를 점점 더 키워 가는 것 등입니다.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사고방식을 거슬러 때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용기까지도 요구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데 있어서 서로 격려하라고 권고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일치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를 애덕과 진리 안에서 기쁘게 수호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의 백성을 동반해 주시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굳건한 바위가 이 모든 것의 바탕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 생활말씀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우리 역시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님의 모범과 그분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우리에게 가져 주시기 위해 땅 위에 오셨습니다. 실제로 평화란 «(…)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나 말다툼, 분열, 트라우마가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평화는 생명과 기쁨이 가득한 상태이고, 그 사람에 대한 통합적인 구원이며, 자유이자, 모든 민족 간의 사랑 안에서의 형제애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나요? 그분은 몸소 값을 치르셨습니다. (…) 그분께서는 적대자들 한가운데에 넘겨져, 증오와 서로 간의 분리가 가져오는 무게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민족들을 서로 갈라놓는 장벽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
우리에게도 역시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랑이 요구됩니다. 이는 우리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줄 알며, ‘적’이라고 하는 범주를 초월하면서, 다른 이들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처럼 사랑할 수 있는 강력한 사랑을 뜻합니다. (…) 아울러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한결같이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눈이 요구됩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보편 형제애의 후보자들임을 깨닫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
“악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라고 이지노 조르다니는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전쟁의 위험을 없애려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공격적 성향과 착취하려는 마음과 이기심을 우리 안에서 뽑아 버려야 합니다. 즉 우리의 양심을 재건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니타 파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농업 도시인 하츠워터의 한 구역입니다. 이 나라의 다른 지역처럼 이곳에는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 헤이트’ 체제에서 물려받은 여러 현상들이 남아 있는데,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흑인 그룹과 혼혈인 그룹에 속한 젊은이들이 다니는 학교들의 교육 수준은, 다른 인종 그룹들의 학교들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고, 이로 인해 사회적 소외가 계속될 위험이 있습니다.
‘더 브릿지’ 프로젝트는 이곳의 인종이 다른 그룹들 사이의 중재와 조정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같은 목적으로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나 마련하고 만남의 장이 될 만한 공동 공간을 만들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서로 간의 거리와 문화적 차이를 좁혀 가도록 했습니다. 이곳의 공동체는 이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 일하고자 하는 크나큰 소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카를로는 목재를 실어 나르도록 그의 작은 화물차를 내주었는데, 나중에 목재들을 싣고 와서 책상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책장과 공책 그리고 책들을 선물했고, 한 네덜란드 개혁 교회에서는 의자 50개를 선물했습니다. 그들은 문화와 인종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해 주는 이러한 다리가 매일 더욱 굳건해지도록 자신의 몫을 하였습니다.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 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